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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엘 Sep 11. 2023

떠나보내는 일

고작 폰 일 뿐인데.

디바이스에 크게 관심이 없다. 

신기종이 나오면 줄서가며 기다려 구입을 하는 열성이 있는 지인도 있다. 관종이라 놀려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니 매우 뿌듯해하더라. 


그깟 디바이스를 줄을 서서 기다리다니라고 놀려대던 내가..

변했다. 


사람은 변한다.





2년 정도 사용한 울트라 22를 민팃에 팔 때가 되었다. 사내판매 찬스로 저렴한 가격에 폴드 5를 구매했기 때문이다. 기회가 된다면 폴드를 꼭 사용해 보고 싶었다. 


예전에 잠깐 전 직장 CEO와 식사를 하는데, 당시에 CEO가 들고 있던 폴드는 초창기 버전이라 되게 무거워 보이고 별로 좋아 보이진 않았음에도 한번 사용해 보고 싶긴 했다. 그는 저렴하게 구입했다는 것을 강조했었다. 

저렴하다 해도 거의 200만 원이나 되는 디바이스를.. 내 손안에 넣는 일은 멀게만 보였다. 


이렇게 저렇게 요금을 비교해 보니 별로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이번에 과감히 폴드 5를 손에 넣었다. 물건을 소유했다는 만족감이 얼마나 가겠는가 싶지만 현재까지는 매우 유용하다. 


사실 나는 갤럭시 노트 애용자다. 울트라 22야 말로 노트 시리즈의 정점을 찍은 디바이스라 생각한다. 

은은한 초록빛이 스타벅스 빛깔을 머금고 있다. 한 이 년간 아낀다고 케이스로 꽁꽁 숨겨놓고 보질 않고 있었구나.

새로운 아이가 손에 들어와 있으니 

울트라 22는 영 터치 횟수가 줄어든다. 


내게 폴드 5를 판매한 지인이 얼른 울트라 22를 민팃에 보내주라고 했다. 때 지나면 특별 보상금도 사라질 거라고.

그러나 나는 1차 보상금을 받지도 못한 채 한 달을 갖고 있었다. 희한하더라. 왜 보내질 못하는지.

 

오늘 마음을 단단히 먹고, 겸사겸사 일거리를 일부러 만들어서 민팃에 들렀다. 

울트라 22를 보내주기로 마음을 굳혔다. 


폰을 초기화하며 케이스와 액정필름을 제거했다. 사이드에 살짝 흠집 난 거 빼곤 완전 새 제품이더라.

아... 이 상태로 내 손안에 왔었는데...


막상 폰의 민낯을 마주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네가 지루해지거나, 성능이 약해져서 보내는 게 아니야.' 


나이 들어가고 있나 보다.

디바이스에 정을 주고 살아왔다니...



떠나 보내는 마음.

내가 좋아하는 스타벅스 녹색 빛깔을 품고 있는 자태가 영롱하다. 

매일 주무르고 살았는데 이렇게 보내려니 심장이 조여 온다. 


사실 네가 스타벅스 빛깔이란 것도 잊고 지내왔거든.

왜 그랬을까. 액정필름이며 케이스며... 꽁꽁 둘러놓기만 하고 

진짜 너를 바라본 적은 별로 없구나. 







민팃의 프로세스에 따라 민팃함에 폰을 넣었다. 

이제는 정말 이별이다.

마음이 울컥한다. 이상하다.

그냥 기계일 뿐인데.. 지난 추억들과도 아프게 이별하는 기분이 든다.


민팃함이 내 폰을 품고 출입구가 닫힐 때까지 폰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저미는 이상한 느낌이 든다. 먹먹함.


주책이다. 





한참을 기다렸다.

민팃장비는 내 울트라 22 폰을 점검하며 가격 책정을 하다가 말다가, 계속 기다리라는 메시지만 뜬다.


민팃함이 오류가 난 거다.

나는 해당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원격제어로 확인한 업체는 민팃함이 오류가 났다며 죄송하다고 다시 가져가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40분을 이러고 있었는데.. 그냥 가져가라네?


그리고 다시 내 손에 정들었던 폰이 돌아왔다. 

이건 또 더 희한한 느낌이 들었다.

보냈는데 다시 돌아왔다?


마치 기르던 생물이 품에 돌아온 느낌이 든다.


애써서 다시 보내야 할까?

그냥 갖고 있어야 할까. 


안내해 준 대로 건너편 이마트에 있는 민팃 장비에 가서 다시 도전해 보았다.

그냥 해본거다. 안내해주니까. 이것도 안하면 시간 낭비일 테니까.


헐!

이번에는 3분도 채 안 걸렸다. 민팃함이 내 폰을 삼켜버렸다.

너무 빨리 사라져 버렸다.


아... 이별할 준비가 안되었는데..

순식간에 사라진 추억! 


보상금이 얼마고 특별보상금이 얼마고...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

온통 내 머릿속엔...

'어! 벌써 끝이라고?'

이렇게 간단한 거였어.





얼마 전 거실에 두었던 화분을 아내가 치워서 마음이 안 좋았었는데,

오늘은 매일 손으로 주무르던 폰을 스스로, 내 손으로 보내고 왔다.

괜한 의미 부여할 필요 없는 거라고 마음을 먹지만,


변한 건가, 늙어가는 건가...

그냥  슬픔이 밀려온다.

탓할 상대도 없는데 야속하다.


요즘은 떠나보내는 일이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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