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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엘 Sep 14. 2023

인간관계에서 신뢰가 깨지는 순간

[나는솔로 16기 돌싱특집을 보면서..]

나는솔로 16기(돌싱특집)를 보게 되었다. 교육자료 찾다가 본 건데 월척을 낚은 심정이다. 이번 기수는 단순히 남녀의 심리를 넘어선 인간사의 소통체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사실 남녀관계가 인간사의 서사 중 가장 재미있지 않은가. 나는솔로는 아닌 걸로 아는데, 어느 정도 각본이 정해져 있는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나는 웬만하면 보려고 노력한다. 남녀관계로 포장이 되었지만 그 안에는 남녀관계를 포함하는 보다 근본적인 인간관계의 가이드라인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에게 플러팅을 하고, 누가 없는 말을 만들었으며, 재가공을 해서 퍼 나르는 사람도 있고, 거기에 발끈하며 의사결정이 요동치는 순간들을 본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쫄깃하고 한편으론 안타깝고, 험한 말도 나올 있는 상황들이 즐비하다.


다루고 싶은 주제가 너무 많은 콘텐츠다. 하지만 핵심이 될 만한 오늘은 한 가지만 다뤄보기로 하자.





'광수와 영철의 대립'


남자출연자들 사이의 오해는 출연자 전체의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일반적으로 한 여자를 놓고 대립하는 경쟁구도의 상황들이 있을 수는 있는데, 이번은 좀 달랐다. 

남자출연자들 사이에서 나누었던 대화들을 통해, 그들이 서로 뱉어놓은 말들로 충돌하며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을 봤다. 


당신이 이런 말을 했다. 했지 않느냐? 

내가 언제 그렇게 말을 했냐. 안 했다.

생각 잘하고 말해라. 

테이프 깔까?(그런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해 보자)


이 정도면 그들의 신뢰는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 나중에 화해를 했는지 어떤지 알 수는 없지만, 순식간에 신뢰가 와장창 무너지는 광경은 이런 거다. 단순히 말 때문에 생기는 일.. 


광수와 영철 중 누가 더 잘못했는지 가늠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기에 그 외의 내용들은 생략한다. 

방송이 나가고 본인들이 한 말들을 모니터로 보면 낯 뜨겁고 숨고 싶은 심정들일 것이다. 이미 자신을 채찍질하며 아파하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정죄함을 멈추자. 


사실 나는 누가 누구를 욕보이기 위해 그런 말들과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그들은 외로웠고, 출연을 결심하면서 까지 그곳에서 새롭게 잘해보고 싶었으며, 나와 동일한 아픈 경험이 있는 동료를 돕고 싶은 마음으로 말을 하고 옮긴 것이다. 결코 망가지는 모습을 화면에 담기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 와중에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기도 하고, 자신감 없는 스스로를 보기도 한다.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시기와 질투라는 순수한 감정을 마주하기도 하며, 누구와 내가 더 잘 맞을지 치열하게 고민한다.  


나는 그들 중 누구도 악하거나 나쁜 의도가 없었음을 보았다.


그럼 그들이 날카롭게 대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광수와 영철.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보고 들은 말은 있는데, 완전히 누구 잘못이라 못 박지 못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두 가지를 살펴보자. 




텍스트(text)와 콘텍스트(context)


텍스트(text) 보다 중요한 건 콘텍스트(context)이다.


텍스트를 '말'(비언어적 표현 포함)이라고 한다면, 콘텍스트는 '맥락'이다. 그 말이 어떤 흐름에서 비롯되어 표현되었느냐는 것이 콘텍스트이다. 맥락에 따라서 같은 말이라 할지라도 매번 받아들이는 느낌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회사에서도 그저 문서(텍스트)로만 보고를 하면 될 일을, 굳이 얼굴을 보며 텍스트를 올려놓고 회의를 하는 경우가 많다. 텍스트가 포함된 콘텍스트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말이 표현된 맥락이 말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든 알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텍스트는 그저 도구일 뿐, 콘텍스트가 언제나 우위이다.


영철은 자신의 생각이라는 콘텍스트(맥락)를 가져와 광수에게 텍스트(말)를 전달한다. 영철은 광수가 함정에 빠지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아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생각 속 흐름에 따른 맥락을 가져와 광수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 거다. 


자꾸 말을 전달하니까 그런 일이 생기는 거라고 질책할 수 도 있겠지만, 그곳의 상황과 배경은 그곳에 있었던 사람만이 알 것이다. 또 편의상 어떻게 편집이 되었는지 알 수 없는 것이고..


영철은 그만의 맥락이 있었을 것이다. 의도도 있었을 테고... 하지만 광수와 충돌의 순간, 맥락(콘텍스트)이 아닌 텍스트만 갖고 논의하자는 광수의 말에 분노한다. 서로 흥분하기도 했고, 맥락을 제대로 짚어볼 여건이 되질 않아 보였다. 


광수와의 충돌 이후, 영철이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는 장면이 나왔다. 충돌의 순간 보다 더 화가 났을 것 같다. 나는 그 이유가 텍스트만 놓고 확인하자는 광수의 입장에 많이 서운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솔로나라는 법정이 아니다. 그 말을 한 사실이 있냐 없냐를 놓고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만일 좀 더 차분하게 동료의 선한 의도를 읽어보고자 맥락을 확인하는 정도였다면 어땠을까. 어려운 결정하고 쉽지 않은 일정 쪼개어 출연한 것일 텐데... 안타까웠다.


