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UX 넋두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 Feb 26. 2017

Lean(린)하게 디자인해봅시다

모두를 위해 Lean(린)하게 디자인하는 게 좋으니까요-

Summary.

새로운 기능 혹은 경험을 제공하려고 할 때 최대한 가벼운 방식으로 그 효과를 검증해보는 최소 단위의 실험들을 거쳐 기능/경험을 만들어나가길 추천합니다.


정말 오랜 시간에 걸쳐 열심히 열심히 디자인한 서비스나 프로젝트가 터무니없이 저조한 반응으로 망한 적 있으신가요? 그때의 허무함을 기억하시나요? 정말 많은 분들이 제가 이렇게 질문을 하면 그런 적이 있다고 대답을 하실 것 같아요. 물론 저도 그랬습니다. 저는 1년도 아니고 2년 동안 몇 번이고 초심으로 마음을 되돌려보겠다고 제 자신에 채찍질을 해가면서 설계하고 디자인했었던 서비스가 말하기도 창피한 성적으로 망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정말 열심히 서비스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제 와서 딱 한 가지만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는 고객들의 니즈에 대한 검증을 하지 않은 채 너무 큰 서비스를 만들어버렸다'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그 서비스는 작지 않은 기업에서 만든 절대로 작지 않았던 규모의 서비스였습니다. 투입된 비용도 어마 무시했지만 그만큼 목표도 처음부터 비현실적으로 높았죠. Top-down으로 내려왔던 그 사업 전략 방향성까지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그 큰 전략 안에서 제공하려고 하는 서비스의 방향성과 사용자의 경험은 검증이 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것을 올인하는 방식으로 접근을 했던 우리는 어찌 보면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었죠. 2년간 서비스를 그렇게 만든 후 제가 우리 고객들에 대해서 파악하게 된 사실은 고작 '우리 타겟 고객들은 우리 서비스를 원하지 않는다'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사용자의 경험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부족했고, 고민을 검증할 시도가 부족했고, 우리는 한 번에 해낼 수 있을 거라 교만했으며, 매번 실패할 때마다 반성하고 제대로 시작하려는 것보다는 조금 더 큰 목표로 배팅을 다시 하면서 검증되지 않은 서비스에 올인을 했었으니까요.


시간이 지나 이직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저에게 그 정도의 비용을 제공해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규모의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훨씬 더 가볍고 똑똑하게 고객들의 경험들을 만들어 갈 수 있었구나...'라고 느끼며 일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매출을 일으키기 위해서 다른 경쟁사보다 굳이 더 화려한 이벤트 페이지가 제작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주에 한 개의 목표를 검증해볼 수 있는 단위로 조그마한 실험들을 진행하는 것이 제가 열정과 호기심이 꺼지지 않고 계속 달려갈 수 있는 페이스(pace)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 해보고자 하는 이야기는 'Lean(린)하게 경험을 디자인하기'입니다-


'린하게 하다'라는 표현의 설명은 '최소 단위로 한다'보다는 '좀 더 똑똑하고 체계적으로 한다'가 맞는 것 같습니다.

'린하게 하자'라고 저도 말을 하면서도 정말 많은 시행착오들을 겪어왔습니다. 훨씬 더 경험이 가벼워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게 최소 단위야'라고 생각하면서 디자인의 범위를 늘린 적이 빈번했고, 또 반대로 더 가벼워지면 경험 자체가 검증이 안 되는 상황인데도 무리하게 경험들을 토막 내버리기도 했었고... 가벼워지는 범위를 비주얼 디자인에만 국한시켜 집착한 적도 있었고... 정말 수많은 삽질들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결국 '린하게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좀 더 똑똑하고 체계적으로 디자인을 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린하게 디자인을 할 때 제가 개인적으로 활용하는 체크리스트들이 있는데요, 그 체크리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정량적 목표 - 어떤 지표를 얼마나 달성해야지 '성공'인가

경험적 가설 - 왜 지금 그 지표는 그 정도 수준인 것이며, 해당 목표를 도달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경험은 무엇일까

