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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엘 Sep 13. 2023

인간관계에서 의도를 드러내는 일

여유와 표현

여유와 표현


8년 동안 여성조직에서 일을 했다. 4천 명 중 90% 이상이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는 조직. 


나는 남자 아닌가. 게다가 전문코치로서 직접 코칭과 강의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리더와 구성원들이 나를 알고 있었다. 살면서 내가 눈에 띄는 사람인 줄 처음 알았다. 내가 남자여서가 아니라 내가 맡은 업무가 그러했다.


4천 명 중 한 명이 되어, 매일 했던 나의 역할은 나를 제외한 3,999명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3,999명이 틀에 박힌 사고를 할 때, 코칭을 통해 그들의 관점을 전환하여 삶의 만족도와 업무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일을 했다. 


나부터 솔선수범해야 했다. 


강의와 코칭을 할 때를 제외하곤 책을 놓은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다독했다. 책은 나의 생각과 사고관을 확장시키는 가장 손쉬운 도구다. 나부터 생각을 정렬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영적으로 마인드를 무장했다.





3,999명 중 90% 이상이 매일 인간관계로 고민을 한다. 8년간 코칭을 했으니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겠는가. 90% 이상이 인간관계 고민이었다. 


사람마다 사연이 다르고 생각도 다르지만 요약하면 한마디다.


'나는 사람을 대하는 게 어려워요.'


대충 상대방을 탓하기도 하고, 자신을 탓하기도 한다. 대화 나누다 보면 상대 탓인지 내 탓인지에 열을 올리는 사람도 많다. 누구의 잘못이냐는 거다. 그런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결국 같은 건데.


3,000명이 인간관계로 고민한다고 해서 3,000가지의 주제로 고민하는 건 아니다.

비슷한 주제들 카테고라이징 하고, 필터링 할거 하고 나면 거의 10가지 안팎이다. 3천 명이 10가지 안팎의 인간관계 고민으로 잠도 못 자고 잘 먹지도 못하며, 좋지 않은 에너지로 일하고 생활하는 거다.


이 얼마나 소모적 삶인가. 


하지만 나도 인간이라, 그 안에 들어가서 그러고 살면 나 역시 10가지로 골치가 아플 것이다. 


성경에는 용서와 사랑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기독교뿐 아닌 다른 종교들도 인간관계의 핵심은 사랑임을 강조하고 있다. 유아원 다닐 때부터 우린 배웠다. 서로 용서하고 양보하고 살아야 함을.. 


그러니 결코 우리가 인간관계를 잘하는 비결을 몰라서, 방법을 몰라서 이렇게 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양보하고 배려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게 맞지만!

그게 왜 안 되는 걸까.





사랑, 용서, 배려, 양보


두리뭉실한 개념들이 내 삶 속에서 상황에 맞게 이루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 번째는 정결한 마음밭 가꾸기, 두 번째는 상대를 위해 표현씨앗 뿌려 놓기

(표현이 되게 서정적이다)




정결한 마음밭 가꾸기


쉽게 말하자면 내 마음에 여유부터 챙기자는 얘기다. 정결함은 순도 높은 순수함을 의미한다. 아이처럼 있는 그대로를 흡수할 수 있는 수용력, 그리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즐거워하거나 슬퍼할 수 있는 순수함 말이다. 


좋을 때 웃고, 슬플 때 우는 거다. 


이 단순한 것이 잘 안 되는 사람, 상당히 많다. 남 눈치를 너무 많이 보다 보니 웃어야 할 때 다른 사람의 반응을 먼저 살핀다. 남들이 웃어야 비로소 안심하고 웃는 웃긴 상황 속의 그들.


3천 명이 서로 눈치 보느라 마음에 여유가 없다는 걸 8년이나 봐왔다. 

눈치를 보고 있자니 '나'라는 존재감에 자꾸 의문이 든다. 내 색깔이 사라지는 것 같은 위기의식. 그러면서 직장은 나로 살기 어려운 곳이라고 퇴직을 꿈꾼다. 


직장이 대체 뭐가 문제인가. 당신 스스로 눈치 보다가 마음속 여유가 사라지는 것을 방치한 것일 뿐, 직장은 잘못이 없다. 당연히 퇴사하고 나면 마음이 여유로워져서 용서하고 배려하는 삶이 가능해진다. 그러고는 퇴사를 잘했다고 또 스스로를 위로한다.


아니다. 당신은 원래 여유롭게 태어났다. 언제나 사랑을 베풀 수 있도록 고안된 존귀한 존재이다. 남 눈치 보는 것에 영혼을 탈탈 털어놔서 그럴 뿐. 


직장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면, 언제든 마음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다. 

