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Tea Sep 16. 2021

퇴근이 즐거운 이유가 하나 늘면서 반성이 됩니다.

  옆 단지에서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온 게 7년 전입니다. 우리 앞집 주인들이 세 번째 바뀐 시간입니다. 옆 단지도, 지금도 아파트입니다. 아파트라고 핑계를 대는 이유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공동주택에 거주하면서 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잖아요. 특별한 역할을 맡지 않는 이상 말이죠. 얼굴은 익숙한데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이전 단지에서는 그랬습니다. 큰 아이와 태권도장이 겹쳤던 ㅇ이네, 누수 때문에 잠깐 만났던 아랫집 정도였지요.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면서 지내는 정도였지요.  

  지금 사는 곳으로 온 뒤에는 인사만 나누어도 참 마음이 좋아지는 아저씨가 생겼습니다. 저에게는 '생기신' 겁니다. 이사를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한겨울이었습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우유를 사러 나섰습니다. 아침으로 빵을 구워 먹이려 하는데 우유가 없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려와 보니 밤새 내린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몸은 쌀쌀했지만, 모든 게 포근하게 보이는 아침이었습니다. 그런데 옆라인 출입구 앞에서 나를 향해 두 분의 경비 아저씨께서 비질을 하고 올라오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서 너 대의 승용차가 눈을 뒤집어쓰고 서 있었습니다. 비어 있는 사이에 초록색 넉가래와 빗자루가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 생각 없이 그 넉가래 중 하나를 들고 우리 라인 앞 인도에 싸여 있는 눈을 주차장 쪽으로 밀어냈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하다 보니 두 분의 경비 아저씨와 가까워졌지요. 그제야 송골송골 땀이 맺힌 두 분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수고 많으십니다"


"예, 예. 그거 나두세요, 저희가 치우겠습니다"


"아, 이거요. 아닙니다. 시간 괜찮습니다. 요 앞이라도 치워보겠습니다"


"어이구. 일요일에 쉬셔야 하는데...."


"일요일이어서 다행입니다. 이렇게 우리 집 앞 눈을 치워볼 수 있어서...."


"하하, 네. 고맙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를 지나쳐 반대편으로 멀어져 갔습니다. 그때 그분을 처음 만났습니다. 두 분 중 한 분은 그 사이 경비일을 그만두신 것 같은데, 다행히도 그분은 지금은 정문을 지키는 경비반장으로 승진하신 지 서너 해가 지났습니다. 경비반장이 되시기 전에는 우리 동 앞에서 거의 매일 비질을 하셨습니다. 근무가 있는 날은 그렇게 루틴을 만드신 것처럼. 평일에 퇴근을 하면서 무심코 지나쳤습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서로 멈추고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알았던 사이처럼. 우리는 먼저 보는 사람이 가까이 걸어와 인사를 건넵니다. 비슷한 시간에 보이지 않으시면 궁금해질 정도입니다. 왜 이럴까 가만히 생각을 해 본 적도 있습니다.


  그분은 60대 초중반으로 보입니다. 얼굴은 짙은 갈색의 그을린 얼굴입니다. 이마에는 서너 개의 주름이 잡혀 있을 뿐, 처지지 않았습니다. 얼굴은 언제나 방금 로션을 듬뿍 바른 듯 반짝입니다. 그리고 항상 눈꼬리가 입꼬리보다 먼저 웃습니다. 작은 키에 떡 벌어진 가슴에 유난히 눈길이 가서 꽂히게 걷습니다. 가슴이 몸 전체를 끌고 나가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그 모습에서 큰 힘이 느껴집니다. 감정 이입인 걸 느끼면서도 그냥 기분 좋아집니다.


  그분이 요즘에는 저를 만나면 이렇게 인사를 건네십니다.


 "어? 안녕하셔요. 어디 가셔?"


  그분을 만날 때 마다 그분이 먼저 '어디 가셔'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참 기분 좋게 들립니다. 낮에 이리 꼬이고 저리 삐뚤어진 내 귀와 입이 행복해집니다. 깍듯해서 어석거리는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투 속에서 친근하고 싶다는 느낌이 묻어나서 좋습니다. 나무 아래에서 맡을 수 있는 향긋한 가을향이 나는 것 같습니다. 그분한테 느낌을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저 혼자 마음이 그렇습니다. 그분을 어제 퇴근길에 만났습니다.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와 계단을 올라왔습니다. 몇 해 전 눈으로 덮여 있던 인도를 주욱 따라 걸었습니다. 반대쪽 인도 끝에서 우리 동 앞으로 툭 하고 나타나셨습니다. 떡 벌어진 가슴으로 저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왔습니다. 멀리 떨어졌는데, 서로를 알아본 것 같습니다.


 "어? 안녕하셔요. 어디 가셔?"


 "아? 안녕하세요. 오늘 근무세요? 저요?  퇴근!"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우리는 마무리할 겨를도 없이 서로 지나쳐갔습니다. 집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짧게, 반말을 해버렸더군요. 아차 싶었습니다. 그분과의 대화가 아니라, 저의 평소 모습이 걱정되어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야기를 나눌 때 제가 편하게 말을 하는 분들이 두서너명이 떠오릅니다. 농담도 잘 받아주는 그런 사이입니다. 제가 그분을 만났을 때 기분처럼 이기를 간절하게 바라봅니다. 하지만 사무실에서는 공적으로 조금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여튼 오늘 퇴근길에 그분을 만날수 없다는게 조금은 섭섭해 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분이 쉬시는 날이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그렇지만, 다시 시작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