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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pr 22. 2023

지랄 맞은 기분

[나] 시리즈23...사진: Unsplash

(https://brunch.co.kr/@jidam/827/write 에서 이어짐)


그렇게 나의 산골 중학교 뒷산만 했던 어깨뽕은 격하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수학 때문에. 그래? 그럼 나도! 훌륭한 선배들을 통해 정석을 구입했다. 해설집까지 별도로. 그리고는 정말 열심히 풀었다. 아니, 풀어보려고 했다. 그렇게 정석을 영접하면서 알았다. 아, 나 수학왕이 아니었구나. 수학쫄보였구나 하고. 수학적인 머리가 아녔다고 자체 분석 결과를 조금씩 내놓기 시작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하지만 그 당시에는 수포 - 수학 포기 - 가 불가능했다. 그러면 넘어온 산맥을 다시 넘어갈 수 없었다. 학력고사는 총점이었다. 340점 만점. 20점은 체력장. 그럼 320점인데, 그중 문과는 수학이 55점, 이과는 수학이 75점. 그래 당연히 나는 문과지? 하고 있었던 거다. 아직 제대로 중간고사 시험도 치르기 전에. 

 

(출처:wiki/학력고사)

 

어찌어찌 1학기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그 기억은 거의 없다. 그냥 열심히 했다. 밤새 했다. 매일이 누가 누가 불을 늦게 끄나의 시합장이었다. 시험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결과는 애들이 더 잘했다. 특히, 수학은 다른 공부보다 두 세배는 더 하는데 성적은 늘 중간 이하였다. 아니. 중학교에서는 단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는 점수를, 석차를 매번 갱신하고 있었다. 통지표가 집으로 우편으로 가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부모님은 방학 때 내가 들고 온 성적표를 보자고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나도 일말의 양심은 있으니까, 현실을 아셔야 하니까 다시 하숙방으로 돌아오기 전에 슬쩍 전축 위에 올려놓고는 왔다. 그러나 역시 졸업 때까지 한 번도 성적표가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부모가 된 지 한참 지나오면서 보니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뭐, 국민학교도 완전하게 졸업하지 못한 부모님이 못 알아보신 거라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다, 는 생각을 하고 살았던 것 같다. 


1학년 2학기 중간고사도 그랬다. 시험 기간 내내 밤새다시피 공부를 했다. 그때도 여전히 수학은 엄청난 문제를 풀어봐야 하지만 속도가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학교 시험은 어떻게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교과서를 펼쳐 놓고 예제 문제를 반복해서 풀었다. 학교 수학 시험이 난이도가 높아도 너무 높았다. 열일곱 문제 중 주관식이 일곱 문제나 되었다. 그냥 찍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계획을 세워 밤새도록 정석을 풀었다. 아니, 교과서 시험범위에 해당하는 단원의 풀이집을 외웠다. 아, 이렇게 풀어지는구나 하다가 막히는 풀이 과정은 그냥 연습장에 쓰면서 외웠다. 수학을 영어 이디엄 외우듯이 그렇게 외웠다. 그날도 그랬다. 다음날 1교시 수학 시험. 새벽까지 그렇게 외웠다. 다른 과목은 슬쩍 보고 끝까지 수학만 잡고 있었다. 어슴푸레 새벽이 아침에 가 닿았다. 추석을 지나고 다시 찾은 하숙방은 참 추웠다. 새벽에 일부러 마당에 있던 펌프가 꽁꽁 얼어 있는 것 같았다. 쿨럭쿨럭 펌프질을 해서 세수를 했다. 얼굴이 쩍쩍 갈라지는 것 같았다. 그럴수록 머릿속은 맑아졌다. 


1교시. 시험지를 받았다. 슬쩍 뒷장으로 넘겨 주관식들의 상태(?)를 살펴봤다. 발문이 안 읽힌다. 주관식 1번도, 주관식 7번도. 심장이 콩닥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다시 앞장으로. 객관식 1번을 풀었다. 잘 풀렸다. 술술 풀렸다. 그런데 보기에 답이 없었다. 이런 젠장, 이라고 읊조릴 틈도 없었다. 심장은 더 크게 쿵컥 쿵컥거렸다. 그럼 2번부터. 아니 풀리는 것부터. 그렇게 객관식 10번까지 오르락 내리락을 수없이 했던 것 같다. 큰 바위산에 매달려 올라가지고, 내려오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이거네 하고 풀리는 게 없었다. 난생처음으로 참 지랄 - 마구 법석만 떨고 분별없이 하는 행동 - 맞은 기분이 들었다. 


뒷 목덜미로 한여름 도로 위 아지랑이 같은 게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 가슴이 넓은 벨트로 조였다 풀였다 하는 것처럼 답답했다. 아, 씨 정도의 감탄사도 내뱉지 못하고 있는 나를 의식하지도 못했다. 그냥 멈추고 싶었다. 그렇게 그렇게. 기억이 사라졌다. 온몸이 포근했다. 달달했다. 바위틈에서 내려와 폭신한 낙엽 위에 드러누운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똑똑하는 노크 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여전히 나는 교실이었다. 책상에서 엎드려 있다 일어난 거다. 우리 학교 최초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시험 때 내내 엎드려 잠들어 있는 학생. 노는 학생. 쎈 학생. 뭐 그런 인상이었지 싶다. 감독하시던 선생님이 종료 5분 정도를 남겨 놓고 내 책상 위에 노크를 해 주신 거다. 그 덕에 후다닥 객관식 열 문제를 다 찍었다. 그렇게 2학기 중간고사는, 수학은 나에게서 멀리멀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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