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그거 별거 아니야
중고등학교 시절, 시험준비로 늦은 시간 -
책상에 앉아 있던 내게 다가와 따스하게 말을 건네시던 아버지의 분위기, 음성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런 아버지에게 별 반응?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 않았던 기억이다. 무뚝뚝했던 거 같은데.. 어머니는 날 한결같이 착한 아들이었다고 기억하신다. 부모에게 대들거나 기어오르지는 않았다는 뜻 아닐까.
시험기간에 간간히 내 얼굴 보러 방문 열고 들어오셨던 아버지가 참 좋았다. 방문만으로 위로가 되었다. 혼자 공부하다 보면 외롭다는 느낌이 들곤 했는데, 아버지는 내가 잘 때까지 거실에 계시거나 집안 어디엔가 앉아 계셨던 것 같다.
뭘 하고 계셨던 건지 기억은 안 나지만, 공부를 마치고 침대에 누울 무렵에 기가 막히게 다가와서는
'잘 자라 고생했다.' 하시더라.
당시에 아버지 나이는 지금의 내 나이 정도. 얼마나 신경 쓸게 많았겠나. 다음날 출근도 하셔야 할 텐데..라는 생각은 그 당시엔 해본 적이 없었다.
40대 중후반의 아버지 인생에 대해 신경을 쓸 만큼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던 십 대 소년.
나랑 같은 시간 새벽에 주무시고도, 아침에 어김없이 일어나 차로 등교를 시켜주시고는 출근하시고..
그다음 날도 그러시고..
또 그다음 날도..
그때는 내가 뭘 알았겠나. 시험스트레스가 세상 전부인 줄 알았지. 그때 새벽까지 공부했던 지식들은 다 어디로 갔나. 과연 어느 정도나 내 삶에 도움이 되었을까.
아버지의 헌신과 사랑에 비하니 그 공부들, 앉아있던 시간들.. 너무 보잘것없이 느껴진다.
아버지의 사랑은 하버드 급이었는데, 나는..
방문을 열고 세상 편안한 미소로 날 보며,
"시험. 그거 별거 아냐. "라고 얘기해주시곤 했다. 매 시험마다 그 말을 해주셨다. 한결같이.
그 덕에 난 시험은 정말 하나도 안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살아오고 있다.
시험이 뭐 그리 대단하게 중요하겠는가.
정말 중요한 건 공부다.
성인이 되고도 하고 싶은 공부가 있고, 지적 호기심이 식지 않으며, 꾸준히 탐구할 무언가가 있다면!
아버지의 헌신은 헛되다 할 수 없다.
진짜는! 내가 하고 싶어서 안달 나서 하는 공부다.
지금은 공부가 제일 재밌다. 하다 보니 박사학위도 취득했고, 그것도 모자람직 하여 다방면에 독서를 즐기고 이렇게 글도 쓰고 그러고 사는 것 같다.
아버지 덕이다. 시험? 별거 아니라는 가르침 때문에.
만일 학창 시절에 시험 잘 보기 위한 공부만을 해왔다면 나는 얼마나 지쳤을까.
큰 딸이 고1.
매일 늦은 시간 귀가하고, 늦은 밤까지 방 불이 켜져 있다.
나는 아버지가 내게 해주셨던 것만큼은 딸에게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잠 안 자고 버틴다. 나름의 노력을 하고 싶어서..
자꾸 딸아이 방문을 쳐다보게 되고, 연다 치더라도 확 들어가지도 못하면서
빼꼼 머리를 끼워 넣고는
아이의 뒤통수만이라도 보고 싶다.
사실 별로 해줄 말도 없고 말을 걸기도 두렵지만, 집 안에 함께 있는데도 난 왜 딸아이가 보고 싶은 걸까.
예전 아버지 마음도 그랬을까.
나는 이렇게 말한다.
"큰 딸! 예쁘니! 얼른 자. 자는 게 남는 거야!"
나도 모르게 자꾸 자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는..
우리 아이는 장차 미인이 되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