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불씨를 잠재우는 물소리
나는 비가 참 좋습니다.
빗소리, 촉촉한 공기, 차분해지는 그 분위기까지 모두요.
어릴 적엔 폭우 속을 일부러 뛰어다니며 놀곤 했습니다.
비 오는 날 만큼은 어머니도 밭일을 쉬셨기에 함께한 시간이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포슬한 감자와 고소한 부침개는 장마철 단골 간식이었지요.
볼록해진 배를 안고 마루에 앉아, 허공에 줄을 대며 떨어지는 빗방울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시간.
댓돌 아래, 조그만 물웅덩이에선 작은 물 폭죽이 연신 피었다 꺼지며 신나는 연주를 이어갔습니다.
주룩주룩 후두둑.
세상 어느 음악보다도 더 좋았습니다.
그 기억을 되새기며 오후 산책에 나섰습니다.
장맛비로 불어난 개천의 물살은 빠르게 내달리고, 길가의 초록은 한층 더 선명해졌습니다.
살랑이는 바람에 들풀들이 저마다 춤을 추고, 이토록 사랑스러운 풍경 앞에서도 마음은 어쩐지 무겁기만 합니다.
기다리던 유월, 설레던 장마철이었지만 요즘은 다릅니다. 다시 TV를 보기 시작한 그 무렵부터였을 겁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어쩌다 보니 TV와 멀어졌습니다.
육아에서 벗어나며 삶의 패턴이 달라졌고, 창업은 나를 브라운관 밖 현실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군 입대를 앞둔 아들이 작은 TV 모니터를 내밀었습니다.
“TV도 좀 보세요, 영화도 보고요.”
혼자 남겨질 어미가 마음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TV 속 세상은 생각보다 더 무겁고 아팠습니다.
뉴스는 믿기 힘든 사건들로 가득했고, 사람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지요.
긴 장맛비와 함께, 내 안에 우울이 흘러들었습니다.
비극은 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가정, 학교, 거리 곳곳에서. 더 안타까운 건, 그 비극적인 사건들에서 가해의 주체가 평범한 우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건은 ‘이번 한 번쯤이야’ 하는 방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작은 틈 하나가,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죠.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몇 해 전, 아들의 원룸에서 화재 사고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집밥 한 끼 챙겨주겠다고 욕심을 부리다, 국냄비를 올려둔 채 깜빡 잊고 말았지요.
시커먼 연기가 방안에 가득 찼고, 요란한 화재 경보음과 함께 소방차가 출동했습니다. 급기야 입주민들까지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냄비 하나로 오피스텔 전체가 혼란에 휘말린 겁니다. 뭔가를 검색하느라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나는, 방 한가운데서 거의 공황 상태가 되었습니다.
매캐한 연기 속에서 심장은 터질 듯 뛰었고, 책임에 대한 두려움과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 한꺼번에 밀려들었습니다. 한 번의 방심이 얼마나 큰 위험으로 번질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깨닫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세상은 악의를 품은 사람만 위험한 게 아니더군요. 무지와 방심 또한 그에 못지않게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그 누구든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걸 뼈아픈 깨달음이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살림에 자신 있던 나 자신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렸고, 후회의 빗줄기는 오락가락 이어졌습니다. 지금도 주방 앞에만 서면, 그 비는 여전히 소환되어 내립니다.
장마철 비극의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또 다른 장마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수년 전 7월 장마의 끝자락. 어느 장대비 쏟아지던 여름밤, 지역의 돈사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수백 마리 돼지가 순식간에 화마에 휩싸였습니다. 비 속에서도 불꽃은 시뻘겋게 타올랐고, 모든 것을 삼켜버렸습니다.
당시 한 어르신이 말씀하셨습니다.
“마을 기운이 탁해져서 그래. 불이 난 것도 그 탓일 게야.”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그 말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그 말의 의미가 조금씩 와닿기 시작합니다.
화재가 나기 전부터, 어쩌면 그 조짐은 이미 마을 곳곳에 감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카페 건물을 짓는 동안, 지역 주민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레 마을 분위기를 살필 수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반가운 인사와 웃음이 오갔지만, 막상 대화를 나눠보면 불편한 기색이 자주 엿보였습니다.
돈사의 악취로 인해 마을 준비들은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했지만, 달라지는 건 미미했었다지요.