여유란 당신에게 원래 있는 거다. 내게 여유가 원래 있었지? 라고 생각하는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여유 있다고 나지막하게 말해보라. '여유 있다'


그냥 생겨나는 거다. 




상대를 위해 표현씨앗 뿌려놓기


표현은 인간관계의 핵심이다. 말도 안 하고 아무런 뉘앙스도 풍기지 않으면서 상대가 알아주기 만을 바라는 건, 그건 그냥 유치한 거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인정해 달라는 말은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도 쉽지 않다면? 나름 다 기술이 있는데 이건 나중에 다뤄보기로 하자. 지금 배경은 직장이나 일터에서 비롯되는 갈등상황이다. 


일하러 만나서 부적절한 관계나 그 안에서의 오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인간관계를 망치고 더 나아가 자신과 팀의 평판을 망치곤 한다. 


강의와 코칭을 위해 출장이 많았다. 자연히 만나는 사람도 많았다. 한 장소에 가서 강의를 하고 나면, 자주 관계된 분들과 식사를 하고 대화를 했다. 대부분 나만 남자이고 함께 하는 분들은 여성리더들인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여자여서 불편한 건 전혀 없다. 다만 언행에는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식사자리에 술이 오가는 경우도 있다. 물론 나는 술을 마시지 않지만 함께 밥 먹고 술 마시고 그러다 보면 편해지기도 하고 일부러 편해지기 위해 그런 자리를 갖기도 한다. 


그 자리에서 가끔 실수를 하는 광경을 목격할 때도 있었다. 내게 실수를 하는 사람들을 보기도 하고, 나라고 왜 실수가 없었겠는가. 원래 자신의 실수는 모르고 상대의 실수는 눈에 띄는 것 아니겠나. 


그런데 참 희안한 것은 실수라는 것이 어떨 때에는 별게 아닌 일이 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엔 같은 행동이라도 문제가 되는 경우들도 종종 있다. 여하튼, 내가 내린 결론은 ... 


강의 후의 식사자리는 길어지면 안 좋은 거다. 



그 이후 나는 생각을 다듬었고, 이후 어떤 자리를 가던 의도를 분명히 하게 되었다. 이 자리의 의도, 너와 나의 의도. 그저 나만 좋자고 그런 아니다. 상대를 위해서라는 마음이 더 크다. 상대가 내게 실수하지 않게 하기 위해 나름 짜낸 노하우랄까. 


일단 나는 식사시간 데드라인을 잡고 상대에게 미리 말을 해둔다. 


"오늘 제가 식사 이후에 선약이 있어서 한 시간 반 정도 가능합니다. 맛있게 먹으며 대화 나누시죠."   


식사시작 전에 이렇게 말해두면 상대도 수위조절을 하게 되어있다. 물론 서운해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뭐 어쩌겠나.  


오랜 시간 알고 지내온 여성리더들과는 만남의 의도를 분명히 한다. 이렇게 먼저 말한다. 


"우린 친목 다지려고 모인 거 아닙니다. 일로 만났습니다. 함께 일하기 위해 모인 겁니다."


말의 내용은 어떨지 모르지만 표현을 곱고 부드럽게 하면 의사는 전달이 되면서도 상대방 마음이 언짢은 단계까지 가진 않는다. 


이런 식으로 표현의 씨앗을 뿌려놓으면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상대는 인지하게 된다. 


8년간 여성들과 일하면서 단 한 번도 남녀문제로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없다. 더불어 그때 함께 일했던 여성리더들과 지금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중요한 건 '상대를 위해'라는 방향성이다. 상대와의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서로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방향성을 분명히 하는 거다. 


또한 의도를 분명히 하는 표현을 한다. 너와 나의 만남의 의도는 무엇이다라고 표현을 하는 거다. 그러면 표현의 씨앗이 상대방의 마음에 자라나 상대로 하여금 나에 대한 인식을 갖추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8년을 90%가 넘는 여성들과 함께 일하며- 

관계에서 갈등을 겪지 않았던 비결은,


방대한 독서와 사색, 코칭을 통해 '여유'를 잃지 않았고,

상대방에게 관계의 '의도'를 드러내는 표현을 젠틀하고 소프트하게  해온 노력 때문이리라 본다.


관계를 분명히 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이것이 인생 심플하게 사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배우자에게는 한없이 따뜻하고 서로 사랑하는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표현의 씨앗을 많이 뿌리도록 하자. 


일을 위해 관계 맺는 사람들에게는 먼저 베풀고, 사랑으로 보듬고,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에 헌신하자. 


나는 그에게 어떤 사람, 그는 내게 어떤 사람임이 분명할 때 서로 선 넘지 않고 의미 있는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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