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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UX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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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Mar 05. 2017

UX를 탓하기 전에 내 수준부터 먼저 보세요-

소용없겠지만 UX를 입으로만 하는 기업들이 좀 읽었으면...

Summary.

UX의 수준은 그 UX 디자이너가 일하는 기업의 '그릇'이 얼마나 큰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Star-UX 디자이너에 집착하는 것보다는 UX 디자이너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들어가는 이야기.

몇 달 전 UX 컨설팅을 하나 맡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인 친구들이 한국에서 운영하는 조그마한 스타트업이었죠. 브랜딩에 관심이 많았고 본인들의 개성을 사용자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었습니다. 짧은 이야기를 나눠보고 충분히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저도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될 거라고 생각을 했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큰 문제는 없이 진행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엔 제 기획에 대해 불만이 없어 보이는 듯했고, 공감을 하는 듯했고, 디자인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몇 달이 흐르고 그 친구들의 서비스를 무심코 들어가 봤는데 제가 기획/설계한 것과는 다소 어긋난 부분들을 발견했죠. 디자인이 좀 다르고 한 것까지는 이해를 하는데, 제가 제일 강조했던 사용자 흐름이 제가 설계한 것과는 상당히 다르게 꼬여있었습니다. '어쩌면 이 친구들이 내 기획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느끼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죠. 개발자 친구와 개인적으로 계속 연락을 하면서 피드백을 주고 수정사항들을 알려주고 있을 때 즈음, 그 서비스의 리더급인 한 친구가 저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추가적인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냐고요. 그때 저는 한참 이 친구들이 저의 기획과 UX를 공감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실망감과 허무함이 컸던 타이밍이라 그냥 정중히 거절을 했는데요, 자기가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그 친구도 점점 말하는 투가 바뀌더니 결국은 이렇게 말을 하더군요. 

 

네가 저번 프로젝트에서 한건 고작 기존 우리 서비스 디자인을 조금 더 예쁘게 만들어준 것밖에 없잖아. 이제 '제대로'된 프로젝트를 해야지... 



기업의 UX 수준은 조직의 규모나 'UX'용어 사용량과 비례하지 않습니다.

제가 UX 컨설팅을 해줬던 서비스의 그 친구는 UX를 이해하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즉 UX 그릇이 작았습니다. 그 친구는 항상 UI와 UX라는 용어를 입에 달고 다니면서도 UX의 개념, 중요성, 영향력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강조하고 몇 번이나 설명을 했던 User Flow의 변화가 서비스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하거나 검증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본인이 강조하고 싶은 기능들에 집착하느라 사용자의 니즈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영역에 매달렸죠. 그리고 그런 클라이언트에게 저의 UX 컨설팅은 단순한 비주얼 디자인 프로젝트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 제 기획과 디자인에 대해 설명을 했기에 UX의 가치를 그 정도로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그 친구를 더 이상 도와주는 일은 없겠지만, 'UX 그릇'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해본 계기가 되기는 했었습니다. 


제 경험을 통해 한 가지 깨달은 점은, UX 그릇의 크기는 기업의 규모와 비례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지금 제가 몸을 담고 있는 이 작은 회사의 UX 그릇은 전 직장이었던 대기업보다 크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회사에서는 사용자가 반응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수단과 방법의 제한 없이 다양하게 시도해보고 발전시켜나가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정도 업무의 범위는 전 직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전 직장에서의 제 역할은 화면 설계. 딱 거기서부터 거기까지 였습니다. 화면을 설계하는 업무 역시 기획부서에서 Water fall 형식으로 전달받은 기획서(그마저도 거창한 말만 늘여놓은 보고서)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일이었지 사용자가 우리 서비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포함되어 있지도 않았었습니다. 


UX의 그릇이 크다는 뜻은 'UX'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는 기업이라는 뜻도 역시 아닙니다. 오히려 UX라는 단어를 남발할수록 저는 경계하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그 회사가 얼마나 사용자들을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 사용자에 대한 고민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서비스에 반영되었는지를 따져보셔야 합니다. 여기저기에서 정말 사용자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는 그런 기업이 UX 그릇이 큰 기업입니다. 


