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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Dec 27. 2023

고마워요 도시락씨

[하늘과 바람과 별과 食]7

[ 우리는 그저 살기 위해 살지는 않습니다. 왜 사는지 묻고 따지고 싶어 산책을 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으려 합니다 . 이래 저래도 이유는 분명하지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답게' 사는 건가에 대한 물음에 자기 자신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나를 제외한 모든 인간은) 타인의 안녕도 챙기면서라고 대답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느덧 열흘뒤면 2023년이 각자의 갤러리 속 한 장면, 한 장면으로 잠깁니다. 한 해 동안 내가 '오늘도 안녕'하게 살아내는데 도움을 준 모든 것(표상뿐만 아니라 물자체까지도)에 대한 인사를 해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입니다. 늦더라도 열흘 안에는 그 고마움을 고백해야겠습니다.

_________2023년에게 보내는 공개고백_7 ]




3월 2일

네모난 도시락 속 두부 반모.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올바른 김 한 팩. 내 몸속으로 뒤섞여 들어가 묻는다. 세상이 알려주지 않는 것을 과감히 알려고 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단백질, 염분, 철분, 미네랄로 몸은 비록 성인이더라도 의식 상태는 미성년일 수 있다고. 이성을 통해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지독한 독단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부드럽게 강요당한, 그 느낌 그대로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4월 19일

인간은 위대하면서도 볼썽사납다. 하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마구 먹어치운다. 그렇다고 위대한 인간의 면모를 밝히지 않으면서 얼마나 볼썽사나운지만 떠벌리는 건 위험하다. 반대는 더 위험하다. 식도에서 이어진 그 입을 빨락에 쫀득한 난을 듬뿍 찍어 씹으면서 막는다. 잘근잘근 입속 구석구석을 발라버리는 빨락을 느끼면서 생각한다. 내 안의 폭력적 본능을 알아차리지 못한 짐승같은 천사가 되려는 건 아닌가.




5월 11일

반숙 계란 두 개, 두유 한팩의 에너지는 시시껄렁한 잡담이나 얼렁뚱땅 애매한 질문에 묻혀 내가 누군지 외면하면서 사는 나보다 훨씬 크다. 세상이 던져주는 수많은 재미난 일들 속에서 내 페이스를 잃으면서 먹고, 마시고, 또 먹고, 또 마시는 몸뚱이 보다. 아니다. 나의 페이스가 어느 정도인지를 잘 모른다. 그렇게 '일반적으로'라는 생활 방식을 무작정 따른다. 당이 충전되면 될수록 나의 존재 가능성을 헤아리면서 미리 앞질러 거기에 가 있으려고만 한다.




6월 8일

김치찌개 국물을 전자레인지에 넣어 돌린다. 기다리는 동안 특정 공간을 차지하는 있는 나를 느낀다. 별거 없다. (점심을) 먹어야 하듯이, 나와 우리 집 타닥이, 봉선화의 공통점이다. 더 분해하고, 더 조작하고, 필요한 것만 추출하고 실험한 결과로써의 띠링, 띠링. 전기가 제대로 흘렀고 국물이 뜨근해졌다.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냉기에 온몸은 오싹한다.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유한한 나에게는 무한한 정신이 뒤섞여 있다. 나와 타닥이, 스파티필름의 차이점이다.




7월 17일

따끈한 현미밥알에 뒤섞여 꼬득 꼬득 씹히는 무말랭이 덕에 지금이 과거와 이어진다. 지금과 비교하면 나의 과거의 모든 것이 옳았다고 할 수 없다. 당연하다. 그런데 이 말은 지금의 모든 것이 옳을 수만도 없다는 의미다. 인정하지 싫은 건 위대하고 대단한 권위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이미. 하지만 짭조름하게 마음껏 표현 안 하는 것은 구석구석에 똘똘 뭉쳐 자리 잡은 먼지처럼 잘못된 선입견이 그득하기 때문이다. 조금 다행인 건 그런 선입견이 작동하는 동안에는 다른 선입견을 자각할 수 없다는 정도다.  




