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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Jun 10. 2024

분명 학원을 다녔는데 일본에 오니 하나도 안 들려요.

어쩌다 보니 일본

 예전부터 나는 해외에 나가서 말이 안 통하는 것이 정말 너무 싫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백 퍼센트 말할 수도 없고, 상대방이 하는 말을 완벽히 알아들을 수도 없는 그 답답함. 내가 속았는지 뭔지 끝까지 알지 못한 채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년뿐일지라도 일본에서 살 거라면 일본어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일본으로 가기 전, 일본어 학원을 다니기로 하였다. 뭔가 비장한 느낌으로 얘기하긴 했지만, 실력이 쑥쑥 향상되는 스파르타식의 학원을 선택하진 않았다. 언어 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벼운 취미 수준의 반을 선택해 즐기는 마음으로 가타카나, 히라가나부터 시작해서 간단한 문법을 두 달, 기본회화 수업을 세 달까지 총 5달을 수강했다. 문법 공부를 갓 마친 내가 처음 회화 수업에 갔을 때는 선생님이 하는 말씀을 정말 한 마디도 못 알아들어서 옆에서 학생들이 알려주지 않으면 수업이 진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단어장까지 만들어서 매일 열심히 공부한 결과, 세 달째가 되었을 때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더듬더듬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정도 자신감을 장착한 나는 일본에 가서 이제 기본적인 거는 다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이 정도면 ‘가게에서 주문은 할 수 있겠지’, ‘슈퍼마켓은 혼자 갈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일본에 가면 스스로의 실력을 시험해 보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사라지는 데는 3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편의점에 가서 아르바이트생이 “レジ袋いりますか?”라고 물어본 순간, 내 머릿속은 새하얘지며 ‘뭐라고?’가 떠다녔다. 그렇다. 나는 レジ袋(발음 : 레지부쿠로, 의미 : 비닐봉지)도... いりますか(발음 : 이리마스까, 의미 : 필요한가요)도... 들어본 적도, 외운 적도 없다. 생각보다 현지 언어는 학원에서 배운 것과는 달랐다.      


 그래도 초반엔 자신감을 잃지 않고 열심히 듣고 해석해 보았다. 카페나 식당에 가면 점원과 남편이 하는 얘기를 듣고 해석해 보겠다며 의욕 넘치게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결과는 매우 처참했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단어가 바로 “ホイップクリーム(호잇푸쿠리무)”이다. 카페에서 점원이 저 단어를 말하는 것을 듣고, 바로 남편과 친구분한테 “화이트 크림이 들어가나 봐요?”라고 했었는데, 그 둘은 뭔 소리냐는 듯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더니 “화이트 크림...? 아, 휘핑크림 말하는 건가?”라고 대답했다. 이외에도 유니클로에 가서 내가 “주문”을 10번이나 말했는데 계속해서 “즈봉(바지)”으로 알아듣는 점원과 서로 답답해했던 일이 생기는 등 한동안 웃기고 창피한 에피소드들이 계속 생성되었다.     


 그런 상처를 받은 나는, 이후 무엇이든 들으면 “뭐래?”라고 물어보는 뭐래무새가 되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마당에 듣기 연습이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무엇이든지 일본어를 들으면 주위에 늘 해석을 요구했다. 뭐래무새 행동은 거의 6개월이 넘도록 이어졌는데, 그 정도로 스스로 기본 생활에 필요한 일본어를 익히고 다 알아듣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래무새의 활약으로 어느 순간 나의 일본어 실력은 성장해 있었는데, 그 덕분에 늘 흐리멍덩하게만 보였던 일본 사람들의 말풍선이 점점 선명해지는 마법과 같은 일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남편도 몇 개월에 걸친 뭐래무새의 “뭐래?” 공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일본어 공부하기 참 좋은 카페 벨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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