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흐르기로 했다

by 지은담

청춘


친구여

난 이제 더 이상 젊지 않다네

고단했던 도시를 떠나

이제는 자연 속에서 쉬어가려 하네


친구여

떠나보면 알게 될 걸세

그곳은 우리네 세상보다 더 치열한 열정이 있단 걸

자연은 쉬이 포기하지 않는다네

쉬어가는 속에

청춘의 봄이 다시 찾아올 걸세


어여 가게

그리고 아이가 되어 돌아오게

내 청춘이 되어 돌아올 자네를 위해

술잔 하나 비워두겠네

자네 앉을 그 자리에...


그때가 되면,

우리 함께 뜨거운 삶을 다시 시작해 보게나





1부 - 상처 위에 핀 봄, 아이와 나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청춘을

뜻밖에도 자연 속에서 되찾았습니다.

그 시작은, 이사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20여 년 전, 간절히 바라던 이사의 꿈은

남편의 사업 실패라는 예상치 못한 계기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당시 우리가 살던 곳은 공해와 매연이 심했습니다.

게다가 유해 자재로 지어진 집은

겨울에도 눈이 따가워 창문을 열어야 할 정도였지요.

중증 아토피와 호흡기 질환이 심했던 아이들에게는

매우 해로운 환경이었습니다.


집을 벗어나 공기 좋은 곳으로 나가기만 해도

아이들 증상이 눈에 띄게 호전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장 근무를 핑계로 집에 거의 머물지 않던 남편은

시댁이 있는 그곳을 쉽사리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사업이 부도가 났고

친정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마침내 이사를 감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사는

내게 간절히 바라던 해방감을 안겨주었습니다.

힘겨웠던 시댁 식구와 오염된 환경, 갑갑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 듯했지요.


입주한 새 아파트는 만족스러웠습니다.

잠시나마 안정을 찾은 듯했지요.

하지만 그 평안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감옥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내가 외출하거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꺼렸고,

아이들은 알레르기가 심해 먹는 것 하나하나까지 신경 써야 했기에

나의 하루는 대부분 집 안에 묶여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동네 아이들이 하나둘 우리 집에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반기며 맞았지만,

매일 같이 이어지는 발걸음에 조금씩 지쳐갔습니다.


그러는 사이 이웃맘들은

자신들의 여가를 즐기며

자연스레 아이를 맡기는 일이 잦아졌고,

거절에 서툴렀던 나는

그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우리 집은

아이들의 임시 보호소가 되어 있었지요.

잦은 병치레로 또래와 어울릴 기회가 적었던 우리 아이들을 생각해

불편함을 감수했지만,

그 선택은 곧 후회로 돌아왔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거실과 방을 오가며 놀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방을 뛰쳐나온 동네 아이들이 큰 아이가 맞고 있다며 알려왔습니다.

급히 방으로 가보니, 이웃 아이가 주먹과 발로 큰 애를 무자비하게 때리고 있었습니다.

어른이 말리는데도 멈추지 않는 그 아이를 보며,

말 그대로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유년기의 천진한 얼굴과 그 이면에 있는 상상조차 못 한 폭력성.

때린 이유.

“나랑만 놀아.”

큰 아이가 또래 친구들과 사이좋게 노는 게 싫었다는 그 아이.

아파트 계단, 정류장, 어린이집.

두 형제를 향한 괴롭힘은 계속되었습니다.


가해 아이들이 아직은 어리고,

자주 마주하는 이웃이기에

사과는 늘 어색한 웃음으로 흐지부지 넘어가곤 했습니다.

그렇게 유치원 시절을 보낸 두 형제는

초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또다시 힘든 시간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오후, 둘째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지요.


전날, 정성껏 작성한 숙제를 잃어버린 아이는,

제출된 숙제에서 자신의 이름이 지워지고

짝꿍의 이름이 덧씌워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미제출자로 혼이 나던 와중에 선생님께 사실을 알렸지만,

제대로 된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선생님은 아이를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우며 크게 꾸중하셨습니다.

억울함을 견디지 못한 아이는

그 순간부터 하루 종일 울음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평소에도 짝꿍에게 괴롭힘을 당해오던 터에,

그런 일까지 겪고, 믿었던 선생님에게 모욕까지 당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속상했을까요.

다친 각막의 치료용 렌즈가

눈물로 사라질 정도로 하염없이 울던 아이를 보며,

나도 함께 무너져 내렸습니다.


가까스로 오해는 풀었지만,

아이에게 상처를 준 그 누구도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와 나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말았지요.


이후로도 아이에 대한 괴롭힘이 계속되면서,

내 안에 묻어두었던 오래전 학교폭력의 상처까지 끄집어 올라왔고,

사람에 대한 환멸은 점점 깊어졌습니다.


문제를 바로잡을 힘도,

용기도 없었던 나는

그저 하늘을 원망하며 버텼습니다.

스트레스는 쌓여갔고,

더는 견디지 못해

인적이 드문 곳으로 두 번째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품고 떠난 새 터전에서도

폭력은 또 다른 얼굴로 반복되었습니다.


