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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an 13. 2022

익숙한 타인들(1)

아파트에서만 만나는 사람들

평소 우리는 끊임없이 이동을 합니다. 물론 거실에서 안방으로 가는 것도 이동이고, 서울에서 제주도로 밴쿠버로 가는 것도 모두 이동이지요. 하지만 몇개월, 몇년간, 아니 더 긴 기간동안 정기적인 이동이라면 등하교를 위해, 출퇴근을 위해  하는 이동이 아닐까 싶네요. 궁극적으로는 밥벌이를 위해서.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고 볼 수 있지요.

 

이렇게 사설이 긴 이유가 있습니다. 비슷한 시간에 나가고 돌아올 때면 거의 본능적이게 같은 길로 걷고 달립니다.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정류장에서 같은 버스를 탑니다. 한 두번은 다르게 달려보지만, 그래도 언제나 달려갔던 그 길이 편안합니다. 거의 대부분이 그렇지요. 가장 안전함을 느끼기 때문이지요. 늘 앉던 자리가 편하고 늘 가던 길이 왠지 더 안정적이니까요. 저에게 지금 출근하는 길은 그렇게 20여년이 넘은지 4년이 더 지나갑니다. 


어떨때는 신나서 걷습니다. 어느때는 맥없이 달립니다. 한 걱정을 안고 고개를 떨구고 걷기도 했습니다. 그럴때만다, 거의 언제나 그 길에서 만나게 되는 이들이 있습니다. 만난다기 보다는 스쳐지나간다는 표현이 더 맞겠지요. 하지만 서로 일면식도 없는 타인인데 마치 오래 알고 지낸듯이 나 스스로는 매우 익숙한 이들입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거의 매일 아침 2단지 신호등앞에서 앞에 옆에 있었던 7826  흰색 승용차가 보이지 않는 다는 게 의식이 되었습니다. '어? 안보이네'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걸 옆에 타고 있던 아내가 듣고 물었습니다. '누구?'하고. '어 아침마다 내 앞에 항상 보였던 흰색 차'하고 대답했습니다. 


미세먼지가 심했던 지난해 봄을 지나면서 나타났습니다. 트렁크 손잡이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나란하게 초보운전 노란 스티커가 한참 붙어 다니던 흰색 승용차였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여름을 지나면서 스티커가 떼어졌었는데요. 어느 날 아침, 혼자 또 중얼거렸습니다. '와~ 초보 딱지가 떼졌네' 하고. 2단지에서 앞뒤로 출발해서4번째 신호등에서 방향이 달라집니다. 저는 직진을 하고, 7826은 우회전을 합니다. 하지만 병원 앞 사거리에서 다시 만납니다. 그러다 큰 다리 앞 신호에서 이번에 저는 좌회전을 하고, 7826은 직진을 하면 잠깐의 만남이 끝납니다. 그런데 그 차가 한참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가는 길이 바뀌었나?', '직장을 옮겼나?'. 괜시리 궁금해집니다. 슬쩍 걱정되기까지 하네요. 


그러고 보니 순간 내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있어주는 이들이 궁금해졌습니다.  반복되는 이동중에 만나는 이들은 내 일상을 꾸려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그 '익숙한 타인들'을 소개합니다.


아침 7시가 막 넘으면서 지하주차장으로 향합니다. 106동 동쪽 계단으로 막 드러서려는 모퉁이 주차장. 항상 시동을 걸어놓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하는 아저씨 한 분이 있습니다. 내 또래의 아저씨입니다. 저처럼 무척 과묵한 표정이신데, 다리를 과하게 벌리고 스쿼트에  열중이십니다. 그때 만큼은 그 표정이 엄숙하고, 근엄하게 느껴집니다. 운동에 진심이신 몸짓입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요. 물론 저 혼자만. 하지만 몇년이 넘게 꾸준한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얼마전 함박눈이 내린 차 앞에서, 아무도 밟지 않은 눈위에 두 다리를 딛고 엉덩이에 눈이 닿을때까지 앉았다 일어났다를 하기도 하더군요. 저도 스쿼트를 즐깁니다. 그래서 더 눈길이 가는 또래 아저씨인가 봅니다. '아저씨, 언제나 우리 같이 더 건강하게 삽시다!'


지하 주차장을 빠져 나오면서 바퀴가 달린 커다란 파란색 통에 각종 청소도구를 담고 끈으로 끌고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청소도우미 아주머니도 자주 만납니다. '다다다닥'하고 지하주차장에서 지상으로 나오는 길위에 바퀴 부딪히는 소리가 먼저 들려 옵니다. 그 뒤 어김없이 한쪽으로 비켜 선 그 아주머니는 언제나 제 차를 향해 기분 좋은 목례를 해 주십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몇번이 죄송해서, 지금은 항상 목례를 같이 나눕니다. 짙은 선팅 유리 사이로. 가끔은 1층 현관에서 바닦 청소를 하고 계십니다. 13층 우리집 엘리베이터 앞을 쓸고 계십니다. 그때마다 큰소리로 인사를 드립니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아침마다 목례 드리는 사람이에요. 고맙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라고. 속으로 외칩니다. 그 목례를 하고 나면 저도 기분이 너무 좋아집니다. 

 

주차장을 빠져 나오면서 크게 좌회선을 해야 합니다. 그쪽에 105동 입구가 있습니다. 이틀에 한번 꼴로 그 앞에는 인도와 차도에 걸쳐 있는 택배 차량이 있습니다. 아침 배송, 당일 배송 뭐 이런 배달중인가 봅니다. 원래는 식품을 배달하던 트럭같아 보입니다. 무슨무슨 택배가 아니라, 모모 식품이라는 색바란 스티커가 지워져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대부분 트럭 뒷문은 항상 열려 있고, 운전자 분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오르락 내리락 하시면서 '고객님의 소중한' 택배 물건을 배달중인가 봅니다. 큰 도로로 나가기 위해 좌회전을 하기 전, 오른쪽 룸미러로 열려 있는 트럭속이 들여다 보입니다. 깊은 구멍속에 엄청나게 짜잘짜잘하게 나뉘어진 택배 상자들이 수북합니다. 오늘도 하루 종일 상자들을 날라야겠지요. '얼굴은 직접 한번도 뵌적이 없네요. 나이대도 잘 모르지만, 너무 성실하시니까 큰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늘 고맙고, 존경스럽습니다 ' 하고. 


아, 한 아이를, 아니 한 청년을 깜빡했습니다. 스쿼트하는 아저씨를 만나러 가기 전, 그 이른 시간에 106동 출입문을 나오면 주차장 건너편에 밑에는 반바지(거의 일년 내내 반바지 였던 것 같습니다)에 위에는 두꺼운 패팅에 모자 또는 얇은 후두티 속 모자를 꾹 눌려 쓴 이십대 청년이 휴대폰을 들여다 보며 담배를 피웁니다. 그 청년은 초등학교 고학년때부터 봐왔던(?) 아이입니다. 중학생이 되면서 부터는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면 담배냄새가 묻어 나곤 했습니다. 이제는 스무살이 넘어 아주 당당하게(?) 기호 식품을 즐기는 모습이 기특하기 까지 합니다. '담배를 줄이고 건강하게 사회 생활 잘 하세요!' 라고 기원해 줍니다. 


오늘은 이 분들만 먼저 소개(?)해 드립니다. 저의 익숙한 타인들은 다음에 계속 이어 쓰겠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의 '익숙한 타인들'의 평화와 건강을 같이 빌어 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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