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숨과 마지막숨을 함께 하는 존재
미국엔 'death midwife'가 있다. 직역하자면 '죽음산파'라고 한다.
이들은 죽음을 앞둔 사람과 그의 가족들의 감정적인 부담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키고, 환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지막 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다. 죽음산파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프로세스나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죽음에 대한 계획을 돕기도 하고, 환자의 유서 작성을 돕기도 한다.
'죽음'과 '산파'라니.
정말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산파'란 아이를 낳을 때에 아이를 받고 산모를 도와주는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바깥세상에 처음으로 나와 빛을 보는 순간, 그 순간을 함께 하는 사람이 바로 산파인 것이다.
헌데 이런 산파의 앞에 '죽음' 이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그 의미는 확연히 달라진다. 죽음을 돕는 산파. 태초의 상태로 돌아가는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는 산파. 세상에 첫 숨을 내쉴 때 함께했던 존재가 인생의 마지막 숨을 내뱉을 때에도 함께 한다니, 이렇게 오묘한 낭만이 따로 있을까.
가끔 나의 마지막을 상상해보곤 하는데, 죽음산파의 존재를 알게 된 후로 그녀는 이따금 나의 마지막 순간에 내 곁에 있곤 했다. 죽음이 서서히 다가오는 공포를 나와 함께 나눠 겪어 주곤 했고, 가끔은 내 뒤에서 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와 가족들과 함께 방어회를 먹기도 했고, 내 호흡이 불안정해지는 순간엔 함께 쉼호흡 하며 서서히 안정을 되찾게끔 도와주기도 했다. 고통스럽게 죽고 싶지 않다고, 자다가 편안하게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는 나의 요구를 유일하게 들어주고 도와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남겨질 이들보다는 온전히 나의 마지막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 덕분에 나의 마지막 숨은 그저 평온하기만 했다.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문득 유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삶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나의 삶이 마지막 순간을 맞게되는 때까지도 그저 나로써 존재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했던 순간들로 글을 채워 나가다보면 무언가를 깨닫게 될 것만 같다.
모두의 마지막 순간이 그저 평온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