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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비슷한 'Q'업무의 본질

'Q people'의 업(業)이란

by 유지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크리에이티브 출신이지만 지금은 '책방 마님'으로 더 유명한 최인아 작가의 책,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는 제가 한줄한줄 깊이 공감하며 읽은 책 중 하나입니다.


무한 공감하며 읽은 최인아 작가의 책을 통해 '업'의 본질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반드시 자기만의 언어로 자신의 업(業)을 정의하기를 주문합니다. 작가 스스로 업의 본질을 찾고자 깊이 고민한 경험을 들려주면서요. 광고업에 오래 몸담았던 작가는, 오랫동안 자신의 일의 의미를 찾아 헤맸다고 합니다. 처음에 작가는 자신의 일이 '광고주들 매출을 올려주기 위한 작업'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불만족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차례 고민을 거듭하며 결국 본인이 찾아낸 업의 본질은, '창의적인 지식과 생각의 힘으로 고객을 위한 해법을 찾아주는 일'로 마침내 정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정의한 업의 본질은, 지금 하고 있는 책방 운영과도 연결된다고요. 세상의 정의에서 보면 광고업과 책방 사업은 분명 많이 다른 종류의 일이지만, 작가에게는 둘 다 '생각하는 힘으로 창의적인 해법을 내놓는'다는 점에서 동일한 본질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며 저는 제가 몸담은 '제약 품질' 업무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전과 지금 커리어를 비교하면서 말이지요.


이전 커리어에서 저는 품질심사 업무를 오래 했습니다. 업무의 많은 부분이 대학원 전공인 의약화학과 연결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동료 심사자들과 이리저리 고민해 가며 쌓은 심사 경험이 바탕이 되어, 제 전문성도 '품질'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렇기에 이전 커리어에서 제 정체성은 '품질심사자(Quality Reviewer)'였습니다. 부서를 바꿔 다른 업무를 하는 동안에도, 제 정체성은 바뀐 적이 없었습니다.


심사부에 몸담았던 시절, 한번은 심사부장님께서 큰 행사를 치른 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한 이메일을 보내신 적이 있습니다. 어떤 행사였는지 지금은 기억이 안 나네요. 기억나는 건 심사부의 모든 직원들을 대상으로 보내신 메일에서 따로 문단을 할애하여 'Q people'이라는 단어로 심사자들을 지칭하셨던 것입니다. 진정성이 듬뿍 담긴 직장 상사의 감사 메일을 받고 감동한 것도 처음이었지만, 그때 저는 저와 동료 심사자들을 저런 단어로 아우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Quality'의 앞 글자인 'Q'라는 글자 하나로 말이죠.


지금 직장인 제약회사에서도 저는 'Q'를 앞세워 일합니다. 저희 공장에는 'Q' 팀이 총 세 개 있습니다. QA(Quality Assurance), QC(Quality Control), 그리고 QM(Quality Management) 팀이 그것이지요. 여기서는 전보다 'Q' 글자를 더 많이 씁니다. 회의 등에서, '이건 Q 부서에서 챙기셔야 할 것 같아요.' '그분도 Q 출신이라는데요' 등 품질이라는 단어를 'Q'로 줄여 부르는 경우에서죠.


업무 성격은 바뀌었지만 제 정체성이 어쨌든 'Q 업무'의 테두리에 있다는 사실은 이전과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 많이 고민하는 것 중 하나는, '얼마만큼의 마지노선으로 품질을 사수할 것인가'입니다. 아예 규정에 정확히 나와 있거나 다들 동의하는 사항이라면 얼마든지 적용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규정 문구가 애매하거나, 과학적으로 꼭 했으면 좋겠는데 비용과 시간, 인력의 문제를 고민해 봐야할 때는 여러 요소를 따져봐야 합니다. 이렇게 품질 업무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선을 긋는 작업을 합니다. 이 선 이상으로 우리는 관리할 거야, 를 정하는 거죠.


돌이켜보면 이전 직장에서도 그랬습니다. 규정에 나와 있지 않은데 심사를 위해 꼭 밝혀줬으면 하는 것들이 있었죠. 과학적인 근거 측면에서 필요한, 미세한 빈틈을 메우는 것 같은 자료들입니다. 이런 자료를 제출받고 싶은 제 의도를 전달하고자 전화통이 뜨끈뜨끈해지도록 설명하느라 애를 먹은 적도 있습니다. 업체가 준비해 제출해주면 땡큐였죠. 이런 식으로 요구받은 자료를 갖추는 건 분명 공수가 드는 일이지만, 업체 실무 입장에서도 허가 초기에 자료를 좀더 갖추어 두는 게 더 나은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두 업무 다 '어느 선까지 품질을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 선은 왜 필요할까요? 바로 '품질에 대한 믿음'을 구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약을 만든 다음 하나하나 다 시험하여 품질을 입증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품질을 관리한다는 것은, 전체 생산량 중 대표성을 가질 수 있도록 최대한 공정과 제품에 대한 이해도를 키워야 가능합니다. 가능한 많이요. 그리고 제약회사가 그렇게 품질을 관리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환자는 약을 복용합니다. 저는 이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Q 업무의 본질은 바로 ‘믿음을 설계하고 지켜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사부서와 제약회사에서는 약이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시스템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자료를 만들고 기준을 세우고 절차를 정리합니다. 그 기준을 해석하고, 적용하고, 설득하고, 실현하는 과정이 바로 이 '믿음'을 만드는 요소입니다. 제약회사의 'Q 부서'에서는 “이 제품은 이렇게 관리하니 믿을 수 있다”라는 확신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심사부서의 'Q people'들은 “심사 결과, 이 제품의 품질은 이렇게 관리하면 타당하다”라는 심사 의견을 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매일 야근도 불사합니다.


방식은 다르지만, 둘 다 결국 환자의 손에 닿는 ‘믿을 수 있는 약’을 완성하는 과정의 한 축입니다. 믿음은 단기간에 얻을 수 없는 데다 한 번 무너지면 오랜 시간 걸려야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무게감 있으면서도 깨지기 쉬운 접시 다루듯, 늘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이렇게 '업무의 본질'을 생각하다 보니, 제 역할도 조금 더 명확해지네요. 저는 업무를 하며 상대방과 나누는 말과 판단이 모두 ‘이 사람이면 믿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Q person'으로서 책임을 다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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