8월 3일

식은 잡채는 프라이팬에 기름 듬뿍 두르고 달달 볶아내면 원래보다 훨씬 더 잡채답다. 잡채는 잡채다. 그저 남들과 비슷해지려고 자기 자신을 달달 볶아내는 나다. 그러면서 약자의 강점만을 찾아 동정한다. 강자의 약점만을 찾아 혐오한다. 그렇게 수없이 볶여 지기만 한 내 안의 공격성. 지금껏 (제대로 또는 지혜롭게) 발산되지 않은 그 공격성이 내게 드리워진 죄책감의 원천이다. 연말정산에서 많이 돌려받으려면 원천징수된 게 많아야 하는 원리조차 실천하지 못하는 듯 살아낸다. 그나마 쓰고 있어 행운이다.



9월 11일

두부반모에 삶은 계란 2개. 짭조름한 김 한 팩. 어느날과 같다. 어제일 수도, 작년일 수도, 열한 살 때의 그날 점심일지도. 그렇게 나의 믿음은 이미 내 안에 있다.. 하지만 한 번도 스스로 점검해 본 적은 별로 없다. 관성이다. 어려서부터 자주 들었거나 교실에서 사무실에서 네모상자 속에서 떠들어 주입된 내용을 찰떡처럼 믿을 뿐이다. 다행인 건, 정말 다행인 건 마음 가짐을 바꾸면 태도가 바뀌고, 태도가 바뀌면 나의 그 믿음에 새겨진 스크래치를 하나라도 더 발견할 수 있다는 거다. 도시락이 가져다준 위대한 발견이다. 인식과 행위는 입과 항문처럼 이어져 있어야 쓸모가 있는 거니까.



10월 31일

혼자다. 랩핑 한 단호박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딱 30초. 그 사이 메신저에 답을 했다. 클릭, 보낸다. 그러자 금세 사무실 전체에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다. 그렇게 며칠을 탄 내가 나와 동료들을 귀찮게 했다. 미안한 마음을 갖고 지내게 했다. 다시는 랩핑 한 단호박을 가지고 오지 않는다. 아니면, 가져와서 그냥 안 돌리고 먹는다. 그것도 아니면, 30초 동안 전자레인지 앞에서 전자파 샤워를 한다. 사건은 그 자체로서 진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경험에서 발생한 사건이 진리가 되려면 꾸준하게 작업하고 계속해서 탐구하고 영원히 사랑하는 충실성이 필요하다는 바디우의 조언을 실천해야 한다.




11월 15일

지하주차장. 엘리베이터옆에 새로운 전단지가 하나 붙었다. 새로 개업한 식당. '소비자가 식재료를 까다롭게 고르지 않으면 생산자는 절대 그러지 않습니다'.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그래서 밉다. 그런데 그 마음을 가지는 순간 흐트러지는 나의 평정심은 보이지가 않는다. 왜. 정당하다고 생각하니까. 미워하는 마음이 올라오면 더욱 기분 좋게 매콤하고 뜨끈한 게 떠오르는 이유. 행복을 미뤄서는 안 된다는 이 말을 조금이라도 실천하고 싶어서다. 그런 뒤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산책을 하고, 자유를 상상한다. 그러면 훨씬 나아진다. 행복을 미뤄서는 안 되니까.




12월 26일

친구 텃밭에서 얻어 온 속 노란 배추 된장국. 아내가 꼬박꼬박 챙겨주는 유기농 현미쌀로 내가 지은 밥. 수많은 김의 세계에서 제대로 정착한 올바른 김 두팩. 올해 내가 나였다는 것을 두 가지만 꼽으면 도시락과 글쓰기. 나의 (어쩌면) 유일한 탁월함은 꾸준함이다. 그저 혼자 위로하고 감탄하는 게 한계이지만. 공공 영역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면서 그 꾸준함을 발휘해야 할 일만 남았다. 올 한 해도 가득가득 도시락이 알려준 명확한 과제다. 절제 가득한 도시락이 알려준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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