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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Mar 06. 2023

그때는 고성과 팀원이었지만 지금은 마이크로 매니저입니다

Summary.

'디테일에 대한 집착과 실무에 대한 추진력'은 실무자로서는 고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는 태도일 수 있으나 리더로서는 조직이 주체적이게 일하지 못하게 만드는 태도이다. 실무 최전선의 장수가 되기 보다는 조직을 구조적이고 체계적으로 바라보고 관리할 수 있는 리더가 될 수 있도록 의식적인 노력들이 필요하다.  



얼마 전 함께 일하고 있는 리더분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훈님, 마이크로 매니징을 그만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사실 팀에서 일어나는 일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것을 보여주는것에 팀이 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사하고 안정감을 느끼고 있을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는 나의 행동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팀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에 적지않게 충격을 받고 또 속상했다.


곰곰히 나의 행동들을 진단해보았고, 처음엔 인정하긴 싫었지만 결국 나는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재미있는 사실은 마이크로 매니징을 한다고 판단내린 나의 대표적인 행동패턴이 두어가지 정도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습관들은 실무자였을때 가장 내 자신에 대해서 장점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습들이었다는 것이다. 

우선 첫번째로, 내가 슬랙에서 소통되는 이슈들에 제일 먼저 반응하고 대응하는 습관이었다. 우리 조직의 모든 업무에 대한 정보가 나에게 노출되다 보니(업무와 관련된 슬랙채널들을 내가 모두 개설했기 때문에 나는 해당 채널들에 모두 들어가 있었다) 이해관계자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대응하는 절차를 나의 개입으로 차단해 버린점에서 마이크로 매니징이 맞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로, 나는 팀에서 참고해줬으면 하는 아이디어라고 소통하지만 팀에서는 압도적인 논리의 솔루션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대화 습관이었다. 문제정의 및 해결 시 기대효과의 소통보다 리더 본인만의 논리로 솔루션만 소통했을 때, 조직이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뺏어가기 때문에 마이크로 매니징이 맞다고 판단했다. 




생각보다 문제 인식과 인정의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지만, 문제를 인지했다면 문제해결을 위한 시도도 당연히 필요했다. '마이크로 매니징'은 하나의 문제처럼 보이긴 하지만 실제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업무 프로세스, 소통 그리고 개인의 영역에서의 다양한 시도들이 필요하다. 


우선, 솔루션을 내는 것보다 제안서를 기반으로 팀원들과 소통해 보기로 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우리 팀 식구들과 소통하는 AMA(Ask Me Anything)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을 활용해서 내가 생각하고 있던 솔루션들이 아닌 제안서를 준비해서 팀과 소통했다. 

제안서별로 리딩을 했으면 하는 담당자를 사전에 찾아서 1:1로 소통하며 프로젝트의 공감대 형성은 진행한 뒤였다. 


그리고 각 프로젝트 리드들의 열정 어린 구애작전. 모두 성공적으로 TF팀원을 확보했다.

내가 제안서를 작성하면서 생각했었던 솔루션과는 벌써 조금씩은 다른 구성과 내용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고, 최초에 기대했던 것보다는 프로젝트의 진행속도가 조금 느려진 느낌이긴 하지만 팀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특정 개인(= 나)에 휘둘리며 일이 진행되지 않는 건강한 업무 프로세스가 나오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만족하고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팀원들에게 어떻게 나와 소통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공유했다.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할수록 팀원들의 드립력이 올라간다.

제안서를 시도한 다음으로는 동료들과 '후니 사용법'이라는 가이드를 공유했다. 생각이 많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통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팀원들의 반응이 좋았던 것 같아 어설프게라도 공유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컬리에서부터 만들고 다듬었던 Product Division Code라는 문서를 공유한 적도 있었는데 너무 원칙적이고 이론적인 내용으로 소통하는 것보다는 구체적이고 실무중심적으로 소통하는 것을 시도해 봐야 팀원들이 더 공감하고 실천해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외에도 불필요한 슬랙채널은 나가거나 메시지 끄기등의 조치로 본능적으로 문제를보면 달려드는 습관을 고치려 노력중이다. 의식적으로 비즈니스 문서나 전략등에 대해서 고민하고 자료를 준비하는 시간을 만들기도 하고 시간이 날때마다 팀원들과 커피챗을 진행하는 빈도도 더 높여보는 중이다. 한번에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하다보면 자리잡는 습관들이 생기고 그만큼 우리 조직이 더 건강해질 것이라고 믿기에 꾸준히 노력해야겠다.  




Band of Brothers라는 미드를 재미있게 봤었는데, 시리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중대장이었던 남자 주인공이 대대장이 된 후, 본인이 이끌던 중대가 열세에 몰리자 주저 없이 전장에 뛰어들어 부하들을 지휘하려 하다 본인의 상관에게 저지당하는 장면이다.

이 글 쓰면서도 몇번 더 돌려봤다

(궁금한 사람은 유튜브 편집영상을 한번 보시길)


전장에 망설임 없이 뛰어드려는 Captain Winters(위 이미지)를 혼내며 상관이 하는 말이있다.

You do not go out there!
You are the battalion commander.
Now get back here! 


리더로 일하면서 가장 내 마음상태를 잘 표현하는 장면인 것 같아서, 이 장면만 몇 번을 돌려봤는지 모른다. 스타트업은 전장이고, 내 동료들은 전장에서 그렇게 치열하고 힘들게 매일매일 고군분투 하고 있다. 나 역시 함께, 혹은 그 앞에서 달려 나가고 싶으면서도 그러면 리더로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놓치게 된다는 것을 알기에 애타는 속을 잡고 동료들을 지켜보는 상황이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간다. 


하지만 최전선에 함께 있어야지만 팀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 맞는 것이고, 리더는 비즈니스의 성공을 위해 전투가 아닌 전쟁에 이길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고 제안하며 성과를 진단하고 조직을 관리해야한다. 어쩌면 리더로서 더 큰 불확실성을 직면하고 책임진다는 것이 두려워 비겁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내 자리에서 우리 팀을 위한 노력들과 도전들을 계속해야겠다. 나 하나로 망치기에는 우리 팀은 벌써 너무 멋진 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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