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을 주되 기대는 좀 덜기로 했습니다
작년 가을에 쓴 일기를 한번 옮겨봅니다. 건강한 관계를 맺으려면 상대방과 조금은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직장생활에서도 마찬가지죠.
머리로는 잘 알지만, 제가 'F' 성향이라 그런 걸까요. 조절이 잘 안 되곤 합니다. 업무와 관계에 정성을 쏟다 보면 저도 모르게 슬그머니 애정과 애착이 자라나 있네요. 애정을 갖는 것까진 좋은데, 못난 기대감은 좀 따라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후폭풍이 거세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았거든요. 좀 건조해지는 법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당시 이런 일기를 썼습니다.
<2024.10.28>
얼마 전, 인사 관련하여 공장장님과 면담할 일이 있었다.
"회사 생활은 좀 어떤 것 같아요?"
공장장님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에 다니던 식약처에 애정이 컸었거든요. 저는 그곳이 '식약처'고, 첫 직장이기도 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여기서도 지내다 보니 회사에 애정이 점점 생기네요."
잘 지내고 있다는 말씀을 길게도 드렸다. '애정'이란 말을 '직장'과 함께 쓰다니. 오글거리는 대답이었으나 나는 진심이었다.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고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는 곳. 같은 공간에서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같은 목표로 매진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내가 가진 많은 것을 투자하는 곳인데, 애정을 안 갖기 더 힘들지 않을까.
나는 여기 대웅제약 오송공장에서 일하며 착실히 시간을 잘 보내고 있다. 우리 QA팀은 커버하는 업무 범위가 다양하다. 공장에서는 제조와 품질관리를 하면서 매일 많은 일이 일어난다. 그 일에 대한 GMP적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나는 아직 실무가 완전히 몸에 배지 않아 온전한 의사 결정을 하기가 좀 어렵다. 그래서 다른 직원들에게 물어 가며 배우고, 팀장님이나 다른 파트장님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며 배운다. QA팀에선 근거에 기반한 원칙주의자가 돼야 한다. 어렵지만, 그런 태도와 실무를 배우는 것이 내가 이 직장을 다니며 얻을 수 있는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실무에서 배워야 할 게 많기에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 익히고 있다. 여기저기 회의도 불려다닌다. 그 와중에 좀 집중해서 뭘 좀 보려고 하면 '품책 승인 요청'이 메신저로 마구 쏟아진다. 품질부서책임자에게 요청하는 승인은 매일 왜 이리 많은지. 게다가 늘 '급하다'는 읍소가 따라붙기에, 내 일 하다 말고 급하다는 걸 먼저 처리해 준다. 그뿐인가. 조직 차원에서 내가 과연 회사의 인재상에 부합하는지 입증하는 프로세스도 밟는 중이다. 뭐 하나 안 중요한 것이 없다.
이렇게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들이다 보면, 몸과 마음이 지치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보낸 시간을 되돌아보면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 마음 한 구석에 '애착'이라는 녀석이 슬며시 자라나 있다.
돌아보면 전 직장에서도 그랬다. 밤 열한 시까지 심사 서류를 들여다 보던 시간, 이해 안 가는 외국 가이드라인을 읽고 또 읽었던 시간, 부족한 스스로를 탓해가며 매달리고 애쓰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하루에 열 몇시간을 보낸 그 공간에 애착이 갔다.
사람들은 또 어땠는가.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사람, 뜻이 달라 서로 힘들게 했던 사람, 나를 위로했던 사람, 공감대를 찾아 소통하기 위해 내가 애썼던 사람. 나와 어떤 '파장'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거기 다 있다.
그런 것들을 내려놓고 나오면서, 나는 나의 일부를 떼어놓고 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누가 나가라고 떠민 것도 아닌데 꽤 오랜 기간 마음이 허전했다. 생각보다 더 컸던 애착을 한순간 떨쳐내기가 영 어려웠다. 합리적인 '이성'이 내린 결정의 후폭풍을, '감정'이라는 녀석이 온몸으로 맞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나는 감정을 어렵사리 추슬러야 했었다.
공장장님께 드렸던 말씀과, 퇴직 당시 내 모습을 며칠 간 곱씹으며 나는 이제 태도를 좀 수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직장생활을 언급하면서 '애정'이나 '애착'이라는 단어를 같이 쓰지 말아야겠다고 말이다. 단지 이 표현이 오글거려서가 아니다. 직장과 내가 관계 맺는 방식은 조금은 건조해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애정을 갖다 보면 그에 비례해 어쩔 수 없이 ‘기대’가 자라나기 마련이다. 열심히 했을 때 누군가 알아봐주길, 내가 애써 만든 결과가 조직에서 인정받고 그만큼 변화가 생기길 바랐다. 그 바람은 '기대'가 되고, 그 기대는 곧 감정처럼 슬그머니 자란다.
그런데 조직은 그런 내 기대를 하나하나 맞춰주지 않는다. 조직은 개인의 기대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이 원하는 바를 주지 않는다고 해서 직장생활에 실패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걸 종종 잊은 채 텅 빈 그릇 같은 기대감에 서운함을 주워 담은 적이 꽤 있었다. 스스로 '못난이'라고 자책도 했다.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유은정 정신건강전문의가 쓴 책이다. 책에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만' 상대를 배려하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직장과 나 사이에도 그런 성숙한 관계 맺는 법이 필요하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만 말이다.
나중에 돌아서면서 '또또! 나만 진심이었지!'하며 혼자 토라지고 싶지 않다. 두 번째 스테이지인 이 곳에서 나는 처음처럼 모든 마음을 걸기보단 한 걸음 정도 여백을 남기는 방법을 배우기로 했다. 그래야만 불필요한 감정 소모 없이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