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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독이 Jun 07. 2023

나는 내일도 고래를 잡는다

에세이, 한 스푼

'이 낚싯대만 있으면 고래도 잡을 수 있을 거야.' 


K는 아침부터 스산한 낚시터 가장 위쪽에 자리 잡고 앉아 하염없이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자신이 발명한 '최첨단울트라프로페셔널초엘리트' 낚싯대와 함께. 물론 본인 피셜이었지만. 


기괴한 모양의 낚싯대는 어디서부터가 시작이고 어디까지가 끝인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신없게 생겼더랬다. 사실, K가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았더라면 누군가 땅바닥에 던져놓은 고물 정도로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K가 자신이 있는 데는 이유가 있긴 했다. 이 고물, 아니 '최첨단울트라프로페셔널초엘리트' 낚싯대로 낚시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항상 오후 5시쯤 되면 제법 큰 물고기가 잡히곤 했다.

전날에도 5시, 전전날에도 5시, 무수한 지난날 동안에도 5시.

이 정도면 물고기랑 짜고 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항상 5시쯤에 한 마리가 K에게 잡혀줬더랬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마냥.

이걸 K는 최첨단울트라...... 너무 길다. 그냥 '최첨단 낚싯대'라고 부르자.

이걸 K는 최첨단 낚싯대 덕분이라고 항상 말해왔고, 어느 정도 신빙성은 있는 듯했다. 


K는 매일 이른 아침부터 낚시를 시작한다. 그렇게 시간을 낚다가 오후 5시에 한 마리를 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럼 그냥 5시에 맞춰 낚싯대만 던져놓으면 알아서 물고기가 잡히는 게 아닌가 싶어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난 그냥 희망을 던져놓는 거야. 언젠간 다른 시간에도 물고기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게 좋아. 혹시 알아? 내가 아침에 고래를 잡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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