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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혜 Jun 14. 2024

배우는 데 공짜 없다

글쎄 한 푼을 안 깎아 주더라니까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편이다. 학창 시절부터 스스로 '맷집이 있는 편'이라고 생각하며 여러 가지를 시도해왔다.


고등학생 시절 '경시대회 입상' 타이틀이 싶어 생물학 책을 독학해 어찌어찌 인천시 대회까지 나가보기도 했고, 학부 시절에는 실험실 경험을 해보려고 국립보건원(옛 질병관리청)에서 (아무도 원하지 않은) 실습생 신분으로 겨울방학을 보내보기도 했다.


직장인이 되고서도 뭔가 도전할 기회를 항상 엿봤던 것 같다. 새로운 업무에 도전하는 기회는 직장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선물이다. 그러다 얼떨결에 새롭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는데, 식약처를 그만두기 약 1년 반 전에 의약품심사부를 나와 의약품안전국으로 갔던 것이다. 임상정책과에 몸담으며 '임상시험계획승인' 업무를 1년 반 동안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훨씬 더 큰 변화를 겪었다. 새 직장으로 이직을 감행한 것이다. 남들 다 하는 이직, 대체 뭐가 특별한가 싶지만 내겐 직군과 직무를 완전히 바꾼 큰 변화였다.


내가 '도전이 두렵지 않다'고  수 있는 건 " 이어질 수많은 어려움 미리 구체적으로 고려하지 않음 + 스스로 깡이 있다고 대충 믿어버림"의 콜라보 때문일 것이다. 전자는 팩트고 후자는 음표다. 그래도 그냥 믿어버리면 그만이다.


도전이 가져다 주는 이득은 적지 않다. 경험해보지 않고선 절대 모르는 그 의 겉과 속, 쓰고 단 경험을 함께 하면서 얻 사람들과의 끈끈한 인연. 이런 것들을 무려 '월급을 받아가면서' 얻는다. "1+1(+a)"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한 가지. 배움은 공짜가 아니다. 꼭 그 1+1(+a)만큼 가격을 다 치러야만 얻는다. 나의 경우에도 다양한 대가를 지불했다. 익숙지 않은 업무를 하며 수시로 바닥을 치는 자존감, 함께 사라지는 자기효능감, 나에 대한 의구심, 동료들이 내게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그리고 (1인분 몫을 다 못하기에) 동료에 대한 미안함 같은 것을 대가로 치렀다. 의약품심사부에서는 경력이 적지 않은 품질심사자였지만, 임상정책과에서는 내가 가진 심사 업무 경험에서 살릴 수 있는 게 겨우 20% 남짓이었을 정도로(그나마 그 중 절반은 심사부 인맥이었던 것 같다..) 가진 것을 살릴 기회가 거의 없었다. 당연하다. 임상정책과는 임상시험 정책을 만들고, 승인을 해주고, 사후관리를 하는 부서니까. 품질심사 경험을 살리는 경우는 임상시험계획 승인할 때 받는 자료 중 일부에 대한 의견을 낼 때 뿐이었다. 내가 가진 20%를 제외한 80%는 처음부터 채워나가야 했다. 그리고 그걸 채우기 위해 숱하게 깨지고, 혼나고, 스스로를 미워하다 자기연민에 빠져 울고 하는 날들을 가로 치렀다.



그리고 최근에 무모하게도 나는 또 다른 도전을 감행해 그 가를 치르는 중이다. 과거에 대한 향수(별 영광은 없었음에도),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 잔뜩 먹어버린 나이에 대한 민망함(세월 가는 게 내 탓은 아니지만!), 이 길이 과연 맞나 하는 의심, 나보다 훨씬 숙련된 직원들에 대한 부러움, 급기야 스스로가 못나보임 같은 게 바로 그 가다. 가를 치르느라 헤매는 중이다. 이직을 결심하고 되뇌던 '헤맨 만큼 내 땅이다'를 모토로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내가 헤매던 땅을 뒤돌아보았을 땐? 역시 잘했다는 생각이 들 거다. 그거 하난 내가 잘 안다. 임상정책과에서 그렇게 힘들고 많이 울었지만(생각보다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 많았다), 그만큼 임상시험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사소하게는 경력기술서에 한 줄 더 쓸 수 있었고, 크게는 임상시험에 대한 대략적인 컨셉이 내 안에 자리잡았다. 어디까지나 "대략적"이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게다가 굉장히 희소한 업무 경험이다. 임상시험 승인 신청을 하는 회사와 담당자는 많지만, '승인담당자'식약처 명 뿐이니 말이다. 전국에서 유일무이한 업무 경험을 해봤으니 어찌 보면 행운이었다.


요즘 하루가 도무지 어떻게 가는지 모를 땐 업무 일지(감쓰용 일기장 비슷한 것)를 쓴다. 그날의 업무 옆에다 하루치 안타까움을 한가득 녹여내는 게 업무일지의 대부분인 지금, 나는 문득 기시감을 느낀다. 이건 아무래도 2년 전의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 답은 정해져 있다. 시간은 매우 빠르게 흐를 테지만 나는 그만큼 착실한 댓가를 치르고 뭔가를 얻을 것이다. 지금 나는 GMP의 정글을 열심히 헤매는 중이니까, 아마도 GMP 실무에 대한 깊은 이해와 내 이전 경험과 어우러진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거다.


요즘 우리 시대 도전의 아이콘 정김경숙님은 50대에 미국 실리콘밸리로 건너가 구글에서의 새로운 커리어에 도전했다. (사진출처=예스24)


배우는 데 공짜가 없는 데다 에누리에 소질이 없는 나는, 이번에도 역시나 마지막 푼까지 꼼꼼히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어떤 분은 오십에도 커리어 도전을 위해 태평양을 건넜다는데, 마흔 살인 나의 도전은 그래도 좀 그 대가가 저렴한 편 아닐까. 게다가 일시불이 아니다. 매일 치르는 할부 결제다. 어쩔 땐 (누구한테인지도 모를) "거, 조금만 깎아 줘요"가 목구멍까지 치솟지만 어디 커리어가,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했던가. 단 한번도 유하게 넘어간 적이 없다. 화가 나리만치 정직하게 가격을 치르는 정찰제다. 나는 그저, 언젠가 이 할부 결제가 끝나는 그 날을 기다릴 뿐이다. 가격을 다 치르고 나면 내가 찾던 귀하고도 견고한 뭔가를 얻을 테니 말이다.




(커버이미지출처=소비자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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