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일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를 선물했을 뿐입니다.”
몇 해 전, 모처의 컨벤션 센터를 찾았을 때의 일입니다.
로비에서 지인과 담소를 나누던 중,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어르신 두 분이 환한 얼굴로 다가오셨습니다.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독 밝은 기운이 느껴졌고, 익숙한 부산 사투리가 반가워 먼저 인사를 건넸습니다.
“어르신, 부산에서 오셨나 봐요. 저도 부산이 고향이에요.”
그 한마디로 이야기가 이어졌고, 자연스레 어르신의 암 극복기로 흘러갔습니다.
수년 전, 위암 수술 후 삶의 의지를 잃고 누워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인성 공부를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암 걸린 게 다 내 고집 때문이더라고.
그걸 깨닫고 나서는, 억수로 울었다 아이가.”
그 후로는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하고, 참 많이도 반성하셨답니다.
“모르던 거 하나하나 알아가니, 얼마나 좋던고.”
“진작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 건데... 그땐 먹고살기 바빠서 어쩔 수 없었제.”
“이젠 아들도 ‘우리 엄마 많이 달라졌네’ 하더라고.”
삶의 이치를 배워가며, 가슴 깊이 맺혔던 응어리가 풀리고
오래된 상처들이 조금씩 아물어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주 다니던 감자탕집 사장님이 느닷없이 제안을 하셨답니다.
“아지매, 가게 카운터 좀 봐주이소.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서예. 아지매 인상도 좋으시고... 딴 일은 안 하셔도 됩니다.”
“내 나이가 몇인데, 이런 할마시를 써주는 데가 어딨노.”
처음엔 믿기지 않았지만, 그렇게 다시 일터에 나서게 되셨답니다.
“사람 귀한 줄 알고 대하니까, 마음이 먼저 가더라꼬.”
예전처럼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지만, 이제는 마음을 담아 하게 되었고, 그만큼 모든 게 달라졌다고 하셨습니다.
먼저 인사하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면 손님들도 자연스럽게 웃음으로 답해 준다며 흐뭇해하셨습니다.
“손님들이 날 사장인 줄 안다니까~”
그 얼굴엔 진심 어린 기쁨과 만족이 담겨 있었습니다.
어르신의 삶을 바꾼 건 일이 아니라, 그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진심으로 대하자, 관계가 달라졌고 삶도 자연스럽게 바뀌었습니다.
억지로 하는 일은 사람을 지치게 하지만,
누군가를 위한 마음에서 시작된 일은 즐거움과 지혜를 함께 안겨 줍니다.
어르신은 단순히 일한 것이 아니라,
진심과 미소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계셨습니다.
그 따뜻한 시간들은 결국 어르신 자신에게도 새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마음을 바꾸자, 인생이 바뀌었다.’
이 단순하지만 깊은 진리는
어르신뿐 아니라 내게도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나 역시 한때 이유 모를 통증과 피로에 시달리며
몸도 마음도 지쳐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알게 됐습니다.
아픈 건 몸만이 아니었다는 걸요.
내 안 깊숙이 쌓인 감정, 고집, 화…
그것들이 조용히 나를 짓누르고 있었지요.
병원을 다녀도 나아지지 않았던 이유는
몸보다 먼저 치유돼야 할 게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놓자, 삶이 풀렸습니다.
고집을 내려놓으니, 사람과의 관계도 조금씩 회복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다짐합니다.
마음을 열고, 누군가에게
따뜻한 순간을 건네는 사람으로 살아가자고요.
감자탕집 카운터에는
햇살 같은 미소로 하루를 건네는 어르신이
오늘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