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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엘 Sep 21. 2023

나는 나이기에 나인 것이다

학교에서 귀가한 고1 큰 딸과의 대화.


"요즘 고민인 게, 반에서 내 캐릭터가 되게 모호해. 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같아"


학업과 진로의 방향에 대해 꽤나 건설적인 대화가 마무리될 즈음에 아이가 꺼낸 말이었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나와 아내는 굵직했던 이전 대화에 많이 집중을 했던 터였다. 지금 아이가 살며시 꺼낸 이번 주제에 관해서는 좀 미온적이었던 것 같다. 집중도가 흐려졌을 수도 있고 그다지 중요한 주제는 아닌 걸로 보였다. 그저 아이가 그냥 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러나 큰 딸은 다시 또 이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는 거다.


"A는 완전 모범생이고, B는 공부가 탑이야. C는 완전 예능 쪽이고, D는 완전 수다쟁이..."


그냥 단순히 누구누구가 부럽다는 얘기가 아닌 거다.

처음에는 얘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싶었다. 아는 이야기를 지금 꺼내는 걸까..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왜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할까. 학교 분위기가 문제인가. 왜 이러지...


아내와 나는 너는 너인 거고 다른 친구들은 또 그들 만의 존재감이 있는 거다라는 식의 두루뭉술한 말을 해주며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반복해서 같은 이야기를 또 한다. 좋아하는 절친과 자신과의 차이에 대해, 그리고 타인들이 바라보는 자신에 대해... 그리고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말하진 않지만 스스로 알고 있는 것들에 관해..


큰 딸이 이 문제로 하루 이틀 고민해 온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온몸이 저리고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그 좁은 공간, 정해진 친구들과 초등 6년 중등 3년을 지나, 지금 고1.

같은 환경에서 장장 십 년을 지내오고 있는 큰 아이. 왜 고민이 없겠는가. 그 안에서 친구들과 또 얼마나 치열하겠는가.


여러 가지 답답함이 엮이고 얽혀서 나오는 이야기로 느껴졌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함께 지내고 있는 친구들이다. 일거수일투족이 비치는 게 당연하지.


어떤 친구들은 자기 갈길을 찾아가고 있고, 또 어떤 친구는 처음처럼 올곧게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오고 있으며, 또 어떤 친구들은 새로운 도전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자신은 이도저도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부모에게 실토하며 큰 아이는 무엇을 원했을까..


큰 딸아이는 이 자리에서 무언가 해답을 얻길 바랐을까. 아니면 그저 엄마 아빠에게 투정 부리듯 요즘 마음이 어렵다는 얘길 꺼내는 정도였던 걸까.. 무엇이 내 아이를 불안하게 만들었나.






대화의 마무리는 나쁘지 않게 끝났다. 하지만 큰 아이에게 더 따뜻하게 말을 건네지 못한 것 같아 내내 아쉬움이 남는다. 그저 위로를 바랐던 것인지, 해답을 원했던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기에 나는 이런저런 방향으로 어버버 하다가 자리가 정리되었다.


잠들기 전에 아이와의 대화를 곱씹어 보게 되었다. 자꾸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올라온다. 아이 방 옆 소파에 앉아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마음을 쓰고 있는데... 의외의 인식이 올라왔다.


'우리 큰 아이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이겠구나..'

'누구는 어느 부분이 뛰어나고, 또 누구는 어떤 역량이 훌륭하다. 지금은 그리 보이겠지만, 모두가 지금의 그 상태에서 고민인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아이만 이 고민을 하는 것은 아니겠구나 하는 인식이 올라온 거다. 큰 아이가 볼 때엔 본인보다 친구들이 더 나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자신이 갖지 못한 부분은 친구에게서 유독 눈에 훤히 보이기 마련이다. 큰 아이의 시선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시선을 따라가 보니 친구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에 도달하게 되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내온 큰아이의 친구들. 우리 아이와 십 년. 아빠인 내가 모를 리 없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달라지고, 관계가 흐트러지기도 하고, 어떤 의사결정들을 하는지 면밀하게 알게 되었다. 세월이 알려준 거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처럼, 우리 아이처럼 친구들도 계속 흔들림 속에 나아가고 있겠구나. 말하지 않았을 뿐 모두 흔들리고 있어. 그러나 동시에 나아가고 있어.'


큰 아이에게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고. 내가 알고 있는 성장에 대한 개념은 심플하다.


흔들리고, 쪼개지고, 갈라지고, 균열이 있어야 성장한다.  


보디빌더들이 몸을 키우는 원리도 같다. 헬스를 하면 근육이 커지는데, 그 커지는 과정은 일단 근육을 찢는 것이 먼저다. 무거운 것을 들어 자극을 주어 기존의 근육을 터트리고 찢어 내는 것. 근육통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다. 그 이후에 몸에 프로틴을 공급해서 찢어진 부분을 채우는 거지. 그럼 근육이 커진다. 일단 자극을 주고 찢어내야 하는 게 첫 번째인 거다.


생각을 키우는 것 역시 같다. 책을 읽고 뇌에 자극을 주거나, 혹독하게 배움에 몰입하여 기존의 잠재의식과 무의식에 균열을 주는 것이 먼저다. 우리의 마인드는 그때에야 비로소 성장의 기로에 서게 된다. 수용할 것인지 뒤돌아설 것인지 선택하게 된다. 일단 자극을 주고 인식을 쪼개는 것이 먼저다.






비교가 멍청한 일이라고 들 말한다. 물론 비교는 득 보다 실이 많다. 비교하면 피곤하다. 고민되고 상처가 커진다. 비교에서 승자가 어디 있겠나. 비교라는 저울을 들이댔을 때,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고 패자만 남기 마련이다.


 그러나 성장의 개념에서 바라볼 때엔 좀 다르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스스로를 찢어내고 내상을 입히는 데에 비교만큼 유익한 게 또 있을까 싶다.


큰 아이는 비교당한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비교하고 저울질하며 자신만의 성장 모멘텀들을 만들어 오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도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궁리를 하고 있는거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는 부모인 내가 아이 인생의 조력자 정도로 밀려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주도성이 넘어가고 나는 아이의 조력자로 지내다가 다시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친구가 되어, 더 이상 맞다 틀리다를 가르치는 것이 아닌 생각을 나누는 사이가 될 것이다.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기를 원하게 될 것이다.  


큰 아이가 자신을 흔들고, 쪼개며 나아가고 있다. 아프겠지만 피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직시하고 정면돌파 해주길 바란다. 잘못된 것이 아니라 매우 정상적인 성장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흔들림 없이 시키는 대로만 하고 자라나 고민하나 없는 아이가 커서 뭐가 되겠는가.


너의 고민을 응원해!


하지만 결국! 알게 될 거야.

그 어떤 캐릭터도 필요하지 않아. 우리 인생에는...

나는 나이니까 나일뿐이야. 더 이상 없어. 그저 나로 사는 거야.


너는 너이기에 너일 뿐이야.

이미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소중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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