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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pr 22. 2022

어떤 유형에 속할까 보다는...

  우리들은 내가, 이 사람이, 그분이 어떤 유형(?)의 인간일까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혈액형별 성격이 그랬고, 요즘 아이들이 열광하는 MBTI가 그렇습니다. 최근에는 진로 교육이 조금 더 체계화되면서 남녀노소 모두에게 MBTI처럼, 어떤 류의 인간 유형(?)으로 분류되는 기회를 가끔 접하게 됩니다. 자그마한 휴대폰에서 검색을 하면, 체크 몇 번에 나는 어떤 인간이다, 라는 결과가 툭하고 나오기도 합니다. 물론 일상에서 밥벌이에서 나와 남을 조금 더 이해하고 지금 상황에 맞는 언행에 대한 조언 정도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부터라도 내가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를 남의 시선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자기 이해를 위해 큰 도움이 되긴 합니다.


  그런데 이런 몇 가지 유형중 하나로 나를, 이 사람을, 그 학생을 분류하는 것의 부작용에 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큰 부분인 교실에서 학생들을 접할 때 문득문득 느끼게 되는 그런 류의 부작용입니다. 그 부작용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1. 자기 한계에 대한 만족입니다. 유형 분류의 주요 목적은 자신의 강점에 대한 인지와 강화를 위한 노력과 연습이 아닐까요. 그런데 많은 학생들의 경우 강화를 위한 노력보다는 나는 이런 류의 사람이기 때문에, 저런 역량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없다, 는 자기 스스로 정해 놓은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에 만족해서 지금처럼만 살아보려고 합니다. 개선이나 강화를 위한 현실적인 노력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이 대목은 어쩌다 어른이 된 우리에게서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 같은 유형의 사람에 대한 자기 동일시입니다.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의 강점을 바라보면서 그 강점이 마치 자신의 강점인 듯 말하고 행동합니다. 건강한 모방심리이지만, 이 부분은 나의 강점보다는 내가 존경하고 부러워하는 타인의 강점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자신의 허상을 좇느라 자신의 강점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됩니다. 반복될수록 진짜 자기보다는 만들어진 자기의 컨셉으로 일상에 임하게 됩니다.


가장 큰 부작용은 동일시되는 상대에 대한 몰이해와 급격한 감정적인 접근입니다.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훅 하고 감정적으로 달려들 수 있지요. 그렇다는 이야기는 반대로 자신이 분류당한 유형과 대척점에 있는 사람에게 대해서는 막연하게 거부감을 갖거나, 자신의 부족한 이해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결국 분류를 당한 상황에서 분류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것 또한 자신의 삶이 아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런 인간 류의 분류 방식에 던지는 기본 메시지는 '우리는 모두 다르다'가 아닐까요. 그렇기 때문에 어린 나이의 사람일수록, 나이가 들어서도 컨트롤이 필요한 경우에도 인간관계에서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시각으로 바라바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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