검증 방법 - 어떤 방식으로 실험을 해야 가설을 가장 단기간에 쉽고 간단하게 검증할 수 있을까


체크리스트를 순서대로 진행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쩔 때는 데이터가 먼저 눈에 들어올 수도 있고, 어쩔 때는 좋은 인사이트와 가설이 먼저 다가올 수도 있고, 어쩔 때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고민하다가 자연스럽게 프로젝트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중요한 건 프로젝트를 구체적으로 진행하기 전에 저 체크리스트 항목들을 한번 다 고민해 보는 것입니다. 저 체크리스트에서 한 가지만 더 강조를 하자면, 저 리스트 중 '경험적 가설'을 위해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매번 정성적 리서치를 진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 활용을 목적으로 정성적 사용자 리서치를 해두면 도움이 많이 됩니다. In-depth Interview 등을 통한 경험적/정성적 인사이트들이 없는 상태에서 경험적 가설을 내리기는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만큼 더 어렵기 때문이죠.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사실 린하게 디자인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를 번아웃 시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개발기간이 길어지고 기획/디자인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만큼의 보상심리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보상심리가 생긴다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혹시 프로젝트의 결과가 생각보다 좋지 않은 경우에는 감당해야 하는 실망감 및 허무함 역시 내 몫입니다. 여기서 제가 집중하고 싶은 문제는 저 허무함과 실망감이 나의 성장을 막는다는데 있습니다. 프로젝트가 원하는 성과를 내지 못했더라도 배울 점은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민을 더 해보고 개선을 하면 두 번째 실험, 세 번째 실험에서는 어쩌면 원하는 성과가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첫 번째 실패를 맛보았을 때 벌써 너무 실망이 컸고 너무 속상해서 그 프로젝트에 더 이상 노력을 더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보상심리를 너무 키운 바람에 결국은 그나마 있는 가능성까지 묻어버린 것이지요.

그래서 린하게 디자인하는 것을 저는 추천합니다. 번아웃을 개인적으로도 많이 경험하고 매번 극복하면서 느끼는 것은 항상 제 무덤을 제가 파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기대를 크게 하다 보니깐 실망도 커진다면, 애초에 기대를 크게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리면 되는 거니까요. 린하게 디자인을 하게 된다면 결과가 안 좋아도 제가 허무하게 날려버렸다고 생각하는 시간과 정성은 일주일치밖에 안됩니다. 그리고 그 정도의 실망감은 정신적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죠. 여기서 '감당한다'는 말은 실패한 결과에 집착하거나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나의 가설이 어떻게 틀렸고 또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사고할 수 있는 태도를 뜻합니다. 물론, 그렇게 빈번하게 실험을 하다 보면 또 하나쯤은 성공하는 실험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조금씩 쌓이는 피로도와 실망감에 대한 위로를 얻기에도 린하게 디자인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현실적인 기업의 리스크 매니지먼트 혹은 비용 최소화등의 거창한 명분 말고 그냥 저는 린하게 디자인을 하는 것이 UX 디자이너가 가장 덜 지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린하게 디자인한 프로젝트는 생색내기가 참 쉬워서 좋습니다.

린하게 디자인한 프로젝트는 실패를 하더라도 비용을 낭비하지 않고 빨리 알아낼 수 있었으니 잘된 일이라고 참 쉽게 변명이 됩니다. 그리고 성공을 한다면, 뭐 그건 정량적인 수치로 벌써 목표를 도달했다는 것을 증명을 하고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셈이니 매우 인정을 받으면서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겠지요. 결국 린하게 디자인한 프로젝트는 실패하든 성공을 하든 생색낼만한 거리가 충분히 있어서 참 좋습니다.

또한 린하게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라면 UX의 가치를 어필하기도 매우 쉽습니다. '내가 추가/수정한 기능이 우리 서비스의 구매 전환율을 50% 올리는 역할을 해'라고 구체적으로 어필을 할 수 있는 것이니, 내 업무의 성과를 자랑하는 중에 자연스럽게 UX의 중요성과 UX 디자이너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도 있는 것이죠. 저는 얼마 전 한 기업과 면접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본 대기업인 그 회사와의 면접에서도 시간이 부족하다 느낄정도로 이야기를 많이 한 부분은 바로 저의 서비스에 대한 정량적 기여도였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린하게 해온 프로젝트들의 실패 사례, 성공사례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제가 서비스를 어떻게 성장시켜왔는지를 공유했을 때, 저는 단 한 번도 제 성과에 대한 의문은커녕 심지어 피드백 조차 듣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최종 면접에서도 '그런 체계적으로 디자인을 접근하는 역할을 우리 회사에서도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내가 하고 있는 린 방식을 여기서도 진심으로 인정해주는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해하면서 면접에 임했었습니다. 이젠 기업들에서도 디자인을 똑똑하게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사람들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기업의 입장을 떠나서 개인적으로도 역시 정말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기도 하고요. 분명 시행착오는 있을 겁니다. 처음에는 막막하고 어렵기도 하겠고 누군가 정답을 알려줄 수도 없는 상황이라 더 불안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노력하셔서 린하게 디자인하는 UX 디자이너분들이 더 많아지고, 그런 사례들을 접해볼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UX 디자이너와 데이터가 만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