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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혜 Nov 21. 2023

왜 제약회사에 오셨어요?

그냥 식약처에 계시지

제약회사로 이직하고 나서 새 동료들에게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다. 이직 면접 때도 매번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왜 제약회사로 오려고 하세요?"



나는 식약처를 떠나 제약회사에 가고 싶었을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약과 직접 관련된 업무를 하고 싶었다.

내 첫 직장은 식약처였다. 식약처에서 약과 관련된 업무를 오래 해왔지만, 약은 늘 '문서 안'에만 존재했다.


의약품 심사 수백 장, 수천 장에 달하는 '문서'검토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심사자는 제약사의 수많은 고민과 시도가 녹아 있는 문서를 가지고,  규정과 비교해 검토하면서 더 필요한 자료를 보완 요청한다. 약에 대한 정보는 문서 안에서 찾아야 했, 진짜 '약'은 그 문서 반대편에 있는 느낌이었다.


정책부서에서도 그랬다. '규정 너머'에 약이 있었다. 규정을 다룰 때는 그 규정이 예외 없이 적용되도록 최대한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했다. 제약 현장에 있어 보지 않았던 나는 업무할 때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때가 많았다. 물론 현장에 있었다고 해서 모든 경우를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늘 내게 현장 감각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GMP 실사 지원을 나가면 이틀에서 사흘에 걸쳐 현장을 투어하고 실사장에 비치된 문서를 검토한다. 회사마다 다른 시스템을 이해하기에 주어진 시간은 늘 짧았다. 현장에서 만난 담당자들을 보면서, '이들은 이 시스템에 직접 종사하고 일하고 있으니 이걸 완전히 체득했겠지. 나는 그러지 못하니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시스템에 속한 채로 GMP 직접 업무를 수행하는 것과 실사를 통해 평가하는 역할이 분명 다르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괴리감을 좁히는 내겐 늘 어려웠고, 언젠가는 현장에서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둘째, 내겐 변화가 필요했다.

나이 마흔 살은 그리 적은 나이가 아니라는 조급함도 한 몫 했다.  14년, 그리고 5개월. 한 직장에서 지낸 햇수가 (헤드헌터 표현대로) '헤비'할 정도로 길었다. 시간이 더 지나 마흔다섯, 쉰이 되면 조직에서 맡는 역할도 달라야 한다. 조금이라도 '라이트'할 때 옮겨야만 적응도 쉬울 것이고, '영 아니다' 싶으면 다시 바꾸기도 비교적 쉬울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


내가 스스로 정한 은퇴 연령은 70세다. 70세까지 앞으로 30년. 새 커리어를 만들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기간이다. (나이 들면서 업무 퍼포먼스가 달라질 수 있고 조직에서 갖는 무게감이 다르다는  논외로 하자..) 실무부터 업무를 익혀 발전시켜 나가기에 마흔 살은 좋은 타이밍이라 여겼다. 어쨌든 마음이 기울었던 나는 더이상 이것저것 고민하고 재느라 시간을 더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내 첫 직장 식약처는 직장 '이상'의 의미였다. 젊은 날의 열정을 듬뿍 쏟았던 그 곳을 나는 제 발로 나가겠다고 했다. 떠날 때 얼마나 섭섭하던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울었다.



새 회사에서 나는 내가 가졌던 두 가지 이직 사유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한다.


그렇게 제약회사로 이직한 지 꼭 한 달 반이 지났다. 한 달간 교육받고 실무에 투입된 지는 2주째다. 막상 실무를 시작하니 내가 공직을 떠나 회사에서 구하고자 했던 것들이 얼마나 추상적이었는지, 또 한편으로 내가 얼마나 절실했었는지 깨닫는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업무와 조직 분위기 안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갔다하는 심경으로 조용히 혼자만의 전쟁을 치른다. 다른 수많은 경력직 신규입사자들처럼 말이다.


누가 그랬다. 보통 이직해서 몸담은 새로운 조직 에서도 3개월이 지나면 그 조직이 가진 모순과 불합리함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결국 실망하게 된다고. 그 말을 듣고서 좀 두렵기도 하다. 내가 어렵게 한 결정이 결국 실망으로 끝나버리면 어쩌지.


사실 지금도  식약처 예전 부서 업무 A/S 중이다. 정책부서는 늘 무거운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담당자들은 항상 머리 터지게 고민한다. 그래서 후임자 분이 여러  망설임 끝에 내게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남긴다는 것을 다. 나는 흔쾌히 예전 기억을 더듬어 내고 의견을 나누어 준다. 사실 예전 동료의 전화는 고향집에서 들려오는 소식 같아 내심 반갑기도 하다.


그러다 문득 '고향집으로 다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잠시 다. 하지만 나는 이제 회사원. 더는 공무원이 아니다. 내 기억과 경험과 인연을 소중히 할지언정 뒤를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열심히 앞을 향해 가다 보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목표가 주어지고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 줄 것이다.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이 곳에서도 좋은 인연을 다시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간의 경험을 근거로, 나는 나답게 다시 잘해 나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새 회사에는 커다란 곰돌이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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