광수와 영철의 충돌 이후, 관련된 출연자들은 다소 말을 아끼고, 이에 대해 광수는 혼자 괴로워하는 장면도 나왔다. 자책하는 모습도 보였다. 동료출연자들에게 적잖게 실망한 듯 보였다. 


광수는 왜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된 걸까?





주도성
 

자극적인 말들이 오가는 전쟁터와 같더라. 말 한마디에 심장이 쪼그라들고, 움직임이 달라지는.. 


며칠 안 되는 일정 안에 누군가를 결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예민해지고, 판단이 잘 서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고, 남녀관계에만 몰입하게 하는 것이 기획자의 의도라고 본다. 출연자들도 동의했을 것이고, 우리도 그 테마를 이해하고 시청한다. 사실 이러한 콘셉트가 매력적이라 계속 보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무슨 일이든 기간을 정해놓고 집중하고 몰입하면 무엇이든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다. 출연자들 대부분은 꼭 커플이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연애스타일이나 스스로를 거울로 비춰보듯 깨달음을 얻고 갈 것이다. 그것도 의미있는 결과일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짧은 기간 동안 남녀관계에만 몰입하는 것은 분명 감정적 스트레스가 클 것이다. 내 눈에 광수가 그러했다.그야말로 좌충우돌. 그가 주일에 숙소 인근 교회로 차를 몰고 가며 우는 장면은 정말이지 가슴 아팠다. 나 역시 크리스천으로서 그 상황 속에서 교회를 향하는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간다. 


광수는 남의 이야기를 허투루 듣는 사람이 아니다. 매너가 좋고 둉료출연자들의 말에 경청한다. 아마도 그의 삶이 그러지 않았을까.. 상대를 존중하고 자신에게 해주는 주변의 말들을 살뜰히 여기며 무시하지 않는 경향. 


함께 생각해 볼 부분은! 

경청도 좋고 수용력도 좋은데 과연 얼마나 주도적이냐는 것이다. 광수만 놓고 하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일하는 일터나 가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주도적인지 살펴보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주변의 말에 쉽게 마음과 생각을 빼앗기곤 한다.  

또한

'누가 이 말을 했으니 그게 맞다 틀리다?', ' 확인한다 확인하지 않는다?'

우린 이런 문제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사는가.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우리의 입술은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살고 있는가.


텍스트와 콘텍스트에 대한 개념을 수용할 수 있다면, 

상대가 내게 이 말을 하는 맥락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설사 말들이 모조리 뇌피셜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인간관계가 와장창 깨지지는 않는다.

 

말은 뱉어내면 텍스트로 남는다.

관계는 맥락에 의해 형성된다. 

인간관계는 말보다 맥락으로 유지되고 굳건해진다.


수많은 말들 가운데에서도 인간관계를 살뜰하게 챙길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업무현장에서도 늘 있는 일이다. 나와 다른 관점, 의견대립, 입장차이... 그럼에도 적대적이지 않고 악수하며 인간관계 잘하는 사람들은 늘 있다. 


"음.. 그건 나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의견이 다른거야. 그 사람 입장에선 이러저러 하니까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는거지."


말은 텍스트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맥락을 살펴야 하는 것임을 아는 사람들이다. 더불어 수많은 텍스트들이 귀를 아프게 하고 생각을 멎게 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부여하는 상황일지라도 주도성을 잃지 않는다.

동료출연자들의 말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들의 선한 의도를 수용하고 감사하되, 그 말들이 진실이다 아니다의 관점이 아닌 맥락적으로 나에게 주는 소중한 의견이라 정리한 채 자신의 가치를 따르는 것이 주도적인 것이다. 


주도적인 사람들은 뒤를 잘 돌아보지 않고 전진한다. 늘 자신 있고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다. 주도성을 갖고 자신 있게 임하되 인간관계를 깨지 않는다.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때때로 호된 피드백도 감내한다. 맥락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다면 남탓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신뢰만큼 중요한 게 또 있으랴. 


말은 이렇게 하면서 아침에 아내와 툭탁거린 나 자신이 아쉽고 야속하다. 우리는 늘 실수한다. 대부분 원인을 알고 있음에도 쉽게 함정에 빠지곤 한다. 


내가 맥락을 알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내 맥락을 상대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서운한 마음이 든다. 인간관계는 이론과 실제가 무척 다르고, 정확한 솔루션이 있다 하더라도 실행은 벽이 두꺼운 영역이다. 


제일 금기해야 하는 것이 나는 인간관계를 잘 못한다고 못을 박는 행위다. 대인기피증이나 공포증은 내가 나의 그릇된 인식을 수용하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자신의 인식을 깨고, 상대를 수용하고 배려하며 신뢰를 다져가야 한다. 신뢰를 찾는다는 방법보다 내가 신뢰감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좋다. 


누군가와의 신뢰에 집중하기 보다 

신뢰감이 있는 사람이 되기로 결단하는 일이 더욱 주도적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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