기업들은 UX 그릇이 커 보이고 싶어 오버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우연히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올라온 UX 디자이너 채용공고를 하나 보았는데요, 채용공고의 직무 부분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 서비스 및 사용자 맥락에 맞는 UX, UI Design 제공 업무
- 서비스 및 UX대한 문제 발견, 문제 확인, 문제 해결 방안 제안 업무
- 효율적이고 신속한 UX를 위한 Tangible(체감형) UI Prototype 업무
- Service GUI Design 및 Screen Guide 업무
- Multi Device & Convergence UX, UI Design Pattern System 업무
- UX역량강화 및 전문성 확보를 위한 UI Components Library 구축 업무
- 글로벌 시장의 모바일 서비스 UX, UI 조사 분석 및 실 디자인 업무 


솔직히 제가 해당 채용공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보고 가장 먼저든 생각은 '있어 보이려고 정말 노력을 많이 한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뭔가 엄청나게 중요하고 엄청나게 큰 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뭔가 다 해야 할 것 같지만... 제일 중요한 업무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는...? 그래서 채용공고를 몇 번 다시 내용을 읽어보니 그제야 어느 정도 맥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몇 번이나 채용공고를 곱씹어 읽어보면서 재정리한 채용공고의 직무소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 Flinto, Invision 등을 통한 UI Prototype 업무
- Service GUI Design 및 Screen Guide 업무
- 글로벌 시장 대상 UI Components 구축 업무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깐 채용공고가 조금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으신가요? 저에게 이 회사는 'UX 디자이너'를 찾고 있다고 말을 했지만 본심은 'UI 디자이너'를 찾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렇게 잘 안 느껴졌었지요? 실제로도 원본 채용공고에서 'UX'라는 용어는 6번 등장할 때 'UI'라는 용어는 5번밖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막상 구체적으로 업무(task)로 정의될 수 있을만한 항목들만 정리해보니 UI 디자인만 남게 되었던 거죠. 저는 'UI 디자이너'를 찾는 채용공고가 'UI 디자이너가' 아닌 'UX 디자이너(혹은 UI/UX 디자이너'라고 포장이 되어서 소개되어야 하는 부분이 매우 속상합니다. 그리고 기업들이 먼저 이렇게 모호한 입장으로 나오니 채용 포지션에 지원을 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가치제안을 점점 모호하게 포장을 하기 시작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UX'라는 용어를 남용한다고 해서 그 포지션이 멋있어지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그래서 차라리 솔직했으면 좋겠고, 기업부터 자신들이 아는 만큼만 솔직하게 소개하는 변화들이 생겼으면 합니다. 물론 그 쓸데없는 자존심이 쉽게 허락하지는 않겠지만요.  


차라리 이런 방식은 어떨까요: 

해당 포지션은 Water-fall 기반 프로세스에 익숙하며 논리적인 UI Design 업무가 능숙하신 디자이분께 추천드리는 포지션입니다. 

1. Service GUI Design 및 Screen Guide 업무: 기획부서와의 협업을 통해 정책서와 wireframe을 토대로 App 및 Web 서비스의 GUI 작업& 개발부서와의 협업을 위한 Screen Guide 업무 진행 
2. 서비스 초기 기획 단계에 콘셉트 검증 등을 위한 UI Prototype 업무: 간단한 Interaction까지 구현할 수 있는 Prototyping 툴을 활용해 서비스 콘셉트 검증 및 개선을 위한 업무 진행 
3. UI Components 구축 업무: 경쟁사 & 시장조사를 통해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적용 가능한 UI Components 구축 업무 진행


UX 디자이너와 같이 성장해보세요

제가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 처음 왔었을 때, 저희 회사에서 저는 최초의 UX 디자이너였습니다. 제가 이 회사로 왔을 때 초반 몇 달 동안은 동료들이 제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이해하지 못해 오해와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그건 저를 최종적으로 뽑아주신 대표님 또한 마찬가지였죠. 대표님은 초반의 저를 '사용자의 얘기는 많이 하는데 성과는 잘 보이지 않아서 반신반의하다'는 느낌으로 대하셨거든요. 물론 제가 많이 부족해서 그랬었습니다. 저 역시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경험들을 체계적으로 만들어내는 방법을 어느 정도 체득한 다음에야 동료들과 의미 있는 소통이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UX'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기업에 입사를 해 대부분의 프로젝트를 UX를 중심으로 기획하고 추진하고 검증하는 지금을 보면서 제가 개인적으로 뿌듯하게 생각하는 점은 단순히 저만 성장한 것이 아닌 우리 회사도 좀 더 사용자에 진심으로 관심이 있는 회사로 성장했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서로 모르는 부분이 많고 배워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시행착오의 시간이 누구에게나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기업에서는 비지니스 관점에서 중요한 지점들을 구체적으로 도출하고, UX 디자이너는 그 중요한 지점들의 사용자 경험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도전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러다 보면 기업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용자 중심적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고, UX 디자이너 역시 비지니스적 가치를 극대화시켜주는 핵심인재가 되어 있을 테니까요. 

오버스펙의 Star UX 디자이너에만 집착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업의 수준이 그 디자이너의 수준을 맞춰주지 못한다면 어차피 그 사람은 얼마 안 가 바로 떠나버릴 테니까요. 성실하고 열정이 있는 UX 디자이너를 찾아 함께 성장하는 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성장을 함께하면 디자이너에게도 기업에게도 서로가 자랑스럽고 감사한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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