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Tea Apr 22. 2023

수학왕의 몰락

[나] 시리즈22...사진: Unsplash

지금부터 자랑 좀 하겠다. 나는 중3 때 수학왕이었다. 반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그때는 아침마다 선생님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대략 20분 정도. 그 시간에 나는 칠판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칠판 앞에서 반 친구들한테 수학 문제를 풀어줬다. 진짜다. 나도,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물론 이 모든 실천은 수학담당샘의 명령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날 나갈 수학 진도를 미리 파악해야 하는 건 기본. 미리 풀어보고 또 풀어본 후 어떻게 설명할까 까지 고민하는 시간이 꽤 여러 달이었던 것 같다. 지금처럼. 


산촌이었지만 한 학년에 600여 명 가까이 되는, 학급수 서른 개의 큰 학교였다. 지나다니는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동네 경기의 끝자락쯤에 있었던 시기다. 그 학교에서 나는 전교 학생회장 역할을 했다. 학급 반장들을 모아 학교 현안에 대한 토의를 하고 돈을 걷고 다양한 학교 행사를 함께 준비하고 진행했다. 게다가 수학왕이었다. 어깨뽕이 학교 뒷산보다 더 높았던 건 당연하다. 조금만 더 참아주시라.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하기 위해 실화에 바탕을 둔 사설을 늘어놓는 중이니까. 이 자랑 얼마 못간다. 


그렇게 중3을 주인공으로 살았다. 노동자 아버지와 전업 주부 엄마한테는 둘도 없는 자랑스러운 장남이었지 싶다. 게다가 기차로 산맥을 넘어가야 있는 바닷가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공부를 쫌 해야 간다는 명문고. 결국 친구들 7명이 지원을 했고, 시험전날 하룻밤 선생님, 친구들과 여관에 묵는 경험도 했었다. 다음날 고입 선발고사를 치렀다. 점심시간에는 미리 진학을 한 중학교 선배들의 환영도 받았다. 선배들이 직접 타주는 뜨거운 유자차를 마시면서 전설(?)로만 듣던 이들을 영접하는 기분에 들떠 있었다. 나도 저런(!) 사람들이 되는 건가 하면서. 아, 이게 공부하는 맛이구나 하면서. 사람은 큰 물에서 놀아야지, 하는 아버지의 입버릇 같은 말을 잘 실천할 각오를 다지면서.


게다가 지역 KBS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왔고, 어쩌다 떠밀리어 내가 카메라 앞에 섰다. 그리고는 피디 같은 분이 넘겨준 쪽지를 그대로 읽었다. 엔지. 하고 한번 더 읽었다. '학교 공부에 충실했으면 충분히 풀 수 있는 평이한 문제였습니다.'라고. 그리고 그날 여관방에서 9시 뉴스를 통해 내 얼굴을 몇 초 다시 볼 수 있었다. 방에 같이 있던 친구들이 와~ 하면서 박수를 쳐줬다. 어깨뽕이 극에 달하는 지점이었다. 


그런데 10대 후반의 내 삶은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처럼 여기저기서 모인 친구들은 정말 열심히들 했다. 앉아서 공부만 하는 분위기가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게다가 학교에서는 지금은 상상도 못 하는 시스템을 가동했다. 하나는 전국 모의고사 100등 안에 든 학생들을 길쭉한 대자보로 복도에 전시를 했다. 그리고 어마 무시한 시스템 또 하나. 학교는 24시간 개방되었다. 종례를 하고도 애들이, 이 공부 귀신들이 집에를 가지 않는다. 아, 맞다. 한 반에 절반 정도는 집이 없었다. 다 시골 출신 유학생들. 그러니까 집이라고 가봤자 하숙집 자기 방이거나 자취방이다. 혼자 갇히는 것보다 서로를 보면서, 자극을 받으면서 하는 공부가 잘되긴 잘된다. 지금의 스카 - 스터디 카페 - 의 원조이지 싶다.


지금처럼 스카나 독서실 같은 개념이 없을 때 학교를 24시간 내내 개방하는 건 신선하다 못해 무서웠다. 하지만 나는 하숙집을 근처에 잡고 잠깐을 오고 가며 24시간 학교를 열심히 즐겼다. 지금 여학생들이 무릎 담요, 망토 담요를 챙겨서 자는 모습을 보면 딱 내 모습이었지 하고 생각을 하곤 한다. 그렇게 도시락을 두 개씩 까먹으면서 공부라는 걸 했다. 뭐, 나도 공부 좀 했으니까,라고 생각을 하고. 그런데 공부하는 애들 책상을 유심히 도 아니다. 그냥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어도 나랑은 달랐다. 특히, 수학. 두꺼운 책들을 하나씩 펼쳐 놓고, 쌓아 놓고 공부를 하는 거다. 친해진 친구에게 물어봤다. 그걸 정석이라고 부른다 했다. 정석? 그렇게 고1 중간고사를 준비하던 무렵에 처음 들어봤다. (다음편에 계속)https://brunch.co.kr/@jidam/738

작가의 이전글 25년 무사고 운전의 비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