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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혜 Dec 02. 2023

"거기 계신 것만으로 힘이 돼요"

선배가 도와준 게 없어 미안하다는 말씀에 내가 한 대답

식약처 직원들 성비를 보면 여성 비율 다. 추측컨대 식품과 의약품 전공자 중 여성 비율이 높고, 공무원 조직이라 육아휴직과 단축근로 등을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일지 모르겠지만, '윗분'들도 여성 비율이 높다. 연구와 심사 업무를 수행하는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은 특히 그렇다. 지금 재직하고 계신 원장님, 의약품심사부장님, 의약품심사부 5개 과 과장님 모두 여성분이다. 그 외 부서 여성 부서장 비율이 높다. 중간 관리자인 연구관들도, 그 아래 담당자들도 여성이 많다.


 중에는 나와 같은 학교를 졸업한 동문 선배들도  있었다. 지금은 숫자가 좀 줄었지만 과장 이상 윗분들 중에는 여전히 많은 분들이 활약하고 계신다.


동문 선배 중 한 분과 함께 단둘이 점심을 먹는 일이 있었다. 내가 속해있던 심사부서 과장님이셨던 선배는 나보다 무려 18년이나 앞선 대선배였다. 부서장과의 독대는 늘 어렵다. 더구나 잠깐의 휴식이 달콤한 점심시간에는 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업무 시간 중에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나누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선배와 점심시간 1시간을 독대한 그날,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얘기 끝에 선배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선배가 도와주지도 못하고, 미안하네."


말씀이 처음엔 의아했다. '각자도생'하는 조직생활이었다. 더구나 부서 이동이 잦은 공무원 조직에서, 학연을 근거로 인사에 우선권을 주는 경우를 많이 못 봤기 때문에 선배의 말씀이 뜻밖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렇게 후배를(=나를) 생각해주시는구나 싶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선배의 말씀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그냥 선배님들이 거기 계신 것만으로 힘이 돼요."


그 말에 선배님은 별 대답을 하지 않으셨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대답을 오래오래 곱씹으며, 나는 '말 한번 오글거리게도 했다'고 생각했다.  재치있게 받았어야 했나 싶었다. 하지만 내 말은 진심이었다. 육아휴직이 없던 까마득한 시절부터 묵묵히 그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 주신 것만으로 용기를 주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비슷한 각자의 처지에서 어려움을 이겨낸다는 '연대감'을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이직을 하고 여성 팀장 비율이 적은 직장에  보, 내가 했던 대답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팀마다 차이는 있지만 남성 직원 비율이 높고, 팀장도 공장장도 거의 남자. 말로만 듣던, '비공식 팀장회의'가 담배 타임에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복도 통신'이나 '카더라 통신'은 어느 조직에나 있지만, 내가 참여할 수 없는 '담배 타임'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하니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하나 있는 느낌이다. 이전 직장에서처럼 '내 미래에 대한 증거'가 눈앞에 있고 없고는 참 많이 다르다는 걸 이직하고서야 알게 됐다.




나도 한결같은 뒷모습을 보여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



선배들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된 뒤에야 깨달았다. 조직 생활과 인간관계는 늘 어렵지만, 그냥 거기에 선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말이다.


이제야 나는 선배들이 그립다. 내 5년, 10년, 그리고 20년 후의 미래가 눈 앞에서 다갔다 하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축복이었다는 걸 이제 와 깨닫는다. 그때는 그게 당연했기 때문에 축복인 줄 몰랐다. 그래서 생각했다.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선배가 후배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도 어느 곳에 있든 한결같은 뒷모습을 보여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 누군가는 지금의 내 뒷모습을 거울삼아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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