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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혜 Nov 18. 2023

코펜하겐의 추억 2

외국인 노동자의 큰 포부

(1편에 이어)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검토좀 더 긴장하며 심사를 했고, 작은 차이도 크게 다가왔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걸 당연하지 않게 여겨야 다.


예를 들면 허가를 위한 품질 심사 시에 실생산 PV 자료를 요구하지 않는 대신 PV 계획서가 필요한 것은 동일했지만, 계획에 불과해 언제든 바뀔 수 있다며 가벼이 여겼던 PV 계획서를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배치로 PV할 것인지, 배치실생산과 어떻게 연계되고 파라미터는 어떻게, 왜 바뀌는지에 대해 검토해야 했다.


물론 품질심사GMP얼마만큼 포함할 것인가는 규제기관마다 다르니 우리나라와 WHO 심사 방식을 단편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같은 심사 내용을 가지고도 다른 시각으로 본다는 걸 직접 체험하니 원래 알던 지식이 새로워지는 느낌이었다.


심사자 저녁 모임에서 한 컷


심사 말고도 욕심나는 것이 한 가지 더 있었으니, 바로 동료 심사자들과의 친분이었다. WHO PQ에서는 심사자 '팀 빌딩'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서로에 대해 많이 알고, 같은 목표를 향해 나가는 '팀 워크'를 중시한다.


WHO PQ 프로그램에 4번 참여하는 동안, 나는 심사자들이 모이는 디너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시차 적응이 채 안 된 상태에서 하루 종일 꼼짝 않고 앉아 검토고 나면 몸과 마음이 금방 지친다. 얼른 숙소에 들어가 지친 심신을 '비비고 돼지고기 김치찌개'로 달래고 싶었지만,  한국 규제기관 대표(?)로서, WHO 프로그램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스몰 토크를 열심히 나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국가에서 온 사람들은 영어에 서툰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Swiss Medic에서 오신, 연배가 좀 높은 심사자 중에 그런 분이 계셨는데, 마음이 편하니 더 즐겁게 얘기했다.^^  스웨덴에서  분은 수영복을 가지고 다니며 코펜하겐 앞바다에서 수시로 바다 수영을 즐겼다며 자랑하시기도 했다. 우리나라 월미도 앞바다였으일단 색이 누렇고 탁한데다 <위험. 뛰어들지 마시오> 엄중한 경고문이 붙어있어 아무도 안 뛰어들었을 텐데. 코펜하겐 앞바다와 인천 앞바다가 비교돼서 재미있었다.


이런 저녁 모임 덕분에 현지인들이 갈 법한 핫스팟도 알게 되었고, 같은 목적을 위해 모인 다양한 나라의 심사자들과 어울리는 즐거운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인상 깊었던  한 가지는, 무려 1회부터 참가한 연세가 꽤 드신 심사자가 계신다는 거였. (나는 108회부터 참가했다) 우리나라였으면 벌써 은퇴했거나 관리자 직급이어야 마땅한 연세로 보였지만, 실제 심사 실무를 하시는 분이었다. 그런 분은 수십 년 동안 의약품 품질 심사를 해 오신, 그야말로 심사 장인인 셈이었다. 그런 분들이 몇몇 계셨다. 이렇게 수십  심사하는 것도 가능하구나 싶어 인상깊었다. 나는 그렇게 경지에 오른 심사자들이 가진 업무 철학이 궁금했지만, 시간도 없고 영어가 짧아 심도있게 대화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동료 심사자와 함께 한 저녁식사



코펜하겐에서의 추억이 아름다운 데는 동행했던 동료 심사자와의 케미가 좋았던 것도 한 했다. 같은 워킹맘이라 우리는 죽이 잘 맞았다. 도착한 다음 날 밖에 자유 시간이 없어 코펜하겐 시내를 걸어서 구경하는 반나절 코스가 전부였지만 우리는 즐거웠다. 앞서 4번의 PQ 참여 경험이 더 있는 동료가 코펜하겐의 유명 관광지(인어공주 동상, 니하운 운하)를 안내해 다. 몇몇 맛집과 기념품 쇼핑(덴마크는 레고의 고향이니 레고샵)도 둘이 함께라 즐거웠다.


매일 심사 자료와 조용한 전쟁을 치러야  우리는, 하루의 피로를 풀어줄 맛있는 저녁식사와 약간의 수다로 코펜하겐에서의 하루하루를 즐겁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귀국하기 전에 우리는 남은 레토르트 식품을 잘 싸서 2층 캔틴에 보관해 두었다가, 다음 차수에 가서 다시 유용하게 활용하곤 했다. 그러고보니 그것들은 다 어떻게 됐을까. 이미 4년이 지났으니 알아서 폐기했겠지? 폐기하신 분이 좀 고생하셨을 텐데, 한국어는 못 읽으셨으리라 믿는다...


매번 알차게 즉석 식품을 준비해 가서 잘 먹고, 남은 건 캔틴에 보관했다가 다음 번 방문할 때 다시 잘 활용했다.


이렇게 나의 식견을 넓혀주었고 호연지기를 길러줄 수도 있었던(^^) WHO PQ 심사는, 아쉽게도 2019년 11월 네 번째 참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참여할 수 없었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해 나라 간 이동이 어려워진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후 온라인으로 심사가 재개되었을 때는 내가 이미 다른 부서로 이동한 후였다. 


다만 옮겨간 부서가 품목 분류만 다를 뿐 어차피 품질 심사부서였기 때문 나는 내심 PQ 참여를 이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식약처에서는 국제협력 업무를 부서별로 운영하므로 그 부서를 떠나면 기존에 하던 국제협력 업무를 이어가기 힘들 뿐더러, 만약 이어간다 하더라도 본연심사 업무량이 워낙 많았기에 감히 PQ 심사까지 참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당시 가졌던 욕심은 지속적으로 참여하면서 WHO PQ에 인정받는 품질 심사자가 되는 것이었다. 열심히 하다 보스위스 제네바에 상주하는 WHO 정식 직원이 되는 길이 열린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길을 가고 싶다는 나름의 꿈을 품었지만, 결국 현실에 붙들려 꿈을 접어야 했다. 그래도 네 번의 PQ 심사 참여는 내가 국제기구에서 이루어지는 심사에 대한 인사이트가질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UN city 기념품샵에서 산 심장(heart) 인형! 네 군데 달린 작은 지퍼를 열면 혈소판, 혈장, 백혈구, 적혈구가 각각 튀어나온다. 이건 안 살 수가 없었다 ㅠㅠ




처음 나에게 업무를 제안하셨던 당시 과장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내가 흔쾌히 참여하겠다고 하자 과장님은 "그래, 한번 해 봐. 선생님, 업무 욕심이 많네."라고 하셨다. 그 기회는 품질 심사자로서 일하는 데 있어 좋은 경험이 되었으므로 과장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아울러 일주일 넘게 자리를 비우는 동안 엄마 없이 잘 있어 준 4살 서윤이와 시어머니와 서윤이 아빠에게 뒤늦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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