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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ULL May 11. 2024

아침에는 왜 눈꺼풀이 무거운걸까

제법 일찍 정신이 들었다. 금요일 밤이었지만 어쩐지 가만히 누워쉬고 싶었다. 평일 저녁마다 못해도 1시까지는 드라마나 영화도 보고 책이라도 읽고 눈을 감아야 살 것 같았는데 그런 평일의 마지막날이 되자 그저 가만히 누워 자고싶었다. 아마 평일이 더 피곤한 이유는 출근 때문이라기 보다는 출근이 내 인생에 전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또 증명하고 싶어서였을까. 잘 모르겠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8시 알람이 울리기 전부터 한 번 눈을 떳지만 다시 감았다. 주말에 일찍 일어나는게 억을해서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주말에 일찍 일어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별거 안 해도 주말이라는 시간을 더 많이 보낼 수 있으니. 그치만 알면서도, 충분히 자고 정신이 들었어도 나는 일어나기를 거부했다. 정말 일어나고 싶었으면 10분만, 30분만,1시간만 이라고 질질 끌었을텐데. 그냥 그저 눈을 뜨기가 싫었다. 눈을 감은 곳에 대체 뭐가 있길래 그랬을까 싶지만 아마 아무것도 없으니까 뜨지 않았을 것이다.


눈을 뜬 곳엔 뭐가 있을까. 평일동안 출근을 핑계로 미뤄놓은 빨래감, 용도를 잃은 책상 위, 얼룩덜룩한 싱크대, 세수할 때 마다 거슬리는 거울의 물 때. 이런 것들이 내 눈꺼풀 무게에 일조한다면 제법 건강 축에 끼는 것 같다. 그치만 나는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뭐 때문일까 뭐가 그렇게 무거워서 회피하는 걸까. 


오늘까지가 책 반납일이다. 이 도서관의 도서대여기간은 최대 3주다. 나는 3주에 한 번 도서관을 온다. 정말 좋은 시스템이다. 이 곳에서 내가 가장 즐기는 취미는 반납한 책 트롤리를 은근슬쩍 보는 것이다.  반납한 책 트롤리는 도서관 책장 가득채워진 책보다 더 다양해보인다. 육아, 챗GTP, 시나리오 쓰기, 마케팅 등 침묵을 약속한 이 삭막한 공간에 인간미가 느껴진다. 트롤리에 있는 책들은 누가 빌렸는지는 몰라도 뭘 원했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그럼 나의 반납한 책들은 무엇일까. 민음사 세계전집 중 눈에띄게 얇은 책 몇권, 불면증에 대한책 한권, <기억을 먹는 아이> 등의 책 제목이 재밌어 보이는책들, 제목, 장르 상관 없이 책 두께가 1cm가 넘지 않으면 그냥 빌리고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쑥쓰럽지만 오늘 빌린 책은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 이다. 쑥쓰러운 이유는... 언젠가 글을 잘 쓰고 싶지만 그게 천재처럼 타고나 보이고 싶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는 거 말고. 그냥 ... 기계식키보드에 손을 올리니까 대충 써지던데요 ? 그런 거.


반납해야할 책 중 다 읽지 못한 분량이 있어 마저 읽었다. 제목은 <가장 나쁜 일>. 김보현 작가의 소설이다. 이 책의 272페이지에서 무거운 눈꺼풀이 나만 있는게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희가 철식을 향해 소리쳤다. 철식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것 처럼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도망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건 철식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계속 그자리로 돌아가게 될 거였다. 그럴바엔 끝까지 가서 고꾸라지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는 더 이상 알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작게 일렁이고 있었다"


도망가는 부끄럽지만 도움이 됐다. 하지만 결국 그 자리로 돌아가게 될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내일 아침도 눈꺼풀이 무겁겠지만, 어쩌면 돌고 돌아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크게 상관없다. 아마 대한민국이 가장 도로 많이 깔고, 아파트짓고 허무는거 잘하고, 하다 못해 멀쩡한 인도도 주기적으로 뒤집는 걸 즐기니 애초에 제자리, 원래 있던 곳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뭔가 그럴싸한 기분이다. 도서관에 앉아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있고 몇 줄만 더 쓴 다음에 발행을 누를 거다. 


비가 온다. 건물이 통유리로 된 덕분인지 빗소리가 제법 듣기 좋다. 내 옆자리엔 마케팅 책을보며 메모하는 젊은 여자가 있다. 내 앞엔 건축과 디자인 책을 보며 패드에 뭔가를 그리고 있는 중년의 여성이 있다. 대각선으로는 이어폰을 꽂고 노트북 키보드에 손을 얹었으나 누르지 못하는 젊은 남자가 있다. 아마 아까 책 트롤리에서 봤던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이 곳에서 도서대출을 계속할 수 있다. 어떤 책이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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