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때 촬영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고 배웠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가며 배운 내용은 현장에서 새로 개정되었다. 촬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밥이다. 농담처럼 들렸는데 진짜다. 지금은 표준 근로계약서에 식사시간 및 휴게시간이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지만 (명시되었다고 현장에 100%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현장 상황에 따라 식사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촬영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식사시간은 단순히 밥 먹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촬영 내에 별도의 휴식시간이 없기 때문에 휴식시간이기도 하다. 그 말인즉슨 식사시간 1시간 내에 화장실도 가고 밥도 먹고 이도 닦고 촬영준비까지 마쳐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에 KBS 예능에서 60초 내에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스탠바이큐>의 음악이 자동으로 깔린다.
노동권을 넘어서 인권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1시간을 정확히 지켜서 식사를 진행하는 것에는 많은 협의가 필요하다. 한 장소에서 촬영을 마치고 식사 후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일정일 경우. 촬영팀이나 조명팀등 장비 바라시(정리 및 마무리하는 것을 칭하는 현장용어)하는 것을 끝내는 것을 확인하고 그때부터 1시간을 식사시간으로 카운트해야 할지. 남은 분량의 촬영시간이 타이트할 경우 교묘하게 마지막 컷과 동시에 “컷. 오케이. 식사진행하고 다음 씬 준비하겠습니다.”를 외친 기점으로 카운트해야 할지. 몇 분의 차이로 스태프들과 마찰이 생긴다. 심지어 밥을 먹는 환경도 고려해야 한다. 주변에 밥집이 별로 없어서 100-200여 명의 스탭이 몇 안 되는 식당에 몰릴 경우 음식이 늦게나와 누군가는 5분 만에 밥을 마시듯 먹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식사시간은 이러한 상황들까지 기민하게 확인하고 지켜야 하는 숭고한 시간이다.
이 숭고한 시간의 품질을 결정하는 사람은 밥차 사장님이라 할 수 있다. 밥차의 경우 세트장에서만 볼 수 있는 슈퍼카인데. 차종이 다르고 브랜드가 다른 것처럼 그 맛도 천차만별이다. 이미 소문난 맛있는 밥차는 다른 작품에 합류해 있는 게 예사다. 그렇기에 현장에 맛있는 밥차를 모시는 것. 이것이야 말로 제작피디의 역량을 도마 위에 올려놓는 일이다. 스태프들 마다 입맛이 달라서 소시지나 돈가스, 스파게티 등 초등학생 반찬을 좋아하는 스탭도 있고 제육이나 젓갈 및 반찬류를 좋아하는 스태프들도 있어서 모두를 만족시키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밥차 사장님의 센스가 중요하다. 당연히 손맛도. 웬만해서 노동 후 먹는 밥은 맛있기 마련이기에 반찬이 부실하거나 맛없고 양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는 도마 위 제작피디 옆에 밥차 사장님도 나란히 올라가 난도질을 기다리게 된다. 사실 이런 일은 드물고 항상 인심 좋고 넉넉하고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궁극의 필살기 조미김과 라면을 항상 구비해서 다니신다. (밥차를 털면 뭐라도 나온다.)
어쩌다 점심시간 막바지까지 밥을 먹으며 밥차사장님과 오붓하게 있을 경우 메뉴 선택권을 슬쩍 쥘 수 있다. "사장님 계란말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웬만하면 다음날 계란말이가 나올 수 있다. 촬영장에서는 모두가 하나의 장면을 위해, 배우의 연기가 편하게 나올 수 있게, 그것을 잘 담는 데에만 집중하고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스태프들은 안중에도 없지만 오롯이 유일하게 안중에 둬주는 사람. 종종 맛있는 반찬이 나올 때 슬쩍 테이크아웃을 해주시기도 하고 종종 스페셜 오더도 받아주시는! 스태프들을 위해주는 BOB아저씨! 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BOB아저씨 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