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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UX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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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Aug 15. 2017

UX(디자인) vs. 마케팅

오고 가는 주먹 속에 싹트는 우리 우정은 개뿔

Summary. 마케팅과 UX(디자인)는 단기적 성과와 장기적 지속성의 가치가 대립하기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둘 중에 누가 더 중요하냐는 무의미한 논쟁보다는 서로의 다른 목표를 이해하고 건강한 견제와 협업을 통해 최고의 비지니스 성과로 기여하는 게 더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디자인 스펙트럼에서 강연을 하는 과분한 기회가 있었습니다. 많이 부족했던 강연을 하고 난 후 여러 질문들을 받았었는데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데이터로 디자이너가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마케터와의 불화는 없었는지 궁금합니다'였습니다. 사실 질문을 받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빡침'이라는것이 용솟음치듯 솓아나와 동문서답을 한참 하다가 급하게 마지막에 '... 네.... 마케팅과의 불화가 있습니다'라고 마무리 지었던 것 같습니다 ㅎ;;  

마케팅과 갈등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경험한 일들이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라는 것도 어느 정도 인지는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성급하고 흥분해서 감정적으로 대답을 한 것은 아닌지... 뭔가 그때 흥분하지 않고 좀 더 냉정히 대답을 했더라면 내용이 달라졌을까라는 의문에 저 질문을 곱씹어 보았는데요... 오랜 고민 후에 결국 UX와 마케팅 직군은 비지니스 환경에서 꼭 '불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갈등'은 피할 수도 없거니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 고민을 이번 글에서는 나눠볼까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마케팅과 UX의 특성은 이렇습니다


제가 목격하고 경험해본 '마케팅'은 단기적이고 그 성과가 비지니스의 지표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쿠폰이 그랬고, 이벤트가 그랬고, 이메일과 SMS 문자가 그랬고... 마케팅의 효과가 좋았던 달은 항상 비지니스 지표가 즉각적으로 호전되곤 했지요. 단점이라면 물론 그 효과가 오래 유지되지 않았던 거였겠지만요. 그에 비해 UX(디자인)는 장기적이고 관성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 효과가 즉각적이지 않기에 꾸준히 결과/성과를 추적해야 하기도 하고 그 과정이 쉽거나 즐겁지만은 않겠지만, UX(디자인)의 결과물은 관성이 있기에 하나의 변화는 그 전과 그다음의 변화들의 방향/크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에서 스피드만 강조하는 UX만 고집하다 어느 순간 서비스의 경험이 되돌릴 수 없는 프랑켄슈타인이 되거나, 혹은 반대로 너무 꼼꼼하고 완벽함만을 추구하다가 사용자의 니즈을 제때 만족시키지 못해 버림받고 인정받지 못하는 UX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디자인 관성의 특성에 새삼 놀라곤 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마케팅과 UX(디자인)는 단기적 성과와 장기적 지속성의 가치가 대립하기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여기서 누가 더 중요하냐고 하면 당연히 둘 다 중요합니다. 비지니스의 장기적인 호흡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성과들의 집합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늘, 이번 주, 이번 달, 이번해를 살아남지 못하고 성장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비지니스가 UX를 통한 장기적 투자를 한다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어떤 이유도 UX에 집중하지 않아도 괜찮은 변명이 되지는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주제에 대한 얘기는 다른 기회를 통해 나누는 게 좋을 것 같네요..ㅎㅎ) 하지만 단기적인 성과들에만 집착하다가 서비스의 브랜드가 모호해지거나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그리고 더 나아가 브랜드의 가치를 다지고 정립하여 고객에게 오랜 시간 지속되는 브랜딩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의 서비스의 운영/개선이 필요합니다. 결국 그런 맥락에서 서로 목표의 다름은 인정하지만 비지니스/서비스의 성장이라는 동일한 목적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최대한 서로 배려하면서 '건강한' 견제를 하며 일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목표는 다르더라도 사용자를 중심에 두어야 하는 것은 같습니다


저도 얼마 전 우연한 기회(?)로 마케팅(performance marketing중심으로) 업무를 담당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에겐 정말 감사한 경험이었습니다. 항상 머리로만 생각하기만 했던 마케팅과 UX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었으니까요. UX 리서치에서 도출되었던 인사이트/시사점들을 기반으로 한 아이디어들이 사용자에게는 어쩔 땐 환영받았지만 어쩔 땐 외면당하기도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요, 정성적으로는 도출해내기 어려운 새로운 사용자 행태도 광고 집행 등을 통해 발견하고 검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다지 길지 않았던 마케팅 업무를 종료한 후 들었던 생각은 '역시 그렇게 다르지 않구나'였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차이점들이 있었고 업무를 진행하는 방식에서의 차이가 있었지만, 결국 그 시작(=사용자에서 나오는 인사이트 분석)부터 마지막(=사용자 반응 검증)까지 모두 사용자를 중심에 두고 일하는 것이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죠.