기존 주민들과 새로 이주한 입주민들 사이엔 발전기금을 둘러싼 갈등이 깊었고, 마을 안에서는 크고 작은 말다툼과 기싸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오픈을 한 뒤에는, 여러 종교 지도자들까지 찾아와 각자의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엔 사람들을 이끌어주는 선지자들의 입에서 연이어 불평이 터져 나오는 모습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다들 웃고는 있었지만, 표정 너머에는 갑갑함과 말 못 할 불만이 스며 있었습니다.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눌러 두었던 분노가 슬며시 모습을 드러내곤 했으니까요. 평온해 보였지만, 속은 이미 분노와 억울함으로 탁해져 있었던 셈입니다. 그렇게 응어리진 감정들 어느샌가 마을 전체를 달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전국 곳곳에서 대형 화재가 잇따를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정치, 뉴스, SNS,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들도 점점 거칠어지고 있지요.
분노와 비난이 일상이 된 지금, 어쩌면 우리 모두가 알게 모르게 화마의 불씨를 키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고운 말은 사라지고, 칼보다 날 선 말들이 오갑니다.
썸네일 하나에도 자극과 힐난이 가득한 시대.
어쩌면 잦은 화재와 폭발들은 우리 마음속에 쌓인 불길이 바깥으로 터져 나온 결과일지도요.
내 안에서 부글부글 끓는 감정, 그 열기가 기어이 현실의 불씨를 부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름철 돈사 화재의 대부분은 과열된 전열기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무더위에 전기사용량이 늘고, 청소가 미흡해 먼지가 쌓이면 발화 위험은 더 커진다고 하지요.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너무 빨리 달아오르고, 마음속 먼지는 쌓아두기만 할 뿐 털어내지 못하니까요. 그렇게 묵은 감정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불길로 번질지도 모릅니다.
탁한 생각을 걸러내고 말투와 말씨를 가다듬어 따뜻한 말들로 서로를 품어준다면,
그 정돈된 마음은 언젠가 일상 속 실천으로 이어져, 진짜 화재의 불씨를 막아주는 힘이 되어줄지도 모릅니다.
생활의 재정비는 결국, 마음을 정돈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내면의 먼지를 털어내야 비로소 바깥도 맑아지니까요.
참지 말고, 감정이 고이지 않도록 흘려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말이 막히지 않고, 감정이 흐를 때, 우리는 숨을 쉴 수 있습니다.
그런 관계 안에서 우리는 회복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혼자 끌어안지 말고, 꼭 말로 풀어내세요.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생존기술입니다.
일상의 루틴도 다시 살펴야 할 때입니다.
무심코 반복해 온 습관들이 뜻밖의 어려움을 만들었는지도 모르니까요.
디지털 디톡스나 사소한 정리정돈 같은 작은 실천들이 결국은 내면의 질서를 되찾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사고는 새로움이 아닌, 지나치게 익숙한 공간과 반복 속에서 발생합니다.
매일 마주치는 뉴스와 경험들 속에는 성찰의 기회가 있지만, 우리는 그저 지나치기 일쑤입니다.
쉽게 분노했다가도 금세 잊고, 이내 무관심으로 덮어버리는 우리.
그 사이, 같은 비극은 다시 반복되고 맙니다.
대자연은 같은 경고를 되풀이하며, 끊임없이 우리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는지도 모릅니다.
장맛비는 조용히 두드리며 말합니다.
“이제, 멈추고 돌아보라”라고.
바깥보다 안을 먼저 살피고, 굳은 감정을 씻어내며, 내 안의 물길을 다시 흐르게 하라고 말입니다.
장마는 멈춤이자 정비의 시간입니다.
마음속 금이 간 곳은 없는지, 응어리가 흐름을 막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삶의 패턴을 점검하고, 불안한 습관을 고치며, 말로 털어내지 못한 감정을 흘려보낼 때입니다. 마음속 비설거지, 바로 지금 해야 할 일입니다.
감정이 흐르고, 자유로이 말이 오가며, 마음이 서로 통하는 상태.
바로 그 연결감이 막힌 물길을 다시 열어줍니다.
크게 뭔가를 이루려 애쓰기보다,
지금 이 계절이 건네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는 것,
그것이 어쩌면 더 깊은 준비일지도 모릅니다.
장마가 대지의 갈증을 채우듯, 우리도 내면의 갈증을 돌아보며
마음의 강을 채워야 할 때입니다.
생각이 많아지는 계절입니다.
산책길 벤치에 앉아, 나에게 묻습니다.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지.
문득 시선을 들어보니, 흐르는 물길 속에서 여유롭게 개천을 거닐던 백로 한 마리가 솟구치듯 날아오릅니다.
그 하얀 날갯짓이 말을 합니다.
“잠시 쉬어가도 돼, 그래야 더 멀리 날 수 있어.”
마음의 물길이 트인 듯 시원한 물소리가 드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