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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ector JI Feb 10. 2022

인간문화재 영상도감_KULTURE

악기장_고흥곤 #2 현이야기 세 번째 

가야금에는 각기 다른 두께의 열두 줄, 현이 있다. 이 현은 명주실을 꼬아서 만든다. 그리고 명주실은 누에의 고치에서 뽑아낸다. 처음 가야금에 걸려있는 현을 보고 아무 생각도 없던 나는 현이 출발지가 누에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미처 날지 못한 누에가 현이 되어서 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

누에에서 현이 되는 과정은 총 세 단계로 진행되는데

1. 누에가 고치를 치는 과정 

2. 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는 과정. 

3. 명주실로 현을 꼬는 과정 이렇게 나뉜다. 

촬영의 순서는 과정의 역순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초여름 하남의 공방. 길게 펼쳐진 비닐하우스에 이른 아침부터 제자분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비닐하우스를 아주 가는 실들이 가로질렀다. 전주 공방에서 올라온 일정한 두께의 명주실은 이곳에서 1 현부터 12현까지 모두 각각의 두께의 현이 되었다. 

물에 담근 명주실.


끊어지지 않도록 물에 담근 명주실은 세 개의 갈고리에 각각 걸렸다. 기계를 돌리니 축 늘어진 실이 조금씩 팽팽해지기 시작했다. 적당한 때에 선생님은 '삼발이'라고 불리는 작은 나무 도구로 세 개의 실을 하나의 실로 꼬았다. 선생님은 팽팽해지는 실을 손으로 눌러보면서 탄성을 확인하기도 하고 실이 꼬아진 정도를 육안으로 살피며 현의 모양새가 되었는지를 가늠했다. 각기 다른 가닥의 수로 꼬아진 현들은 가장 얇은 12 현부터 가장 굵은 1현까지 각자의 음을 가지게 되었다. 현을 만드는 과정도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어떤 해에 나온 것은 굵기가 굵고 어떤 것은 가늘었다. 그래서 선생님의 손과 눈으로 그 해의 굵기를 판단하면서 몇 가닥을 보태고 빼냈다. 자연은 정확하지 않지만 장인은 정확한 음을 만들어냈다. 


일명 삼발이_ 날개 같은 곳에 세 개의 실을 넣으면 하나의 현으로 꼬아진다.
세 가닥의 실이 하나의 현이 되는 모습
현을 소나무 방망이에 감아둔 모습

현이 완성이 되면 물에 담가 둔 소나무 방망이에 감아둔다. 그리고 이것을 찜기에 쪄냈다. 선생님은 명주실을 찌면 현이 되고 물에 삶으면 비단이 된다고 했다.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나중에 자료들을 찾아보니 명주실에 있는 단백질 성분이 찌면서는 실에 고착되고 물에 삶으면서는 풀어졌다. 같은 재료를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서 부드러운 비단이 되기도 하고 뻣뻣한 현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소나무 방망이에 감아두어 소나무의 송진이 현에 스민다고 했다.) 쪄낸 현은 건조되어 아주 메마른 상태가 되었다. 공방의 한 켠, 현이 감긴 소나무 방망이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선생님은 소나무에 감긴 현을 돌리며 빼냈다. 뻣뻣해진 현은 소나무를 미끄러지듯 빠져나왔다. 비좁은 공방 선생님과 나 사이에 촬영팀과 조명팀이 각자의 위치에 있었다. "사각사각" 완성된 현이 경쾌하고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우리는 꽤 긴 시간을 그 소리에 집중했다. 아주 편안한 소리가 좁은 공방에 울렸다.  


현 이야기를 듣고 이 이야기는 외전으로 따로 빼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야금에 현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그 과정도 꽤 매력적이었다. 선생님께 이 부분을 말씀드리고 명주실을 받으시는 곳에 촬영을 할 수 있도록 말씀을 부탁드렸다. 선생님은 본인의 스승님 때부터 실을 받아온 곳이라며 그런 곳을 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우선 전주에 내려가 인사들 드리겠다고 했다. 누에고치가 명주실이 되는 과정은 또 어떨지 기대가 됐다.


이번 화의 제목을 <삼만 칠천 마리의 누에고치>라고 지었다. 가야금의 열두 줄에 들어가는 누에의 고치를 계산해보니 대략 37,000마리가 필요했다. 


현이야기 세 번째 <삼만 칠천 마리의 누에고치>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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