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직원들 성비를 보면 여성비율이높다.추측컨대 식품과 의약품 전공자 중 여성 비율이 높고, 공무원 조직이라육아휴직과 단축근로 등을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일지 모르겠지만, '윗분'들도 여성 비율이 높다. 연구와 심사 업무를 수행하는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은 특히 그렇다. 지금 재직하고 계신 원장님, 의약품심사부장님, 의약품심사부 5개 과 과장님 모두 여성분이다. 그 외 부서도여성부서장 비율이 높다. 중간 관리자인 연구관들도, 그 아래 담당자들도 여성이 많다.
그중에는 나와같은 학교를 졸업한 동문 선배들도있었다. 지금은 숫자가 좀 줄었지만 과장 이상 윗분들 중에는 여전히 많은 분들이 활약하고 계신다.
동문 선배 중 한 분과 함께 단둘이 점심을 먹는 일이 있었다. 내가 속해있던 심사부서 과장님이셨던 선배는 나보다 무려 18년이나 앞선 대선배였다. 부서장과의 독대는 늘 어렵다. 더구나 잠깐의 휴식이 달콤한 점심시간에는 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업무 시간 중에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나누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선배와 점심시간 1시간을 독대한 그날,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어떤 얘기 끝에 선배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선배가 도와주지도 못하고, 미안하네."
그 말씀이처음엔 의아했다. '각자도생'하는 조직생활이었다. 더구나 부서 이동이 잦은 공무원 조직에서, 학연을 근거로 인사에 우선권을 주는 경우를 많이 못 봤기 때문에 선배의 말씀이 뜻밖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렇게 후배를(=나를) 생각해주시는구나 싶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선배의 말씀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그냥 선배님들이 거기 계신 것만으로 힘이 돼요."
그 말에 선배님은 별 대답을 하지 않으셨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한 대답을 오래오래 곱씹으며, 나는'말한번오글거리게도 했다'고 생각했다. 더 재치있게 받았어야 했나 싶었다. 하지만 내 말은 진심이었다.육아휴직이 없던 까마득한 시절부터 묵묵히 그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 주신 것만으로 용기를 주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비슷한 각자의 처지에서 어려움을 이겨낸다는 '연대감'을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이직을 하고 여성 팀장 비율이 적은 직장에 와 보니, 내가 했던대답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팀마다 차이는 있지만남성 직원 비율이 높고,팀장도 공장장도거의 남자다. 말로만 듣던, '비공식 팀장회의'가 담배 타임에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복도 통신'이나 '카더라 통신'은 어느 조직에나 있지만, 내가 참여할 수 없는 '담배 타임'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하니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하나 있는 느낌이다. 이전 직장에서처럼 '내 미래에 대한 증거'가 눈앞에 있고 없고는 참 많이 다르다는 걸 이직하고서야 알게 됐다.
나도 한결같은 뒷모습을 보여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
선배들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된 뒤에야 깨달았다. 조직 생활과 인간관계는 늘 어렵지만, 그냥 거기에 선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말이다.
이제야나는선배들이 그립다. 내 5년, 10년, 그리고 20년 후의 미래가 눈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축복이었다는 걸 이제와 깨닫는다.그때는 그게 당연했기 때문에 축복인 줄 몰랐다. 그래서 생각했다. 그자리를 지키는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선배가 후배에게 줄 수 있는 큰 선물이라는 것을 말이다.나도 어느 곳에 있든 한결같은 뒷모습을 보여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 누군가는 지금의 내 뒷모습을 거울삼아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