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농산물직판장
아내와 아침 일찍 인근의 농산물직판장에 갔다. 명절을 앞두고 선물할 과일들을 고르기 위함이다. 싱싱한 과일과 야채가 즐비하고 경매하시는 분의 걸쭉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
추석을 앞두고 있어서 인지 90%가량이 선물용으로 박싱 되어 진열되어 있었다.
"어! 거의 다 샤인머스캣이네?"
나는 농산물직판장을 장악한 샤인머스켓을 보고 놀랐다. 어딜 둘러봐도 샤인뿐이다.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이야기이겠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전혀 눈에 보이지 않았던 과일이었던 샤인!
처음 샤인을 먹게 되었을 때, 아내가 했던 말이 생생하다.
"이거 되게 비싼 포도야. 한번 먹으면 다른 건 못 먹을지도 몰라"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포도다. 좋아하는 과일이니까 그리 말하는 거지.
에이 그래봐야 포도가 포도일 뿐이지. 했는데 씨도 없고 아니 뭐 이렇게 탱탱하고 맛있는 포도가 다 있다니..
비싸도 먹는 사람은 먹겠구나.. 했는데, 정말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았건만 명절 선물로 이렇게 독보적으로 우뚝 선 샤인을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직판장에 추석선물로
온통 샤인머스켓이 쫙 깔려있다
아내는 그 작은 몸으로 직판장의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닌다. 경이롭다. 어떻게 저렇게 빨리 다니면서도 과일 상태를 체크한단 말인가.
"이거는 우리 식구들 먹을 거, 저거는 어머님네 선물할 거."
내가 보기엔 다 비슷비슷한데 그걸 또 카테고라이징 해가며 담는 모습을 보니 역시 경이롭다.
상인분들과 대화도 한동안 나누는 걸 보니 참 신기하다. 택배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박싱은 어떻게 하느냐는 식의 디테일한 대화가 오간다. 그리곤 다른 가게로 이동한다.
나:
"아니 그렇게 실컷 물어보고는 다른 가게로 가면 어떻게 해? 거기서 사야 하는 거 아냐? 미안하잖아."
아내:
"에이.. 여기서는 다 이렇게 해. 이렇게 안 할 거면 동네과일가게에서 샀지 뭐 하러 여기까지 왔겠어."
그러고는 또 다른 가게에 들러서 한동안 상인분과 이야기를 나누던 아내가 드디어 상품들을 선택했는가 보다. 내게 손짓을 해서 가보니, 샤인 몇 박스를 사는데, 각각 다른 색깔의 보자기를 묶어놨고 어떤 건 비닐에 담겨있기도 하고 뭐 하여간 복잡하다.
내가 이걸 어떻게 다 들고 가느냐고 말하려는 찰나!
"여기 사장님이 수례에 모두 다 실어다 주신대. 오빠 안 와도 될 뻔했네."
아 나 짐 들어주러 왔던 거구나.
이른 아침인데 직판장은 마치 한낮의 풍경을 하고 있다.
상인분들은 이른 새벽부터 일을 하고 지금은 좀 나른해질 때인가 보다. 곳곳에 졸고 있거나 당충전을 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과일을 담는 모습, 옮기는 모습, 엄청난 박스를 적재하는 모습, 그 옆에서는 식사를 하기도 하고, 돈계산을 하기도 하며, 빠른 걸음으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정신없어 보이는 속에서도 나름의 질서와 루틴대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부스스한 옷차림에 피곤이 가득 담겨 있는 얼굴인데, 고급 안경을 끼고 있는 상인분도 있고, 몇 천만 원 되어 보이는 시계를 차고는 박스를 옮기는 상인분도 보인다.
아내:
"이 분들 대부분이 아마 현금부자들일 걸?"
나:
"그래서 부러워?"
아내:
"아니, 우린 우리 일을 해야지."
언젠가 나는 아내가 뭘 살 때 참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뭘 구입하는 아내의 모습이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즐거워 보이기도 했고,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했고..
아... 소비할 때 멋진 여자 같으니라고..
가자 얼른.
운동하고 글 쓰러. 내가 가장 평온한 곳으로!
틀어 박혀서 글 쓰고 강의 만들고, 브랜딩 해야지.
나는 나의 길을 가야지. 또 알아. 내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계의 샤인머스캣이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