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마르고 빛으로 감싸있던 '일시정지'와 같던 나의 일상에 '재생'버튼이 눌려진 큰 사건이 발생하였다. 막다른 길에 어쩐지 이상하게 '탈출구'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의 믿음이 만들어준 '도피처'였나 보다. 눈앞이 흐려지는 채로 응급차에 실려가며 나는 얼마 남지 않은 힘으로 아기가 있는 나의 배를 부둥켜 잡았고 그렇게 지나온 많은 순간들이 스쳐 지나가는 잔상 속에서 알 수 없는 평안한 마음에 내 몸을 기대었다. 태동이 느껴지지 않는 나의 아기와 자꾸 정신이 혼미해지는 나의 숨결 사이, 우리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기를 기도하며 수술실로 향했다.
오후 3시 17분이었다. 그날은 이상했다. 임신기간 동안, 나는 입맛이 없음에도 아기를 위해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건강한 식단으로 밥을 먹어왔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하리만큼 햄버거가 너무 먹고 싶었다. 인스턴트라 생각하여 먹지 않았는데, 그날은 참지 못할 것 같아 아침부터 고민하다 오후 2시에 햄버거를 먹었고, 늘 같은 스케줄로 3시에 기도를 한 후 낮잠을 청했다. 분명 잠이 들었는데 정말이지 온몸이 반응하듯 나는 악!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양수가 터진 줄 알았다. 콸콸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고 침대를 보니 양수가 아닌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많은 양의 피가 쏟아지고 있었기에 나는 핸드폰을 손에 들고 떨리는 손길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 다른 방에서 자고 있던 엄마가 달려오셨지만, 내 모습을 본 엄마는 너무 놀라셨는지 충격을 받은 듯 한 표정이셨다. 우리는 구급대원에게 긴박학 상황만 알리며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엄습해 숨을 죽이고 조용히 울며 구급차를 기다렸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나는 산부인과에 15분 만에 도착하였고, 다행히도 때마침 수술실이 비어서 바로 수술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심리가 많이 불안하여 전신마취를 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햄버거를 먹어 부분마취를 하고 들어갔다. 수술을 시작하고 의사 선생님의 다급하고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반 조기 박리.' 태반이 떨어져 있었고 아기는 1시간 반 정도 산소와 혈액을 공급받지 못한 채로 견디고 있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산모와 태아 모두 큰일이 날 뻔했다는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피를 너무 많이 쏟아서 수술실 안에는 적막함과 심각한 공기가 맴돌았다. 나는 힘이 없었다. 마취기운이 나의 온 힘을 이기는 듯하였다. 아기만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눈꺼풀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의 얼굴을 보았다. 아기에게 나의 심장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다. 구급차 안에서 나는 지난 옥상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나비가 되어 날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나의 기도를 정말로 들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도를 누군가 들었다는 생각에, 내가 혼자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내 정신은 점점 혼미해져 갔지만 내 마음은 선명해져 갔다. 그리고 기도했다. 아기와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는 길로 나를 인도해 주시라는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혹여나 선택해야 할 상황이 온다면, 아이만큼은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긴 꿈을 꾸었다. 수술실 밖에서는 나와 아기를 살려달라는 간절한 엄마의 눈물의 기도소리가 울려 퍼졌으리라. 나는 구름 사이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혼자였다. 평안했다. 이대로 올라가도 좋았다.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남편이 아기를 안고 있었다. 우리의 거리는 멀었다. 나는 마취가 늦게 풀렸는지 한참 있다 깨어났다. 내 기력이 너무 떨어져 있어서 전신마취를 하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왕절개를 했지만 내 몸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혈액 수치가 며칠새 점점 낮아져 혈액 주사를 맞았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무릎을 꿇은 채 3일 밤을 지새우며 곁을 떠나지 않으셨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숨소리가 가빠 큰 병원의 중환자실로 바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나중에서야 들었다. 눈물이 났다. 긴장과 침묵 속에서 나는 똑딱거리는 시침소리 위로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아기의 회복소식을 기다렸다. 며칠 후 정신이 조금씩 돌아왔고 아기가 자가호흡으로 회복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보고 싶은 내 아기, 강한 내 아기, 환한 빛과 함께 내 마음을 비추고 있었던 것이 바로 너였구나, 그 빛은 생명이었다.
며칠 후 아기가 왔다. 나의 품으로. 의사 선생님은 내게 회복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당부하셨고, 아기와 나는 '기적'이라 말씀하셨다. 삶의 무게가 무거워졌다. 다시 살았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깊게 스며들었다. 나는 아기를 바라봤다. 산소호흡기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가쁜 숨을 몰아내며 호흡하는 데 성공하여, 정상으로 내게 돌아온 강한 나의 아기를 보며, 나는 포기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빛 가운데로 네가 외롭지 않게 함께 걸어가겠다고 약속했다. 우리의 삶은 새롭게 시작되어야만 했다. 그것만이 살 길이므로. 그러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는 막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