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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ector JI Feb 09. 2022

인간문화재 영상도감_KULTURE

악기장_고흥곤 

주철장 촬영의 제작기간이 늘어나면서 원광식 선생님께 다른 선생님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렇게 서초동에 있는 '고흥곤국악기연구원'을 향했다. 입구에서 나무 냄새가 풍겨왔다. 반듯하고 단정한 선생님이 마루에 앉아 가야금을 매만지고 계셨다. 주철장 선생님께 말씀드렸던 것처럼 한국의 무형문화를 기록하려고 한다고 말씀드렸다. 말로만 설명을 드렸던 그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주철장 촬영본을 편집해서 보여드렸다. 일주일 뒤에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지감독 촬영합시다" 

며칠 뒤 선생님과 촬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선생님은 가야금 중에서 산조가야금을 찍어보자고 하셨다. (산조가야금은 정악가야금보다 역사적으로 오래된 가야금이고 산조가야금이 민가에서 주로 연주한 가야금이라고 하면 정악가야금은 궁에서 연주되던 가야금이다.) 서초동 사무실을 벗어나 하남에 있는 공방으로 향했다. 넓은 공방의 대부분은 가야금의 몸통이 되는 오동나무가 서로 빗대어 널어져 있었다. 

산조가야금 오동나무

상당히 많은 양의 오동나무를 보면서 "이렇게 많은 나무를 악기로 만드시려면 엄청 바쁘시겠어요?"라고 물어보았다. "이게 다 악기가 되는 건 아니에요. 여기서 수년의 시간을 보내고 잘 삭은 나무만 악기로 만들어요" 족히 5년에서 7년 가까운 세월을 노지에 널어 둔다고 했다. 이 시간 동안 비를 맞고 눈을 맞으며 축축하게 젖기도 하고 한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고스란히 버텨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뚜렷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버텨야지만 악기가 되는 셈이다. 말씀을 듣고 보니 오동나무 밑면이 썩어서 검게 변한 나무들도 몇몇 보이기 시작했다. 때마다 오동나무를 뒤집어 주기도 하고 썩은 나무들은 버리면서 악기가 될 나무를 골라내신다고 했다. "기계로 빨리 건조해서 만들어도 겉모습은 똑같아요. 근데 소리를 들어보면 다르지" 어느 곳에서는 자연의 시험을 피해 대량생산의 기계를 택하기도 했다. 선생님은 오동나무를 손가락으로 튕겨보았다. 어느 것은 소리를 먹기도 했고 어떤 것은 텅텅 울리기도 했다. 험난한 자연의 테스트를 거친 오동나무의 마지막 관문은 선생님의 손가락과 귀로 결정이 났다.

'삭힌다'라고 표현한 이 과정 속에서 오동나무의 섬유질이 하나하나 끊어진다. 썩은 것이 아닌 삭은 것. 현의 떨림을 온전한 울림으로 전달할 수 있는 몸통이 되기 위한 조건. 

살아남은 것만 소리가 된다.  


이 과정이 악기장 편의 첫 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과정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많은 인서트와 비유들을 고민하다가 결론은 계절의 변화 속에서 오동나무를 보여주자로 귀결되었다. 겨울이 오길 기다렸다. 

중간중간 가야금 제작에 다른 부분들을 촬영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촬영감독님과 새벽에도 날씨 체크를 하면서 눈이 오는 날을 고르고 골랐다. 그중에 하루를 골라 해뜨기 전 하남의 공방으로 모였다. 아직은 눈이 오지 않았다. 카메라를 세팅하고 오동나무가 널린 곳에서 기다렸다. 오동나무에 눈송이가 하나 툭 하고 떨어졌다. "오케이! 슛 들어가시죠!" 

주름살처럼 패인 오동나무의 표면 사이로 눈송이들이 하나씩 내려앉았다. 오동나무는 금세 하얀색으로 변했다. 비탈진 산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겨울을 찍었다. 나는 '담았다'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장인의 과정에 자연은 떼려야 땔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그 과정은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없기에 지금처럼 좋은 때를 기다리다가 담아내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선생님의 제자분이 난로에 구운 고구마를 주셨다. 잠시 카메라를 두고 김이 나는 고구마를 다 같이 먹었다. 어느새 눈이 잦아들고 해가 떠올랐다. 

"오늘 찍길 잘했다" 

"그렇게요 이제 봄, 여름, 가을에 한 번씩 더 찍으면 되겠어요" 

Behind_ 눈 오는  씬을 찍는 모습

악기장 1화의 제목을 <살아야 소리를 낸다>라고 정했다. 

혹독한 시련이 좋은 소리를 만든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악기장 1화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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