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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pr 26. 2022

이맘때면 멀미가 납니다

'주눅'의 근원을 찾아서 1


하늘이 참 맑은 아침입니다. 이 맑은 하늘 아래를 달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뜬금없이 '내가 좀 주눅이 들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비슷한 시간에 많은 차들 사이를 달려 항상 출근하는 도로 위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나 싶었습니다. 그러다, 모레 보는 시험 - 고3 아이들 1차 지필평가 오늘부터 목요일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험 울렁증은 학생들에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출제를 하는 24년 경력의 저에게도 있습니다 - 때문인가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헛헛한 웃음이 나왔습니다.


교과마다 조금씩 다릅니다만, 학교에서는 소위 수능용 주요 교과의 경우, 일 년에 보통 3-4회의 시험을 봅니다. 물론 그때마다 다른 문제를 출제해야 합니다. 소위 몇 퍼센트 되는 상위권을 변별(?) 하기 위해 난이도를 적절하게 조정해야 하고요. 그러면서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신박한 문항을 만들어야 하고요. 말 그대로 평가를 위한 평가입니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봤습니다. 제 교직 경력 동안 69회 ~ 92회를 출제했습니다. 대략 1,725개 ~ 2,300개의 문항이 제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 중에서 단 한 문항 때문에 1회 재시험을 봤습니다. 그렇게 따져 보니 문항 오류율이 0.057%입니다.


경이적인 숫자입니다. 불량률이 0.1%가 되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눈을 감고도 뚝딱 만들어야 하지 싶습니다. 이 정도면 거의 달인 수준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온 신경을 써야 합니다. 수업 장면에서 학생들과 공유한 내용만을 가지고 질문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게 한 해 한 해 상이한 교육과정, 교과서, 다른 분위기의 아이들을 분석하고, 수업하고, 문항을 만들어야 합니다. 세 번째 직장인 여기, 학교에서 가장 오래 있으면서도 이 과정이 가장 익숙해지지 않는 아이러니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필평가 출제 후 담당 교과가 안전(?)하게 종료될 때까지 가벼운 멀미 증상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상대적으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모여 있는 이 학교로 전근을 온 올해는 그 증상이 살짝 더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아, 물론 겉으로는 태연하게 잘 살죠. 연기까지는 아니어도 반 아이들과 수업 들어가는 교실 아이들과 동료 교사들과 적절하게 관계도 맺으면서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습니다. 이제, 정년까지 십 년 남았으니 잘 살아내겠죠.


그런데 시험 울렁증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한테 드리워져 있는 '주눅'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어서입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제 나이에 맞게 살아내면서, 지킬 것 잘 지키고, 낼 것 잘 내면서도,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 말입니다. 각자의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그 근원을 찾아서 말이죠.


국어사전에서 찾아봤습니다. 그랬더니, 상반된 내용으로 두 가지가 모두 나오는군요.


주눅[주ː눅]   

1. 기운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움츠러드는 태도나 성질

예시 문장)이 반 아이들은 항상 야단만 맞아서 모두 주눅이 들어있다.


2. 부끄러움이 없이 언죽번죽한 태도나 성질

예시 문장) 저 녀석은 남들이 욕을 하거나 말거나 주눅이 좋게 얼렁뚱땅 넘긴다.


두 번째 의미는 이 글을 쓰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앞으로는 첫 번째 의미 - 우리가 원래 알고 있는 - 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어떻게 그 표현이 되어 있는지, 훌륭한 웹사전을 통해 찾아서 비교해 봤습니다.  


[영어] feel daunted / timid / small ... 겁에 질린, 소심한, 작아지는

[프랑스어] étourdi ... 멍한, 경솔한, 덤벙거리는, 헐렁한

[독일어] ängstlich ... 겁먹은, 조바심이 드는, 지나치게 꼼꼼한, 고지식한

[중국어] 胆小 ... 겁많은, 무서워 움츠리는

[일본어] ジュンドン ... 기가 죽다, 뒤떨어지다 

[스페인어] tímido  ... 겁을 먹은, 소심한

[베트남어] nhút nhát ... 겁내는, 수줍은

[힌디어] डरपोक ... 겁쟁이의, 겁이 많은

[히브리어] נחבא אל הכלים ... 수줍은, 겸손한

[우크라이나어] боязкий ... 겁많은, 소심한

[러시아어] робкий ... 겁먹은, 소심한, 부끄럼타는


찾아 놓고 보니, 문화권마다 표현은 다르지만 의미는 공통입니다. 즉, '주눅든' 상황을 '겁'이라는 의미로 연결되고 있군요. 무언가에 겁에 질려 있어, 작아진다는 의미. 문화권에 따라서는 더 들어가 그런 사람들을 '소심'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영어 단어 timid는 강원, 경북 지역의 사투리와 얄궂게 발음도 비슷합니다. 어리숙하고, 주눅 들어 있으면 '왜 사람이 그렇게 티미한지'라고 표현하는 것을 어릴 적부터 들었습니다. 티미하다, 가 주눅 들어 있는 사람들을 얕잡아 부르는 말이었군요.


자, 그럼 우리에게 드리워져 있는 주눅 들, 우리를 때로는 소심하고 티미하게 만드는 그 '겁'의 근원을 찾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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