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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엘 Aug 27. 2023

회사를 오래 다니면 자연스레 몸에 붙는 단점

궤도가 정해진 성장

"회사생활이란 건, 나를 태우는 거잖아요. 소모성으로. 하루하루 자잘하게."


모임에서 만난 J와 근황토크를 하던 중이었다. J는 요즘 자주 아프다.

오래전부터 잔병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유독 오늘은 얼굴이 더 안 좋아 보인다. 모임의 약속시간에도 늦고 동료들과의 대화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J는 일처리가 빠르고 꼼꼼해서 믿을 만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런 그에게 회사생활이 소모성이고 스스로를 태우고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순식간 마음이 먹먹해진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더라.


"회사 다닌 지 이십오 년이에요. 그 세월 동안 내 에너지는 조금씩 소진되어 온 것 같아요. 코치님은 늘 제게 성장과 변화를 이야기하시잖아요. 그런 말씀들이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해요."


"어떤 면에서요?"


"회사에서도 분명히 성장은 합니다. 해마다 얻는 것이 있고요. 하지만 그 성장의 폭이 크질 않아요. 딱 업무를 수행해 낼 정도의 성장이거든요. 그리곤 이내 바로 소진해 버리죠. 소진과 충전의 양이 늘 비슷한 것 같아요."


이렇다 보니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적다는 이야기. 동의한다.

회사생활이 단조롭거나 쉽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대기업 8년, 외국계 2년, 관공서 2년, 중소벤처에서 또 삼사 년.


회사생활이 단 하루도 쉬웠던 적이 없다.

하지만 떠올려보면 내 인생에서 죽을 만큼의 고난은 늘 회사 밖에서 일어나곤 했다. 개인적인 성장 역시 회사 밖에서 이루어지곤 했고.


내 사례이긴 하지만 많이들 비슷하리라.

회사생활 정말 힘들고 어렵지만, 언제나 월급이라는 안전망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마지노선이라고 해야 할까. 그 안에서 열심을 내고 그 안에서 어렵고 고통스러운 거다.

암암리에 머릿속에 프로그래밍이 되어있기도 한 것 같다.

받는 만큼 일한다. 더 일을 하더라도 감가계산은 늘 돌아가고 있는 거다.

 

참 희한하지.

회사생활이란 게..


힘들고 어렵고 내가 소진되고 있다는 건 아는데, 그렇다고 해서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아니야.


회사에서 적응한다는 것은 어쩌면 유한한 궤도를 정해 가는 여정이 아닐까.

나는 이 정도 하면 된다. 이 정도는 꼭 해줘야 하고, 선을 넘으면 안 되는 거고.

 



8년간 S사에서 리더들을 코칭하고 교육해 왔다.

8년을 끝으로 회사 일을 정리해야겠다는 결정을 했던 계기 중 큰 덩어리는

'이제 더 이상 선을 넘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내게 선을 넘는다는 표현은,

우리 리더들의 삶에 거대한 변화가 일렁일 정도로 자극을 주는 교육을 의미한다.

아주 그냥 자아가 한번 크게 들었다 놓아지는 놀라운 경험. 성인은, 그것도 회사원에게는 이 정도는 되어야 자극이 이루어진다. 변화의 모멘텀도 되고.


한 5년은 실행할수 있었다. 그 경험을 했던 리더들과 반대의 경우는 현재의 삶이 다르다.

하지만 회사의 경영진들이 바뀌고 경영이라기보다 성과위주의 체제가 군립되면서, 나는 경영진들을 설득하는 데에 서서히 실패했다.

늘 해오던 교육이었는데, 환경이 바뀌니 내 교육프로젝트는 선을 넘는 행위가 되어가고 있었다.

 

넘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 궤도조차, 그 선의 기준조차 내가 정하질 못하는구나.

 

나는 리더들이 성장동력을 스스로 돌릴수 있도록 하는데에 헌신하는 코치다.

듣고 좋고 마는 교육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내게 중요했던 덩어리는,

교육자로서 내가 경영진이 갖고 있는 선에 더 이상 도전하지 못하게 되었을 경우

나의 성장폭도 고만고만해 질 거라는 확신이었다.








회사원인데

열심히는 살고 있지만, 늘 고만고만한 만족감과 월급을 통한 위로, 그저 경험하고 넘길 정도의 소모성 고통을 반복하고 있다면..

갈증이 있는 것이 당연한 거다.


인간은 나아지고 싶어 한다. 성장하고 싶어 한다. 준비하고 싶어 한다.

우리 조상들이 그러했다.

수렵 목축 생활하다가 사냥하고, 사냥 잘하려고 도구를 만들고, 이동수단을 만들고, 자꾸 나아지려고 한다.

 

성장은 인간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욕구다.

반대로 성장하지 못하면 아프다. 머물게 되는 것이 아니다. 성장 못하면 마이너스란 이야기다.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퇴직하면 시골 별장하나 얻어서 편하게 남은 여생을 즐겨야지. '

즐길 수는 있다.

하지만 별장에서도 뭔가를 하게 될걸...

풀을 어떻게 뽑는 게 더 나은지, 담장은 어떻게 올리는 것이 더 견고한지.

시골 생활이 더 윤택해지거나 더 큰 평안을 얻어가는 성장을 할 때 더 즐기게 될 것이다.


인간은 자극이 필요하고

성장을 추구한다.




 


회사를 오래 다니면 자연스러워진다.

지나친 루틴은 스스로의 궤도를 형성하고,

그 영역은 관계, 업무 등 모든 영역을 초월한다.


선을 지켜가면서

타인에게 선을 요구하기도 한다.

크고 작은 상처들은 이 과정에서 비롯된다.


그저 생각이 다르고 관점이 달라서 이겠거려니들 한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회사생활은 두 가지 중 하나 아니겠는가.


더 크게 도약하고 성장하고자 하는가.

고만고만한 성장을 하며 자잘하게 아플 것인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모임이 요즘 그렇게 유행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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