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부심을 기억에 담아 판매하다.
빅벤이나 런던아이 같은 랜드마크는 물론이고, 빨간 이층버스, 블랙 캡, 공중전화박스. 여기에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 왕실과 깃털 모자를 쓴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습은 내게 영국하면 떠오르는 대표 아이콘이다. 영국관광청(VIsitBritain)의 홍보 슬로건 역시 자부심이 넘친다. 영국은 ‘This is GREAT BRITAIN’이라는 슬로건과 영국국기를 활용한 비주얼로 국가브랜드를 홍보한다. 광고와 마케팅도 ‘Music is GREAT’, ‘Heritage is GREAT’ 등 모든 것에 항상 GREAT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오게끔 진행한다. 세계를 호령하고 지배하던 옛 대영제국의 느낌이 남아서일까. 적어도 내게 런던은 떠오르는 이미지도 많고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위압감이 느껴지는 도시이기도 했다.
그 ‘왠지 모를 위압감’의 도시를 실제로 찾았을 때 런던은 ‘기억하고 싶은 런던의 순간’을 담은 관광기념품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런던에는 영국을 상징하는 수많은 아이콘이 관광기념품으로 포장돼 판매되고 있다. 여느 관광기념품 가게에서나 항상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영국 국기다. 영국 국기는 패션을 비롯한 다방면에서 세계적으로도 인기 있는 아이템으로 등장했다. 전혀 영국과 관련 없는 사람이 영국 국기가 그려진 티셔츠나 가방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아이템이다. 요즘에는 조금 달라졌지만 2002년 월드컵 당시 태극기로 옷이나 응원도구를 만드는 것에 대해 국기 훼손이라는 이야기가 오고 갔던 우리나라에 비해 영국은 국기를 가지고 티셔츠, 머그컵, 손수건, 연필, 지우개, 자석 등 정말 안 만드는 것 없이 상품화하고 이를 관광객들에게 ‘판매’한다.
같은 국기 디자인을 활용해도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점도 있다. 버킹엄 궁전 혹은 빅벤 근처 시내에서 판매되는 제품들은 조금 더 깔끔한 제품들이 많은 반면, 캠든 마켓이나 브릭 레인 마켓에는 더욱 빈티지한 제품이 많았다. 관광지의 분위기에 따라 관광객이 원하는 느낌도 다르니 같은 디자인이라도 조금씩 고객 맞춤형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왕실의 아이콘인 엘리자베스 여왕과 근위병 역시 관광객들이 런던을 기억하는 관광기념품 중 하나다. 근위병 마네킹이 기념품 가게 앞을 지키고 있을 뿐 아니라 목이 움직이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인형부터 왕실 식구들이 그려진 그릇세트, 게다가 왕실에서 키우는 애완견 모양의 인형까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기념품들이 판매된다. 이 외에도 런던의 상징과도 같은 빨간색 이층버스, 블랙 캡과 공중전화박스 역시 수많은 상품에 디자인으로 활용되었고, 실물을 미니어처로 만든 피규어 역시 인기가 있었다.
관광기념품은 그 나라를 찾은 사람들이 여행의 기억을 더 오랫동안 간직하고, 또 그 감동을 주변의 지인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구매하는 물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물건이 아닌, 관광지에 대한 나만의 기억이 아름답게 담겨있어야 한다. 나는 빨간색 이층버스 맨 앞자리에 탔던 기억을 간직하고 싶어 빨간 버스 피규어를 사고, 밤에 반짝반짝 빛나던 템즈강의 야경을 기억하고 싶어 런던아이와 빅벤 모형이 담긴 스노우볼을 샀다. 관광기념품은 너무 고급스럽고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우리에게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을 담은 소소한 기념품들이 오히려 관광객의 지갑을 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괜히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다.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관광객에게는 신선할 장면이 담긴 기념품. 서울의 4색 타요버스 피규어, 10대 서울색 중 황토꽃담색을 활용한 택시, 태극기가 감각적으로 담긴 가방, 광화문 수문장 복장을 한 인형 등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우리나라를 찾은 누군가가 기억하고 싶은 한 장면을 관광기념품에 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 이 글은 여행신문에 기고 중인 칼럼 '길 위에서 만난 관광'을 브런치용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