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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엘 Sep 05. 2023

아픈 자녀에게 콩나물밥 먹이기

이틀 전부터 둘째 몸이 심상치 않다. 

고열에 복통, 침 삼킬 때 목과 귀의 통증도 사그라 들지 않아 마음이 많이 쓰인다. 


어린아이를 둔 부모라면 모두 아는 사실 하나,


'열만 내릴 수 있다면, 모든 걸 감수한다!'


둘째는 키우면서 고열 때문에 고민이었던 적은 별로 없었던 터라, 더 신경 쓰인다. 

모든 일을 스톱하고 아이를 간호한다.


어느 병원에 어떤 의사를 만나야 호전이 빠를 것이라며 아내와 진취적 날 선 대립을 펼치기도 하고, 아이의 열이 떨어지지 않아 온갖 의학적 경험을 되짚어가며 출구를 찾는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 


아내와 나,

예민하지만 뭐 어떠랴.

공통의 목표가 같은데..


둘째는 속히 회복되어야 한다.





오늘은 종일 내가 아이를 돌보았다. 

고열일 때, 아이는 상황을 이겨내기 힘겨워 스르륵 잠이 들기도 하고 

속이 좋질 않아 못 먹은 탓인지 기운도 없어 보인다.

이런 광경은 부모에겐 참... 어렵다. 


의사 선생님은 시간이 지나야 한다는 걸 강조하셨다. 바이러스의 활동이 피크를 찍고 있는 것 같다며, 시간 지나면 좋아질 거라고. 

어차피 결론은 좋아지는 거네. 

설사하고 귀 속이 붓고 하는 모든 것들이 아이의 몸속에 있는 바이러스의 생태, 사이클이라는 거다. 


이해는 하는데, 내가 왜 바이러스의 생태까지 수용해줘야 하는가. 

내 아이가 바이러스의 숙주인 것도 화가 나고, 바이러스가 사이클 돌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못 참겠더라. 


속까지 좋질 않으니 뭘 제대로 먹이지 못해 바이러스와 단판을 뜨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억울한 마음도 든다. 





그래서.

맞춰주기로 했다. 오늘만큼은, 아이의 마음이라도 맞춰주기로 했다. 


"뭐 먹고 싶니?"


"피자, 치킨, 고기.."


아! 의사 선생님이 먹이지 말라는 것만 이야기하네.

그런 걸 먹일수록 복통 기간이 길어질 거라는 세 번이나 강조하셨던 멘트가 상기된다. 


대체가 될 만한걸 찾아야 한다. 하지만 여간해선 그것들을 대체할 무엇이 없다. 


배가 고픈지, 뭐라도 좋으니 좀 만들어 달라고 하는 아이. 


"만들어 달라고?"


냉장고에 넣어둔 콩나물이 떠오른다. 난데없이 콩나물밥을 제안했는데, 

아이가 좋다고 한다. 방금 피자, 치킨을 언급했던 아이인데..

진정 배가 고프구나. 


"아빠, 얼마나 걸려?"


"아빠가 최대한 빨리 해볼게"


관건은 양념장이다. 

밥이야 콩나물 얹어서 밥솥이 하는 일이고, 나는 양념장에 심혈을 기울인다.

양념장 망하면 모든 게 끝장이다.라는 심경으로..






다행히 아이의 열이 내렸다. 해열제도 잘 듣지 않더니, 콩나물밥 먹을 때가 되니 열이 내렸다.

조금 후에 다시 오르겠지만, 여하튼 밥 먹을 때라도 열이 내리니 징조가 좋다.


초집중을 했다.

양념장!


콩나물 밥이 완성되고, 양념장도 나름 때깔이 곱다. 


손수 비벼서 떠먹여 주려 하자, 

"에이, 내가 먹을게"

하더니


잘 먹는다. 

맛이 괜찮다고 한다. 


쾌감과 보람이 심장 가득하다.  


아이는 이렇게 두 끼를 콩나물밥과 함께 했다. 

밤이 되면 다시 열이 오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밤이 무서워서 지금의 보람을 흐리멍덩하게 만들진 말자. 

지금 잘 먹으니까 된 거지. 뭐.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 하루가 나의 삶을 대변하는구나. 많이 닮아있다. 





나는 결국 죽는다.

언젠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으로 가고 있지만, 죽음으로 향하는 하루하루가 매일 우울하거나 절망스럽지 만은 않다.

그럴 필요도 없는 거고. 


내가 아플 때 돌보았던 부모님, 친구들, 동료들.. 

지금은 기억의 저편에 존재하는 이름도 떠오르지 않는 사람들.. 

그들의 영향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이어온 것이 오늘 아니겠나.

그들은 내게 그럴만했고, 나 역시 그때그때 받을만해서 온갖 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렀다.


내 둘째 아이도 그렇다.

오늘은 그저 아무 의심 없이 아빠의 걱정과 에너지와 시간을 받은 거다. 

게다가 콩나물밥도!

잠시나마 맛있고, 배부르고 나면 

또다시 배고플 거고 열도 나고 병원도 가고 그러는 거다. 


내일 죽을 거라 여기고 오늘을 값지게 살라는 말들도 하던데,

나는 약간 다른 관점의 시선을 갖고 있나 보다.


내가 값지게 살아지는 것이 어디 나만의 노력으로 가능한 일인가.

살면서 내가 노력해서 얻은, 나만의 노력의 결실이 몇 가지나 되겠는가.


나의 나됨을, 

나를 값지게 여겨주는 사람들로 인함이다. 


생각해 보면 그들이 나를 값지게 여겨주는 것에 특별한 이유도 별로 없다.

그냥 가족이니까, 친구니까, 동료니까..

굳이 이유를 찾지 않아도 된다. 나는 애쓰지 않고도 값진 채 태어난 거다. 

나는 애쓰지 않고도 그들 곁에 있는 거다. 

그들 앞에서 나는 언제나 주인공일 수 있다.


콩나물밥이 맛있으면 맛있는 데로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

고열에 시달리고 고달플 밤이 예상되긴 하지만 말이다.


콩나물밥 먹고 열도 떨어진 김에

넷플릭스도 같이 보자. 아이에게 이따가 밤에 아플 것 같으니까 지금부터 좀 자두라고 하지 않는다.


열 떨어진 상태의 둘째는 평소보다 더 에너지가 넘친다. 

반짝 거리는 눈으로

한참 때 지난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재생한다.

이익준 교수의 능청맞고 담백한 연기에 

나도 아이도 화끈하게 웃어버린다.


몸 안에 바이러스는 여전하다. 오히려 반격을 준비 중일지 모르지만,

지금은 웃기니까 마구 웃도록 하자. 


아플 것 같아서 

지금은 아프지 않은데,

물론 조금 있으면 또 아플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미리 아플 걸 예상하고 근심할 필요 없는 거다. 


자기 아프다고 결석한 학교에서

친구 몇 명이 안부문자를 보내왔는지 확인하며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우린 참 뜬금없는 실소를 터뜨리며 인생을 살고 있구나 싶다. 

바이러스가 본질인데,

바이러스에 신경은 별로 안 쓴다.


이번 일이 지나가면 둘째는 기억하겠지.

바이러스가 강했다느니, 바이러스의 잠복기간과 생태가 어땠다느니 라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아프다고 학교 안 가고 아빠가 해주었던 콩나물밥과 

슬의생 보다가 이익준 교수가 웃겼던 장면들이나 생각날 것이다.


그게 인생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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