이런 경험들을 기반으로 제가 마케팅과 갈등이 생겼던 이유를 곱씹어 보았는데요... 결국 가장 큰 문제는 업무적 특수성 때문에도, 달랐던 KPI 때문에도 아닌 마케터와 저와의 attitude의 충돌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마케터도 디자이너도 '사용자의 경험'이라는 공통점을 기반으로 어쩔 때는 서로 견제하고, 어쩔 때는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이 교집합을 인정하지 못하고 서로 갑을관계만 서로에게 강요하고 강조하다 그렇게 아쉬움만 남게 된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UX가 너무 상식 같은 당연한 가치였기에 오히려 더 설명하고 설득하기가 어렵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되돌아보면 저와 불화가 있었던 마케터분들은 처음부터 저의 얘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었던 것 같지만요. 처음부터 사용자 경험을 가운데에 두고 그 공통의 가치를 기반으로 서로 일했더라면 설령 그것이 성과 경쟁이었다 할지라도 뭔가 엄청나게 멋진 무엇인가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한다면 가급적이면 이겨봅시다


마케팅(특히 performance marketing 기준)과 UX가 둘 다 비지니스 지표를 기준으로 소통을 하다 보면 같은 지표임에도 불구하고 접근방식과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마케팅은 그 성과가 단기적으로도 바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어필을 하기에는 불리한 점이 분명 있습니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고자 제가 활용해본 몇 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ROI(Return on Investment), 그중 특히 비용 부분을 강조하기

마케팅, 그중 Performance Marketing은 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광고를 중심으로 마케팅이 펼쳐지기 때문이고, 광고를 태우는 데는 당연히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죠. 그래서 ROI가 중요합니다. 투자한 금액(광고비용)에 대비해 얼마나 성과(구매 혹은 서비스가 목표로 하는 전환)가 있는지를 측정하는 지표를 ROI라고 하는데요, 조금 더 간단하게 개념을 풀어보자면 '그래서 얼마를 써서 얼마나 벌었는데요'라는 질문으로 보면 됩니다. 당연히 비용이 높아질수록 (광고를 많이 집행할수록) 매출이 높게 나옵니다. 마케팅은 당연히 'ROI = (매출) / (비용)'의 공식 중 매출 부분을 강조할 것입니다. 마케팅 덕분에 매출이 많이 늘었다고 강조를 하겠죠. 그럴 때 디자이너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해당 매출에 대한 비용은 어떻게 되나요?'라고 말을 하면 그때부터 조금씩 마케터들은 우물쭈물거리기 시작합니다. 비용이 생각보다 크다면 친절히 혼자 계산을 해서 '그럼 ROI는 100% 안되는 거군요'식의 화룡정점의 멘트를 날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 말을 하는 날은 집에 들어가는 길을 좀 조심해야 할 수 있으니 굳이 안 하셔도 됩니다 ㅎ. 어차피 모두가 비용 부분을 인지하는 순간 매출이 아닌 ROI기준으로 사고를 하게 되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큰 비용을 태워서 광고만 할 수는 없겠구나'라고 생각을 시작할 거니까요. 그리고 그럴 때 가장 자연스럽게 나오는 질문은 바로: '매출이 늘어서 좋기는 한데, 비용도 적지 않게 들어갔으니 조금 더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지속성 있는 방법은 뭐가 없을까?'입니다. 사실 이 질문이 나오기 시작하면 반은 먹고 들어간 겁니다. 서비스를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담당자들의 리소스를 비용으로 환산하지 않는 이상 디자인은 비용이 매우 낮거나 없습니다. '빠른 성과'라고 하는 주제에서 '지속성'과 '비용절감'등의 주제로 이야기를 옮긴다면 상대적으로 디자이너가 유리한 대화가 될 수 있습니다. 아님 말고요. 


