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만 뚫으면 되요
자율학습을 마치고 학교에서 귀가한 큰 아이도 몸이 좋지 않다고 한다.
'아니! 둘째에 이어 큰 아이도?'
긴장부터 한다. 혹시 전염이라도 되었나.
큰 아이는 저녁을 거하게 먹었다. 삼겹살에 된장찌개에 돌솥밥을 다 먹고, 후식으로 탕후루와 아이스커피까지 드링킹 했다고 한다.
병명은 급체!
매일 학교 급식만 먹으니 입이 많이 지루했던 큰 아이.
오늘은 잠시 외출할 일이 있어서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저녁외식을 기다렸단다.
마음먹고 과식을 한 거다. 위장의 컨디션 관리까지 시키면서 말이다.
그 마음이 어땠을까 싶어서 혼도 못 내겠다.
이런저런 행사며 이벤트를 좋아하는 아이인데,
단조로운 일상 덕에 고작 평일 저녁식사 한 끼를 이벤트로 삼을 각오를 했다니.
급체한 아이의 몸도 몸이지만
나는 아이의 마음이 어떨지 더 신경이 쓰인다.
이틀 연속으로 야간 당직병원으로 향한다.
둘째가 바이러스와 싸울 때, 큰 아이는 일탈을 꿈꾸었구나. 별 대수롭지 않은 일탈성 이벤트였고 '급체'라는 결과를 낳았지만,
큰 아이의 마음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
병원으로 향하는 밤 11시.
차 안에서 큰 아이가 흥얼댄다. 급체인데도 마음은 건강한 듯 보인다.
거울을 보더니,
"아빠! 진짜 나는 마기꾼 같아"
(마기꾼: 마스크 사기꾼 / 한창 코로나 시절 유행하던 용어)
급체의 상황에도 자신의 미모에 마음을 둘 수 있는 여유가 부럽다.
야간 병원을 가는 거니까, 혹시 몰라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당부했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접수증을 제출하고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가 사라졌다.
화들짝 놀라 둘러보니,
건너편 거울 앞에 서서 한참을 본인 얼굴을 응시한다.
셀카라도 찍을 태세!
남들이 보면 얼굴에 문제 있어서 야간병원 온 줄 알겠다.
"엄마나 너는 정말 마스크가 잘 어울리지. 한 삼 년간 아빠는 아침마다 놀랐어. 외출하는 너네 엄마나 너를 볼 때마다 말이야."
"에이, 그 정도야? 에바다."
에바..라고 말해놓고 싫어하는 눈치는 또 아니다.
큰 아이의 위에는 음식물이 가득할 것이다. 먹었던 삼겹살이며 된장찌개...
그것들이 장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위의 활동을 못하게 하고 있다.
막혀있다.
단조로운 일상, 매일 그 밥에 그 나물 같은 급식, 매일 보는 문제지..
큰 아이는 답답했던 마음들, 막혀있던 마음을 뚫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니 아픈데도 이렇게 옆에서 재잘대지.
속은 막혔는데, 거울 보며 스스로 마기꾼이라는 말이나 하고..
"얼른 와! 곧 우리 순서야!"
"아. 완전 레전드로 체했어. 장난 아님."
이라는 말과 함께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진료받고,
주사까지 맞았다.
많이 컸구나. 우리 큰 딸.
이제는 진료받으며 의사 선생님에게 본인이 어디가 안 좋은지 브리핑도 제대로 할 줄 알고,
알아서 주사실 가서 엉덩이 까고 주사도 맞고, 아프단 소리도 안 하네.
귀가하는 차 안에서도
재잘재잘 댄다.
얘는 오늘 붕 뜨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오늘 학교에 있었던 일, 친구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들을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해준다.
마치 밤마실을 나온 것 같다.
속은 여전히 막혀있는 것 같다.
그래도 마음은 좀 뚫린 듯 보인다.
감사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