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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ug 15. 2022

남겨주고 싶은 유산

여기는 거실. 아들이, 아내 옆에서 등을 뒤돌아 누워 자고 있습니다. 

어젯밤, 아니 조금 전 새벽 2시 넘게 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시, 출국을 대략 3주 남겨 놓은 요즘.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가족을 떠나 혼자의 시간으로만 자신의 정서적, 물리적 공간을 

채워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생산성 있는 사람으로 산다는 게 어떻게 사는 거냐, 는 질문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었습니다. 

어릴 때, 어느 순간부터 스무 살인 지금까지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 살지 않아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의 삶에

조금 더 집중하면서 살아가는 게,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윽박지르는 것보다 

옳은 거 아닌가, 하고 말했습니다. 본인은 쉬운 과목이었고, 별거 아니라고는 했지만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전과목 A를 받는 동안 느꼈을 외로움이 전해졌습니다. 


스무 살의 나와, 스무 살의 지금 아들은 그렇게 참 많이 같은 듯 달랐습니다.

스무 살의 나는 내 삶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깊이 있게 되돌아보는 시간들이 없었습니다. 

철저하게, 잘나게 살아가려고, 사람들과 가족 앞에서 스스로를 휘몰아치면서 그렇게 그렇게

다그쳤습니다. 그런 사람의 아들이, 같은 나이에 시간과 공간을 떠나 1년 반의 자기 생활을 하면서

얻은 질문이었던 겁니다.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으로 살면서도, 공동체 속에서의 자기 역할 역시 철저하게 해내는 그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이 들여다 보였을 겁니다. 


그럭저럭 잘하던 걸 모두 멈추고, 더 나은 곳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해보자며 새로운 시도를 했던, 막연한 이유이기도 했지만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아들에게 겉으로는 신나게 대화를 하면서 힘을 실어주려 했지만, 속으로는 짠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요즘은 어깨 떡 벌어진 아들이 가끔 테이블 밑으로 손을 뻗어  내 손을 자주 움켜쥡니다. 묵직하게 느껴지는 아들의 손에서 아버지보다는 아빠를, 조언보다는 따듯한 포옹을 원한다는 걸 압니다.  내 손을 꼭 쥐면서 아들은 심호흡을 합니다. 그 들숨과 날숨의 간격 안에서 자기 마음을 안정되게, 생산적이게 만들려고 애쓰는 걸 압니다.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더 잘 지키는, 

건강을 위해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자신의 강점을 잘 알고 있는,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아침 시간을 잘 활용하는,

일주일을 아주 리드미컬하게 사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것을 잘 압니다. 


두 달이 조금 넘는 학기말 방학 동안, 귀국하면서 먹고 싶고, 가고 싶고, 하고 싶은 리스트를 백여 개 써 와서 엄마와 공유하는 동안에도 폭염과 폭우 속에서 동생이 준비하는 시험 과외를 해주고, 헬스와 PT를 하러 다니고, 영어 학원, 운전면허 학원에 다니면서 길 것 같은 시간들이 줄어들어 심리적으로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에 오니 역시 한국인이 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더군요. 다 필요한 거라면서 스스로가 택한 것들이지만 말입니다. 현실에서는 모두 다 넘어야 할 커다란 산이지만, 그리고 한국인이지만 한국에서 보다 더 정서적으로 평화롭고 도전적인 아들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다짐하며 심호흡을 한번 해 봅니다. 


아들이 이제는 베개를 끌어안고 엎드려 자고 있습니다. 왼쪽 다리를 접어서 올리고. 엉덩이에 살이 많이 붙고 넓어진 어깨가 다부져 보이는 몸입니다. 마음보다 더 빨리 자란 신체의 성장 속도만큼 이제부터는 마음이 더 많이 부풀어 자라나는데 도움이 되는 어른 역할을 해야 한다 생각을 하니 저절로 심호흡을 한번 더 하게 됩니다.  인생 얼마 살지 않은,  오십 대 초반의 내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겠기에.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재미있게 사는 법을 위대한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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