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빛을 빛어가는 시간
봄 햇살이 따뜻해지자, 괜스레 나들이가 하고 싶어 졌습니다.
자연 속으로 훌쩍 떠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꽃이 만개할 때를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하고, 이번엔 도심 속 봄빛을 따라 걷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에 나선 거리.
사람들의 옷차림은 한결 가벼워졌고, 그 위로 부드러운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았습니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하루, 그 따스한 빛을 따라 천천히 걸었습니다.
또각또각, 구두굽 소리가 햇살 속에서 경쾌하게 울렸습니다.
봄빛 속을 걷다 보니, 마음 깊숙이 에너지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아쉬워 예정에 없던 전시관에 하나 더 들렀습니다.
명품관 지하에 마련된 작은 전시 공간.
줄지어 선 사람들과 함께 들어선 순간, 뜻밖의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명징하게 다가오는 빛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극적이거나 과장된 연출은 없었습니다.
인물과 자연의 평범한 장면 속에서 빛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닌 주인공이었습니다.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의 찰나를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한 작품들이었습니다.
아흔 살의 대가, 알렉스 카츠.
그가 평생 갈무리해 온 빛의 단상들이라 생각하니, 작품이 주는 울림은 더 깊게 가슴에 스며들었습니다.
곁에 있으면서도 자주 놓치고 마는 빛, 혹은 마음속 깊은 따스함을 비추는 듯한 귀한 빛들.
그렇게도 소중한 빛들이 인물과 자연의 풍경을 빌려 조용히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무르익으면, 빛을 찾고 또 그리게 되는구나.’
그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그날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 깨달음은 단지 한 장의 그림에서 시작됐지만, 나를 오래된 기억 속으로 이끌었습니다.
살면서 저는 빛보다는 그늘진 얼굴들을 더 자주 마주해 왔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나 자신이 어둠과 그늘에 익숙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떠오릅니다.
아주 오래전, 일을 잃고 망연자실한 채 누워 계시던 어머니의 얼굴.
주렁주렁 책임져야 할 가족들에 짓눌리던 그 시절, 삶의 희망을 잃고 애태우시던 얼굴에는 속이 시커멓게 문드러진 듯한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그 절망의 그림자.
나 역시 마음이 타들어갈 때마다, 한 번씩은 마주했던 내면의 그늘.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기억입니다.
수차례 삶의 격랑을 지나며, 반복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고, 삶을 이해하고자 인성 공부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지", "이 고통은 언제 끝날까" 하는 말이 튀어나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래도 해보자", "배울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 서서히 얼굴이 맑아지고 마음에 여유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빛은 외모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말과 태도에서 더욱 또렷이 빛난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 속 여인을 닮고 싶지만, 보여주는 빛에 머무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빛, 누군가에게 따사로움을 전하고, 다시 삶의 힘을 불어넣는 빛을 뿜어내고 싶습니다.
늦더라도 차근차근 나만의 빛을 만들어가려 합니다.
그림이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다면, 나 역시 나만의 예술작품을 빚어내고 싶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그 그림 속 여인처럼, 언젠가는 나도 빛을 입은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그 빛 속에 머무는 나를 그려봅니다.
낮에 본 도슨트의 세련된 목소리,
그녀의 뺨 위에서 반짝이던 조명,
해설을 경청하던 관람객들의 머리 위에 잠시 머물던 빛.
아름다움을 찾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 위로 내리던 그 빛은 생기와 여유로움이 깃든 살아 있는 빛이었습니다.
좋은 빛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나도 그 빛과 하나 되어 있을지 모릅니다.
노란 백열등을 딸깍 켜던 어린 시절,
태풍으로 정전이 나면 하얀 초를 밝혔습니다.
그 작은 불빛 하나로도 그림자가 일렁였고, 작은 세상은 살아 움직였습니다.
그 후 긴 형광등 불빛을 처음 켰을 때, 차갑고 새하얀 빛이 낯설게 느껴졌던 기억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환하고 선명한 빛이 더 좋아졌습니다.
빛도 시대에 따라 변하고 진화합니다.
그렇게 나의 빛에 대한 감각은 점점 확장되었습니다.
가끔은 아날로그 감성의 노란빛이 감도는 카페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옛 백열등 아래 머물던 감성이 소환되는 걸까요.
복잡하고 고단한 세상 속에서 다시 여유를 회복하고 싶어 집니다.
어릴 적에는 낮과 밤이 명확히 갈렸지만, 이제는 그 경계마저 흐려졌습니다.
시골 마을은 여전히 밤이면 어둠 속으로 숨지만, 대도시는 밤에도 눈부신 불빛으로 잠들 줄을 모릅니다.
문화도 에너지도 어둠 속에서도 끊임없이 흐릅니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빛을 만날 수 있는 시대.
그야말로 ‘빛의 시대’입니다.
빛은 더 이상 공간을 밝히는 수단이 아니라, 감성과 개성을 표현하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거리의 조명은 사람들의 감각을 자극하고, 일상조차 연출의 무대가 됩니다.
사람들은 더 아름답고 독창적인 빛을 찾아 끊임없이 표현합니다.
빛은 공간의 인상을 결정짓고, 그 공간에 어울리는 사람을 이끌어 들이는 섬세한 감각의 센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 예술가들이 다루는 빛의 감도와 밀도는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무미건조한 일상에 감동의 입자를 더하고,
사람의 내면에 숨어 있는 빛을 조용히 길어 올려 화폭 위에 펼쳐냅니다.
그 깊은 울림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습니다.
모든 빛은 찰나에 따라 달라지기에,
그 순간을 알아차리는 감각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사람의 얼굴빛 또한 마음의 상태에 따라 순식간에 변하지요.
그래서 그 빛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더 깊고 건강한 관계를 맺습니다.
좋은 빛을 품은 사람은 주위에 따스함을 전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 속에서 누구보다 먼저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그런 이들의 하루는 어둠마저도 의미 있게 바라보는 여유로 채워집니다.
그날, 함께한 사람들의 걸음과 말투, 표정 속에서 각기 다른 고유의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날, 봄 햇살 못지않은 환한 빛을 서로 나누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제 보여주는 빛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고 누군가를 살리는 빛을 품고 싶습니다.
나만의 빛을 차근차근 빚어내며, 글로 그 빛을 전하고자 합니다.
혹시라도 이 작은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의 빛이 되어준다면,
나는 내 안의 빛을 더 꺼내어 써 내려갈 겁니다.
“본디 사람이 빛이라는 말, 이제야 그 말이 가슴 깊숙이 스며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