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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13. 2021

그렇지만, 다시 시작하다

딸아이와 다시 하는 책 대화

  남매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을 때 책 대화를 시작해서, 큰 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하기 무렵까지 몇 해를 주욱 이어서 했었다. 일주일간 같은 책을 읽고, 엄마와 아빠, 딸과 아들이 일요일 저녁에 식탁이 모여 앉았다. 소소한 먹거리를 차려 놓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거기에 더해 서로 묻고 답하는, 우리가 가족이어서 좋다는 느낌을 공유하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다 다들 예상하시겠지만, 지극히 평범한 남매가, 아주 평범하게 살고 싶어 하는 남매가 집 근처 중학교,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뜸해지다가, 어느 누구의 선언도 없이 책 대화는 자동으로 멈춰 섰다. 그 이유도 다들 예상하시겠지만, 남매들이 학교로 인해 남들처럼(?) 바빠진 게 가장 우선한 이유이고, 또 하나의 이유라면 같이 읽어야 할 책이 두꺼워지면서, 우리도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게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이왕이면 책으로 나누고 싶어 무작정 시작했던, 책 대화였다. 어느덧 큰 아이는 내년에 스무 살, 작은 아이는 고등학생이 된다. 큰 아이는 자기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 낯선 곳에서 둥지를 틀기 시작했고, 작은 아이는 중학교에 다닌다. 두 남매 모두 학교에 참 열심이다. 형식면에서는 일단, 무엇인가를 부단히도 해내려고 하는 모습들이다. 많이 쫓겨 보이지만, 꽤 잘 달아나는 모습이다.


  어느 예능에서 엄마 연예인들이 나와 교육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누군가가 '여기 대한민국이야'라고 하니까, '그래, 그렇지'하고 동시에 동의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바로 그 동의처럼. 의미나 가치보다는 현타-현실 타격-를, 책보다는 교과서나 문제집을, 친구보다는 학원을, 잠보다는 휴대폰을 더 선호하게 만드는 교육환경에서 고등학생은 물론 평범한 중학생조차도 몇 장을 읽고, 의미에 자기 생각을 덧붙여,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짧은 시간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들의 휴식을 볼 때 본능적인 불안감에 몸이 반응하게 되는 것처럼.


  물론 이것이 집안의 문제이고, 부모나 학생 개인의 역량 문제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가혹하다, 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지금의 아이들은, 그저 너무나 평범한 대다수의 아이들은, 학교에 열심이다. 개학하고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과목별 수행평가가 물밀듯이 일어난다. 한 과목에도 최소 3-4개의 영역이 있으니, 10개 과목이라고 하면 최소 30-40개의 수행평가를 준비해야 한다. 그 사이사이에 필요로 해서, 불안해서 다니는 학원 내용도 소화시켜야 한다.  


  여기에 평가용 책도 읽어내야 하고, 평가용 글도 써내야 한다. 친구와 팀 활동도 꾸려서 진행해야 하고, 지필평가에 모의고사 공부도 해야 한다. 이렇게 몇 년을 해내야 한다. 밝고, 맑고, 건강하게 이겨내야 한다. 그래야 원하는 곳에 지원이라도 해보고, 거의 모두가 고집하는 대학을 4년 정도는 다녀야 한다는 목표 달성에 가까워질 수 있고, 스물 넘어서면서 공부에 인성까지 좋다는 평판을 즐길 수 있다.


  그 정도는 다 해내는 거니까,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이겨낸 사람들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밋밋하지만 별 탈 없이 섞여서 살아갈 수 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팍팍함이 언제나 따라다닌다. 이런 뉘앙스의 말들을 자주 나눠서 그런지, 우리 남매들의 바람은 '평범'하게 사는 거란다. 아주 평범하게. 아직은 그게 가장 어렵다는 사실을 몸이 기억할 만큼 경험치가 부족하기 때문이지만.


  그렇지만, 나는 3주 전에 딸아이에게 넌지시 물었었다. 아니, 그전에 아내와 위에서 이야기한 것들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 나눴다. 교육에서는 아내도, 나도 별반 차이가 없지만, 과정에 대한 부분은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두 개의 학원에서 쏟아지는 숙제에도 버거원 하는, 숙제만이라도 해결하면 대단하게 무엇인가를 알게 된 것 같은 상황 속에 있던 딸은 겉으로는 흔쾌히 다시 시작하자고 해줬다.


  바쁠 때는 건너뛰기로, 그 결정은 본인이 하기로, 다 같이 같은 책을 읽지 않고 자기가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로 조건을 달면서, 진짜로 그렇게 동의를 '해줬다'는 생각은 왜일지. 하여튼 딸아이가 외부 조건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좀 더 당당하고, 평범함에서 행복해지기를 바라면서, 다시 시작한 이 대화가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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