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버지의 검사 결과를 듣게 되었다.
진단명은 혈액암.
아버지는 10여년전에도 암소견이 있던 진단을 받으셨고 당시에도 연로하셔서 수술은 어렵다고 하여 계속 진료를 받으며 약물치료를 병행해 오셨다. 그러던 아버지가 작년부터 하루가 다르게 컨디션의 높낮이가 다르다는 소식을 어머니를 통해 듣게 되었다. 나는 제주로 이사온데다가 작년 코로나로 인해 이전보다 자주 못 뵈고 있는 터라 집에 들렀을 때 아버지를 뵙는 것이 내가 아는 아버지의 컨디션이었다. 뵐때마다 늘 아버지는 환하게 반겨주셨지만 다른 해와는 다르게 힘없이 누워계시고 잠이 많아지셨었다. 어느 때는 살이 너무 올라 걱정했었는데, 뼈가 잡히듯 마른 몸을 만졌을 때 내심 너무 놀라기도 했다. 놀란 나의 마음은 ‘정말 많이 아프시구나. 그래도 식사 잘 하시면 괜찮으실거야.’ 라고 혼자만의 생각으로 다독인 것 같다.
하지만 날로 아버지가 응급실에 가시는 날이 잦아지셨고, 이내 마지막 119를 부르신 날 이후 병원에서 일상을 보내고 계시는 중이다.
당연히 병원이 답답하실 아버지는 나가고 싶어 하시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그로 인해 생기는 모든 상황을 감당하시는 몫은 어머니이다. 면회도 안되고 교대도 안된다고 하니 참으로 답답한 상황일 따름이다. 그래도 나는 곧 괜찮아지실 거라 생각했다. 입원을 하면 퇴원을 하면 되고 검사를 받으면 결과 받고 늘상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의사가 자녀들을 부르고, 결과가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예상을 하는 여러 상황들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몇일의 시간이 흘러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명확하게 표현은 못하시고 간단하게만 말씀하셨다.
“길어야 1년이고, 6개월 정도래.”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는 나는 약간 다그치듯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데. 진단명이 정확히 뭔데?”
“혈액암”
사실 진단명을 들었을 때는 요즘 의료 기술이 좋아졌다는 생각 때문일까. ‘암’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중압감이나 드라마에서처럼 억장이 무너지거나 하는 기분 보다는 가망이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가능한 방법이 무엇인가 있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뒤이어 하시는 어머니 말씀
“이제 나이도 너무 많고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데.”
그렇다. 아버지는 연세가 많다. 실로 내 나이 또래 친구들 부모님보다도 한참이 많으시다. 내가 늦둥이이기 때문에 늘 다른 가족들보다 우리 집 부모님이 연령대가 높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현재 나이를 가늠한 건 꽤 되었는지. 다시금 연세를 세어보고는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올해 87세가 되신 아버지.
내 마음 속 연세보다 이미 더 많이 시간이 흐른 것이었다. 이제 정말 보내드려야 하는 시기인건가. 정말 ‘마음의 준비’라는 것을 해야하는 것인가? 모든 인간은 영원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다시 별로 돌아가야 하는 늘 헤어짐이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기에 마음의 준비는 늘상 어느 정도 되어 있었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암이라는 단어보다 나에게 더 무겁고 무섭고 가슴아프게 다가온 것은 단 하나이다.
“제한된 시간”
살아봐야 아는 세상이지만 만약 정말 시한부의 인생이라면 그 남은 시간 동안 난 뭘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만 맴돌았다. 제주에 살고 있지만 직접 간병을 해드리고 면회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그나마 좀 마음이 나아졌을까? 일분 일초가 무색하게 가는 것이 그 어느때보다 야속하고 멈추고 싶은 심정일 뿐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은 제발 좀 시간아 멈추어 달라는 마음의 아우성을 자아낸다.
인간이 참 이기적인지라 이제서야 떠오르는 아버지와의 추억도 앞으로 내가 생각했던 미래도 막막해졌다. 언젠가 돈 많이 벌어서 편히 사실 수 있도록 해드려야지. 여행도 많이 다녀야지 했던 그 바램은 정말 바램일 뿐일 수 있다는 것.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것이다. 추억은 진정 추억이 되어 버리고 이제와서 아버지에게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아져버린 내 자신이 한스러울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고 답답하고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일까. 내가 또 뭔가 나만 생각하느라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 지 되내이게 된다.
매일 갑자기 터지는 울음. 아버지를 생각하다 잠드는 나날이 이어지며 아침의 나는 팅팅 부은 눈으로 오늘도 정신을 차려보려 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한다는 말이 있지만
밝혀지는 병명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제한된 시간이다.
무엇이든 해보려 찾지만
시간은 오늘도 어김없이 흘러가고
그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는 것
아버지가 별이 되기 전에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