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rector JI Feb 10. 2022

인간문화재 영상도감_KULTURE

악기장_고흥곤 #3 현이야기 두 번째 

전주. 

3대째 명주실을 잇는 곳으로 향했다. 오래된 가정집으로 보이는 문을 들어섰다. 할머니, 할아버지, 따님 그리고 젊은 청년이 나를 반겼다. 할아버지의 아버지부터 시작되었던 명주실 공방은 아직도 그대로였다. 대신 서까래는 낡고 기계들은 오래돼보였다. 어느 한 켠에는 현대식 건조기가 들어와 있었다. 악기장 고흥곤 선생님의 연락 덕분에 감사한 환대를 받았다. 할머니는 주방에서 음료수를 꺼내어 주셨다. 내 눈은 집 한가운데 놓인 공방의 면면을 살펴보는데 눈이 팔려있었다. 아름다웠다. 오래된 기계들과 뿌연 창문으로 번지는 햇살이 땅바닥에 닿았고 벽에 들러붙었다. 할머님은 옛날 시집왔을 때부터 시작된 작업과 고흥곤 선생님과의 인연을 이야기하셨다. 이야기의 말미에는 이제는 그 수요도 줄고 힘에 부쳐 작업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삶은 누에고치에서 나온 번데기를 하나 주시며 나에게 먹어보라고 권하셨다. 나는 번데기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번데기를 하나 받아 들고 먹었다. 

따님과 촬영 이야기를 나눴다. 기존에 촬영했던 영상들을 보여주면서 어떻게 영상을 담을지 어떤 공정이 이뤄지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100년 된 전주의 명주실 공방

공방의 한쪽에 커다란 비닐에는 고치가 수북이 담겨있었다. 철망에 고치를 넣고 몇 분을 삶아냈다. 캡슐처럼 딱딱했던 고치가 뽀얀 김과 함께 축 늘어졌다. 긴 실을 늘어뜨린 고치들이 찬물로 옮겨졌다. 기계를 켜고 40~50개의 고치를 하나의 실로 이어나갔다. 어떤 고치들은 이미 실을 다 뽑아내 번데기만 남았고 또 그만큼의 고치를 채워주었다. 일정한 두께의 실을 만들기 위해 아주 얇은 실 한 가닥 한 가닥을 부지런히 붙여주면서 작업을 이어나갔다. 기계는 빠르게 돌아가고 손도 바삐 움직였다.


현재 손으로 명주실을 잇는 공방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하셨다. 따님은 힘에 부치신 아버님을 대신해 일거리가 있을 때 가끔 와서 일을 한다고 한다. 지나버린 전성기를 간직하고 있는 이곳을 바라보며 비단 세월의 속도에  잊혀진 곳이 이곳만은 아니겠구나 싶어졌다. 

"저희가 제작비가 없어서 촬영을 하더라도 돈은 드리지 못하는데요 대신 좋은 영상으로 담아드리겠습니다" 죄송스러운 말을 보탰다. "돈은 됐고요 저희가 담기는 것만으로 영광이죠" 따님과 할머님은 애초에 생각하지 않으신 것처럼 활짝 웃으며 손사래를 치셨다. 지금까지 한마디도 없으신 할아버님께서 내 손을 잡아주셨다. 


"이 고치들은 어디에서 받으세요?" 

"상주에 누에를 키우는 곳들이 있어요" 

"아 그럼 빨리 상주에 가봐야겠네요. 그럼 촬영 때 뵙겠습니다!"

점심을 훌쩍 지난 시간, 상주에 촬영이 가능한 곳을 확인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아무런 연고도 없이 누에 사업을 하는 곳에 무작정 전화를 걸어 한 농장을 소개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인자한 목소리의 사장님은 오늘 작업을 하고 있으니 오라고 하셨다. 

전주에서 상주로 3시간 정도 차를 몰아 농장에 도착했다. 이미 해는 떨어지고 사장님 내외분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지금 가야금 선생님을 촬영하는데 이 현이야기를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누에가 고치를 짓는 장면을 찍고 싶은데 찍을 수 있을까요?"

"네 가능해요 내일 정도에 이제 시작합니다"

"네???!!" 


악기장 현이야기 두 번째 <끊어지지 않는 실> 보러 가기 

작가의 이전글 인간문화재 영상도감_KULTUR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