2. 디자인의 지속성을 강조하기

위에서 언급했듯이 마케팅은 그 성과가 즉각적인 대신에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주말 쿠폰 이벤트를 진행을 한다고 했을 때 주말에는 반짝 구매 성과가 높아지겠지만 주말이 지나면 평소처럼 지표는 바로 돌아오게 되지요. 이전에도 다른 포스팅을 통해 쿠폰의 위험성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은 있지만... 쿠폰은 매우 강력한 툴입니다. 사람들이 거의 확실히 반응하기 때문이죠 ㅎ 하지만 주말 쿠폰 이벤트의 성과가 마음에 들어 주말 쿠폰을 매주 진행하겠다고 하는 순간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몇 주간 그렇게 주말 쿠폰 이벤트의 성과를 정리해보면 거의 예외 없이 쿠폰의 성과가 매주 점차 떨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주말 쿠폰과는 상관없었다고 생각한 주중 구매 지표까지 조금씩 떨어지기도 하죠. 이런 현상은 유저가 '여기는 주말마다 쿠폰 주니까 주말까지 참았다가 그때 사면 된다'라고 교육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디자인이 서비스를 장기적 관점으로 개선시키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디자인은 서비스 전면 개편이 아니라(그럴 수도 있겠지만) 서비스 내 유저 flow에서 발생하는 병목지점들에서 하나씩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점진적 개선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상품 페이지에서 결제 페이지로 넘어가지는 않고 구매를 망설이는 유저들에게 '최저가 보장', '오늘 마감', '5개 남음'같은 정보는 구매를 빨리 해야겠다는 심리적 촉진제 역할을 합니다. 그런 상대적으로 작은 디자인 개선을 하는 것만으로도 전체적인 서비스 내 유저 flow가 많이 고쳐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개선된 기능은 이후 최소한의 관리만 해주면 개선된 지표를 계속 유지해줍니다. 비용이 들지도 않지만(기능 개발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비용이라 보지 않는다면) 한번 고치면 개선되는 지표가 이후까지도 계속 지속되는 디자인의 특성을 어필하면 상당히 강력하고 매력적인 디자이너로 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물론 아님 말고요. 


3. 먼저 좀 일해놓고 얘기를 시작하기

디자인이 주도권을 가져가는 데 있어서의 현업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보는 점은 디자인을 하는데, 그리고 그 이후에 개발을 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길다는 점입니다. 이런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시도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중 첫 번째는 마케팅이 기획하는 프로젝트와 비슷한 시간 안에 끝낼 수 있는 디자인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이 방법은 지속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정말 임팩트가 있는 디자인을 고민하고 추진하기에는 힘들겠지요. 그래서 현실적인 두 번째 대안은 디자인을 최대한 미리 작업해놓아 전체 작업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의 가장 핵심적인 포인트는 디자인이 준비가 되었을 때 비즈니스&마케팅과 지표 관련 회의를 하다가 '제가 사실 그럴 줄 알고...'라는 멘트와 함께 공유하는 것입니다. 이게 사실 상당히 재수 없어 보일 수는 있겠으나... 그래도 효과는 정말 좋습니다 ㅎ. 물론 이 방법으로 업무를 진행하려면 사전에 디자인을 틈틈이 해 놓기도 해야 하고 개발과의 유기적인 협업도 필요하기에 PM(project management) 영역에서의 능동적인 자세도 꼭 필요합니다. 뭐... 하지만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치며...

스펙트럼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는 사실 디자인과 마케팅 사이에서의 갈등이나 그 해결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 나누지는 않았었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마케팅보다 더 강력한(?) '비지니스'라는 최종 보스가 더 관심사였기 때문이었죠. 비지니스에 인정을 받다 보면 마케팅과의 문제나 갈등은 자연스럽게 해소되거나 최소화됩니다. 그래서 기왕 올인해서 열심히 가치를 증명하려고 한다면 마케팅에만 어필하는 것보다는 비지니스에 어필하는 것이 저에겐 더 매력적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비지니스에게 인정을 받는 것 역시 절대 쉬운 일이 아니며, 어느 정도 인정을 받기 시작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원하는 방향은 단순히 '비지니스에 데이터로만 인정을 받는 것'보다는 '데이터로 비지니스에 디자인의 최소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지금은 그 정도의 레슨도 충분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도전해보고 검증하면서 성장하면 되니까요 ㅎ


이렇게 아직은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시도해보고 실패도 해보면서 성장해야 한다고 제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신 디자인 스펙트럼에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강연 때 사용했던 장표 몇 장 투척하며 이번 포스팅도 끄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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