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기록, 긴 생각

100번째 장면

by 이지희

몸에 병이 났어요.

내가 속한 어느 곳에서도 보람차게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몸은 그렇지 않았나 봐요.

꽤 큰 문제가 생겨 이번 주 화요일은 휴가를 내고 병원에 가서 큰 시술을 받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신세를 지었지요. 오랜만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어요. 내 머리와 마음은 아무 문제없다 하는데, 내 몸은 그렇지 않았나 봐요. 신발 끝에 떨어지는 눈물방울이 나보고 잠시 멈춰달라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병원에 다녀온 것이 공식적 휴가를 얻어다 준 듯, 집에서도 아무도 제 방을 들어오지 못했지요.

얼마만의 고요한 순간인지.

아픈 부위엔 통증이 계속되었고, 이렇게 혼자된 것이 오래된 기억들을 불러일으켰지만, 아프니까 화살이 또 나 자신에게로 향했답니다.


'꿈 한 번 이루기 참 어렵다.'

잡힐 듯 말 듯 꿈의 범위는 소박해져 가고, 나는 가치를 잃지 않으려 내 모든 것을 내려놓기도 하고 붙잡아 포기하지도 않으며 그렇게 그렇게 가고 있는데, 어느 부분에서 탈이 난 것인지 이제는 감도 오지 않네요.


바보 같나요? 미련한가요? 욕심인가요?

나에게 다 돌을 던져 차라리 그 말들이 다 맞다고,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수 있다면, 그래서 돌이키라면 돌이키겠어요.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내 마음을 대변해 주지도, 책임져주지도 못해요.

안타까워할 뿐이겠죠.

이렇게 완전히 넘어졌을 때, 나를 향한 걱정 어린 시선은 일어설 힘마저 빼앗기에

이렇게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방 안이 고독한 안식처가 되어왔나 봅니다.


가만히 누워있으니 어릴 적 행복하고 평화로웠던 시골 길이 기억났어요.

어려서 주말마다 의료봉사를 하시던 아빠를 따라다니며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유독 어릴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편하고 좋았어요.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드리는 게 좋고, 도와드리는 게 이유 없이 좋았답니다.

그래서 제 장래희망은 늘 같았어요.

의사가 되어 방학 때마다, 주말마다 전국 시골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가 의료봉사를 하는 것이었죠.


그렇게 착착 준비하던 청소년기, 몸이 아파 환자 신세가 되었죠.

독방에 누워 학교와 병원 생활을 반복이다 의사가 된 것이 아니라 신을 찾게 되었고,

나는 내 손에 주어진 많은 것들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론 예상치 못한, 한 번이 아닌 여러번의 인생의 서막들이 펼쳐졌고,

나는 다 잃는 것도, 다 채워지는 것도 경험하며

결국엔 눈물보다 큰 기쁨의 순간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것을

나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나는 나를 포기할 수가 없겠어요.


어느덧 이 글이 이곳에 쓰는 100번째 글이네요.

지금껏 내 마음을 편하게 써내려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는 것이 감사해서

어떤 글을 올릴까 고민도 해보았는데

지금의 기분이 희망차지 않아 밝은 글이 되지 못해 아쉽습니다.


그래도 첫 글을 올리던 때가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나를 저 깊은 수렁에서 건져 올려준 손길이 되어 여기까지 오게 해 준 귀한 친구라 여겨지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이렇게 글을 매듭지어 봅니다.


내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기에 동굴에서 만난 이 세상이 제게는 그토록 바랐던, 손을 뻗어 공기를 느낄 수 있는 창문이었습니다.



계속 쓸 수 있기를...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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