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좀 달랐다. 첫 전화부터 그랬다. 취재를 위한 인터뷰를 요청할 때면 거의 항상 매달리고 애원하는 쪽이 되는데, 그녀는 단번에 좋다고 했다. 정말 1초 아니, 0.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런저런 필요를 더해가며 설득에 설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섭외 전화는 처음이었다.
인터뷰 주제는 제주 살이. 제주에 정착한 사람들을 만나는 코너인데, "한 달 살이가 수 년이 됐다"는 둥, "도시에서 벗어나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는 둥 뻔할 것 같은 얘기 속에 그렇지 않은 사연이 이어진다. 사람 수만큼의 다른 삶의 이야기가 실린달까. 그녀의 얘기도 궁금해졌다.
오늘 그녀를 만났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정말 자리를 깔아야 하나 싶을 정도로 몇 마디만 주고받아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감이 오는데, 첫 느낌과 끝이 다르지 않았다. '유명 학원가'하면 다들 제일 먼저 떠올리는 그곳에서 강사 생활을 했다는 그녀는 자신감이 있었다. 살짝 떠 있는 목소리는 나름 인터뷰이니 긴장하는 듯했지만 자신이 뱉은 말에 확신이 있어 보였다. "자존감이 높다", "주변에서 추진력이 좋다고 한다"라는 말들이 스스로를 애써 띄우려는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정말 그래 보였다.
알고 보니 그녀는 나와 동갑내기였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나이, 30대 중반. 제주에 내려와서도 강사일을 계속하던 그녀는 지난 5월에 일을 그만뒀단다. 자발적인 퇴직이었다. 직장을 끊은 거지 일과의 이별은 아니었다. 지금 더 바쁘고 정신없이 산다. 새로운 공부를 하며 자격증을 따고 책을 낼 준비를 하고, 내년엔 관광경영 전공으로 대학원도 간단다. 관광과 소상공인을 연계하는 일을 해 보고 싶다고 했다. 조만간 사업을 시작할 거라는 목표도 꺼내 놨다. 아무리 추진력이 좋아도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단, 5개월 만에 입시 강사라는 직업과는 완전한 이별을 고한 셈이다.
기자 일을 사명이 아닌 직업으로 꾸역꾸역 해 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선 많이 부러웠다. 새로운 도전이라는 걸 끼워 넣는 게 무모하다 싶어진 나이에 단숨에 새 방향을 결정하고 지금까지와 전혀 다르게 나아갈 수 있다니. 부럽기도 부러웠지만 한참을 대리만족을 했다. 잠시 나도 저래 보면 어떨까 상상을 하다 '다른 일'을 하는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아 서둘러 현실로 복귀했다.
그래도 이 일을 하니 늘 새로운 만남이 주어진다. 필요에 의해서든 그렇지 않든, 항상 누군가를 만나고 알아간다. 대개는 짧은 대화에 그치지만 그때마다 정말 한 마디라도 내 마음에 박히는 말을 얻는다. 제주를 다르게 보기 시작하니 제주가 많은 것을 줬다는 그녀의 말도 그렇다. 그 만남과 대화들이 참 소중하다는 것을 제주바다 같이 시원한 그녀가 새삼 알려줬다. 다시 사무실로의 '현실 복귀'가 덧없지만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