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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y 03. 2022

'주눅'의 근원을 찾아서 2

토요일 아침입니다. 베란다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 사이 도로가 많이 여유롭습니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보이차 한잔이 빈속을 깨끗하게 씻겨 줍니다. 뱃속이 따듯해지고, 눈이 맑아집니다. 어제까지 사나흘 간의 평가 일정이 끝났습니다. 멀미를 느끼면서도 23년간 99.95%의 성공률답게 별 탈 없이 잘 끝났습니다. 결과를 보니 학습력이 많이 저하된 아이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습니다. 그래도 그 결과 정도로는 학교의 오월을 처음으로 만끽하려는 아이들의 기분을 막아내지는 못합니다. 


월요일부터 사흘간 축제가 진행됩니다. 게다가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는 발표 덕에 골반을 흔들고 어깨춤까지 추면서, 다소 격앙되기까지 하면서 어제 다들 하교를 하더군요. 월요일이 지금 고3 아이들에게는 학생으로 처음 맞이하는 '체육대회'입니다. 공식적인 학교 행사입니다. 우리도 우리지만 몇 년 동안 마스크 속에 갇혀 있던, 참 많이 불쌍한 아이들입니다.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는 세월호를 기억하느라 교실에 갇힌 아이들입니다. 공부만큼 긴장되고, 즐거웠고, 고민 많았던 '우리 기억 속의 학교'에서 매년 그렇게 했던 걸 한 번도 제대로 못한 아이들입니다. 


그런 아이들이 시험 전에도 며칠 전부터 반티를 맞추려고 수업을 빌려 회의를 하고, 작은 갈등을 스스로 극복하고, 누군가가 나서서 돈을 걷고, 친구들을 대신해서 주문을 하고, 시험 중간에 택배로 반티를 받아 챙겨놓고, 시험 마지막 날 나눠 입으면서 익숙하지 않은 팀이 되어 보는 최초의 경험. 마침내 마스크를 벗고, 교실 밖에서 학생임을 증명할 수 있는 그런 활동들이지요. 그렇게 우리도 '그 학교'에서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을, 생존전략을 배웠습니다. 이런 사람은 피하고, 저런 사람은 친하고 싶다고 다짐하면서, 내가 되어 갔습니다. 


지금 걷고 있는 것도 학생 때부터 몸이 기억하는 방식에서 이어집니다. 걸어 다녔던 거리와는 무관합니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많이 가벼운 마음으로 이리저리 참 많이 돌아다녔을 테니까요. 잊고 있던 추억, 잊고 싶은 기억으로 인해 내 몸이 잊지 않고 있는, 내 마음이 기억하고 있는 그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몸이 커졌고, 마음이 자랐습니다. 내 몸과 마음에 학교는 적어도 그렇게 존재합니다. 그 길을 함께 헤쳐온 친구들이, 혹은 친구가 내 옆에 있습니다. 그 속에 내가 있었습니다. 


교사로 스무 해를 넘게 살다 보니, 해마다 많은 아이들을, 동료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그때의 내가, 친구가 조금은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친구가, 사람들이 비쳐 보입니다. 가슴을 펴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습니다.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곽곽~ 거리며 오리주둥이를 하면서 소리를 내고는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겁을 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포기하고 싶다고 주절거리고 있습니다. 하나를 마치면 또 하나가 득달같이 달려드는 일상에서 버거워합니다. 


가득한 학사 일정 속에서도 나름의 여유와 기쁨, 도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이십 년 전보다는, 당연히 그 이전보다는 '다양성'을 존중하려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여러 아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발현합니다. 우리의 10대 때보다는 훨씬 합리적으로 성장합니다. 좀 더 건강합니다. 체력적으로는 약하다고들 많이 하는데,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상당수입니다. 자기 몸을 만들고, 키우는데 진심인 아이들이 있습니다. 사람을 사귀고 헤어지는데도 우리 때보다는 많이 솔직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겁'에 질려있는 아이들이, 동료가 보입니다. 물론 표현 방식은 그 개인이 살아온 방식, 그 덕분에 형성된 가치관에 따라 다릅니다. 하지만 공통점은 겁을 먹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이는 자책을 하고, 회유를 하고, 회피를 합니다. 어떤 이는 오히려 더 거칠어집니다. 가끔 어떤 이들은 운동, 모임 등의 취미 활동에 스스로 빠져 버립니다. 그렇게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오는 것 같은 '주눅 드는'의 출발점 중 한 곳은 분명 학교였습니다. 


겁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입니다. 자기 방어 기제이지요. 무서운 실상을 보게 되면 동공이 확대되는 것처럼. 사람마다 다르지만, 학교에서 겁을, 그것도 '알아서' 먹은 많은 경우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학교의 제도적 문제점입니다. 한두 가지만 강요하는 폭력적인 방식에서 본인 스스로가 그렇게 대처하는 방식으로 살아낸 겁니다. 개인마다 학교를 통해 얻게 된 겁의 실체는 다를 수 있지만, 막연하게 불안하고, 해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곳이 학교였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 학교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고민은 많았지만, 때로는 고민이 없는 척 스스로 회피하면서 살아낸 겁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해결하는 힘이 적었습니다. 이는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 아무런 문제도 없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됩니다. 완전무결해야 한다는 불합리한 신념 또는 될 대로 되라는 강박증이 항상 대척점에서 같이 존재합니다. 다만 언제나 선택의 문제였지요. 이러한 생각 처리 습관은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그렇게 형성되었을까 싶습니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다녔던 이유 때문에 지금 이렇게라도 살고 있는, 학교의 순기능 자체에 대해 좀 더 신경써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겁을 먹는 연습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스스로 돌아봐야 합니다. 홍세화씨의 말처럼. '언제부터 내 생각이 내 생각이 되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많이 자라고 변한, 지금의 현실에서 좀 더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선택에 책임을 지고, 다시 선택을 시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기 기준이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내 안에는 여전히 '10대의 나'가 존재합니다. 



이 글은 https://brunch.co.kr/@yoontea/301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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