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해 온 시간의 단위, 15년

커리어에도 '세대'가 있다면

by 유지혜

일터에서는 다양한 인연으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 유독 15년 가량 앞선 선배들과의 관계가 특별하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식약처에 있을 때 모셨던 J 과장님은 저와 상사-부하직원 말고도 조금 더한 인연이 있으셨습니다. 같은 학교 선배셔서 내적 친밀감이 더 있었죠. 거기다 우연히 제 친한 친구와 과장님의 따님이 같은 회사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 신기했죠.


같은 부서에서 일하기 전엔 되게 차가운 분이실거라고 지레짐작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서 함께 일하면서 알게 된 J 과장님은 겉모습보다 훨씬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업무적으로나 인간적으로 후배들을 생각하시는 마음을 많이 느꼈기에 늘 존경스러웠습니다. 지금은 퇴임 후 다른 기관에서 일하고 계신데, 숫기 없는(?) 제 성격 탓을 하며 편하게 연락드리고 있진 않지만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선배입니다.


지금 제가 다니는 회사의 공장장님도 저보다 약 15년 앞선 커리어를 가지신 분입니다. 공장에서 30년 이상 근무하신, 그야말로 이 분야 '장인'이십니다.


회의 때마다 (아는 것이 매우 많으셔서) 긴 말씀을 전해주실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긴 말씀이 별로 길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말씀 속에 담긴 내공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겉모습보다(?) 훨씬 스윗하시기도 합니다. 저보다 업무적으로 더 가까이에서 자주 뵙는 팀장님들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팀장이 아닌 실무자로서 두발짝 떨어진 곳에서 뵙는 저는, 선배로서 공장장님이 참 존경스럽습니다. 공장의 몇 안 되는 약사라는 점에서도 내적 친근함이 있고요. 그렇다고 제가 뭐 특별히 잘해드리는 건 아니고요.(^^;) 멀리서 마음속으로 응원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15년이 넘었습니다. 그전에는 15년 앞선 선배들만 있었다면, 이젠 저보다 15년 후에 입사한 후배들이 생겼습니다. 이십대 중후반의 신입사원이나 인턴들입니다. 저보다 한참 어린(?) 그들과도 함께 일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선배들을 보며 그랬던 것처럼, 그 후배들은 저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할 것입니다.


‘와, 오래 일한 사람이다.’

‘저만큼 일했으면 뭔가 노하우가 많겠지?’

‘42살이라니... 정말 나이 많은(?) 선배구나!’


..같은 생각들 말이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과거의 지금의 저를 비교해 보게 됩니다. 스물여섯 살, 새파란 신입사원이던 시절입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부끄러운 기억들이 참 많네요. 미숙하고 뭘 몰랐죠.


지금은 어떤 주제에 대해선 ‘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모르는지도 알게 되었지요. 모르는 건 어디에 물어야 할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백배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더해, 일터에서 만난 선배와 동료, 후배를 대하는 방법도 조금 알게 되었고요. 그러고 보면 확실히 직장인이란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끼는 건, 제가 존경하는 선배들처럼 30년 넘는 시간을 조직에서 보낸 분들이 가진 시야와 통찰을 짐작하기에 제 경험이 많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한참 더 필요하죠.


물론 앞으로의 15년은 지금까지의 15년과는 다른 결을 지닌 시간일 것입니다. 같은 15년이라도 20대 신입사원과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부터 50대 중반까지의 그것은 분명 다르게 흐를 테니까요.



직장생활이라는 커리어의 중반쯤에 서 있는 지금, 가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직장에서 무엇을 얻고 싶은 걸까? 월급이나 전문성, 안정적인 휴식 같은 ‘보장된 것들’ 외에, 일을 통해 진짜로 얻고 싶은 건 뭘까? 라는 질문으로 말이죠.

그 질문 끝에 도달하는 건, 바로 제가 가진 경험이나 지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매끄럽게 성과를 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저는 특히 “그 사람이 있어서 일할 맛 난다”는 말 한마디가 욕심나네요. 그게 직장생활의 가장 큰 의미인 것 같습니다.


조용히 길을 만드는 사람, 불필요한 긴장감을 덜어주는 사람, 필요한 순간에 든든히 뒤를 받쳐주는 사람. 앞으로의 15년, 20년은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습니다. 특히 여자 후배들에게 '좋은 언니'가 되면 더 좋겠네요.



존경하는 선배들과 저 사이엔 15년쯤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함께 일하는 신입 후배들과 저 사이도 딱 그만큼의 시간이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커리어의 한 세대가 15년쯤이라면, 저는 이제 그 한 세대를 건너온 셈입니다. 후배들에게 대단한 해답을 주진 못하더라도, 어딘가에서 저와 그랬던 것과 비슷한 이유로 망설이고 있을 후배에게 “나도 거기 있었어”라고 말해줄 수 있다면 좋겠네요.


앞으로의 15년은 그렇게 한 세대를 건너온 선배의 마음으로 다음 세대를 힘껏 응원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두 번째 직장과의 관계 맺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