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일본
일본에 도착하고 한동안 나는 거의 알을 깨고 나온 삐약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알던 세상과 다른 부분을 볼 때마다 “이건 왜 이래?”, “여긴 왜 이렇게 해뒀지?”, “왜, 왜, 왜?” 등을 묻고 다니는 물음표를 달고 있는 삐약이. 집 문을 잠글 때도, “왜 같은 열쇠로 위아래 두 번 잠그는 거야?”, 전철을 탈 때도 “왜 스크린도어가 반밖에 없어?”, “왜 에스컬레이터가 이렇게 없지?”, “왜 전철에 창문이 열려있는 거야? 시끄럽게?” 등 쉬지 않고 내가 살던 곳과의 차이점을 뱉어 댔다.
웃긴 점은, 나는 해외 생활이 처음이 아니다. 대학생 시절 유럽 쪽 국가에서 교환학생으로 살아본 경험도 있다. 교환학생으로 갔던 그 나라는 우리나라보다 환경이 열악한 곳이라는 걸 알고 갔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때는 조금 긴 여행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왜?’라는 의문은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심지어 당시에는 버스를 탈 때 티켓 부스에서, ‘사람한테’ 티켓을 사서 티켓에 ‘구멍을 뚫고’ 타면서도 그저 그게 신기할 뿐이었다. 그냥 ‘여긴 이렇구나. 신기하네.’ 정도였다고나 할까 그런데 일본에서의 나는 도대체 왜 그랬던 것일까.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와 일본의 발전 정도와 인프라가 비슷하기 때문에 오히려 차이점이 더 잘 보였던 것 같다. 그림으로 비유해 볼까. 추상화와 정밀화를 옆에 두고 볼 때 둘이 너무 다른 나머지 차이점을 꼽아낼 수 없지만, 정밀화 두 개를 두고 보면 누가 더 사진처럼 잘 그렸는지 틀린 그림 찾기를 하듯 비교할 수 있다. 교환학생 때 살았던 그 국가는 우리나라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의 작은 차이도 쉽게 쉽게 눈에 띄었던 것이다. 심지어 기숙사가 아닌, 현지 사람들이 사는 집에서 생활한다? 더더욱 눈에 보이는 것이 많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차이가 나의 주요 불만 사항이 되기도 했다. 집에 세탁기랑 냉장고가 들어갈 공간이 미리 정해져 있어서 더 큰 가전을 쓸 수 없는 것도 너무 불만이었다(이건 지금도 불만이다). 무엇이든 어플보다는 웹페이지를 연결해서 조회하거나 처리해야 하는 것을 보면서 여기는 앱 개발 능력이 부족한 거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심지어는 오토시*를 내야 하는 식당에서 “왜 맨날 오토시를 내야 하는 거야, 오토시 안 먹을 테니 돈 안 내겠다고 하면 안 돼?”라는 무지성 발언을 하며 일본에서 오래 생활한 남편 친구들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돌아보면 너무 웃긴 이야기지만, 그때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고 다니지 않았다면 이 정도로 일본이란 곳을 알지 못했을 것 같다. 오기 전에도 아무것도 몰랐는데, 와서도 아무 생각 없이 생활했다면 어쩌면 나는 이곳에 몇 년을 살아도 한국과 어떤 부분이 다른지 의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부에 닿는 모든 부분에서 차이를 의식함으로써 그 특성을 더 뚜렷하게 느끼는 기회가 됐다. 그 시간 덕분에 한국에서의 생활의 장점을 깨닫기도 했고, 동시에 나도 모르는 새에 서서히 일본에서의 생활을 받아들이고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오토시 : 일본 술집 같은 곳에서 술을 주문할 때, 본격적인 안주가 나오기 전에 가게 재량으로 전채 개념으로 간단한 안주를 제공하는데, 이것을 오토시라고 한다. 이 오토시는 무료제공이 아니며 인당 금액이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