학교 안팎에서,

아이들과 나는 지속적으로 상처받았고

문드러진 마음은 더욱 짓이겨졌습니다.


어느 날, 학부모 호출을 받고 급히 학교에 갔습니다.

담임 선생님의 첫 말은 차가운 질책이었습니다.


“아이가 이렇게 될 때까지, 도대체 뭘 하셨어요?”


잠시 후 아이가 그린 꿈 그림 한 장을 보는 순간,

어안이 벙벙한 채, 말문이 막혔습니다.


'검은 우주 한가운데,

홀로 떠 있는 작은 아이.'


평소 해맑고 명랑한 아이였기에

그 그림은 더 충격적이었고,

보는 내내 가슴이 저며왔습니다.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상담 일정을 잡기 위해

꿈 해석 상담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녀는 그날 아이들의 꿈 그림을 지도했던 분이었고,

따뜻한 어조로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는 괜찮습니다.

그 그림은 아이의 모습이 아니라, 어머니의 내면을 보여준 거예요.

아이가 자라 건강해지면서...... 무의식 깊이 잠들어 있던 감정이... 서서히 드러나는...

어릴 적 정서는... 어머니의 상태에 닿아 있기 때문에...

지금은 어머님 회복이 우선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알 수 있었습니다.

아픈 아이 뒤에는, 늘 아픈 엄마가 있었음을.


나는 아이들을 돌볼 준비도,

나를 돌볼 여유조차 갖추지 못한

상처 입은 어른 아이였습니다.




3부 - 흐르기로 선택한 순간, 청춘이 되살아났다

삶의 고비마다 이사를 반복했지만,

그건 회피에 불과했고, 문제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가정 내 갈등, 대인 관계의 피로, 학교 폭력...

뒤엉킨 혼란 속에서

나는 길을 잃고, 무기력해져 갔습니다.


드라마나 책 속의 단호한 대처는

내겐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현실의 나는

이기적인 어른들과 제멋대로인 아이들 앞에

속수무책으로 주저앉을 뿐이었으니까요.


어느 날,

더는 안 되겠다는 절박함이 밀려왔습니다.

벗어날 길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고요한 산속은 공부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고,

사람이 두려웠던 나는

자연스럽게 사람을 이해하는 공부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게 상담심리를 배우며

비로소 내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바깥이 아니라,

내 안의 불안과 허기에서 비롯되었음을.


하지만, 자각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삶 속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직면하고, 이해하고, 풀어낼

살아 있는 가르침이 필요했습니다.


졸업 즈음,

부족한 공부를 채우기 위해

인성과 마음공부를 병행하며

하루 대부분을 온라인 강의 듣기에 쏟아부었습니다.


내 안의 허기가 얼마나 깊었던지,

밤을 새워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시간이 쌓이면서

조금씩 힘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몇 해가 흐르자,

내 안의 분노는 서서히 옅어지고,

불안도 서서히 사라져 갔습니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았고,

아이들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풀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은 내게

삶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사계절의 순환 속에서

삶과 죽음을 마주했고,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는

내 안의 진짜 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자연의 품에서

나는 따뜻한 보호를 받으며 공부를 만났고

차츰차츰 힘을 되찾아 갔습니다.


어느 날 문득, 안개 걷히듯 무언가가 선명해졌습니다.

그동안 불행이라 여겼던 모든 경험들이

돌이켜보니,

모두 나를 위한 맞춤 수업이었습니다.


괴로움과 원망...

죽을 만큼 힘들었던 날도 있었지만,

그 시간들은

결국 나를 길러낸 소중한 토양이었습니다.


한때는 남 탓하며,

도망치기 바빴던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환경이

내가 풀어야 할 삶의 숙제임을 받아들이자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오래전 잊고 살았던

청춘의 열정이 다시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 속 계곡에서 배운 가장 큰 가르침은

흐름의 법칙이었습니다.


물은 거슬러 흐르지 않았습니다.

장애물을 만나면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자신의 길을 찾아갔습니다.


반면,

계곡물을 억지로 끌어온 연못은

흐름이 막혀 금세 탁해졌습니다.

욕심은 늘 찌꺼기를 몰고 와

흐름을 방해하고, 잦은 청소를 필요로 했지요.


그 시절의 나는

탁해진 연못 같았습니다.


“내 삶은 절대 변할 수 없을 거야.”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이런 말들로 스스로 흐름을 막으며,

나는 천천히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무기력으로 삶의 흐름을 타지 못했던 시절,

나는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고

그 어떤 것도 배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 앞에서 미숙했고, 무지했으며,

삶은 점점 희미해져 갔습니다.


남의 무대에서 들러리처럼 살아가며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습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고통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삶을 공부하라.”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고인 물을 맑히듯,

낡은 생각을 걷어내고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며,

나는 조금씩 다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자연 속에서 보낸 시간 동안

내 안에 켜켜이 쌓여 있던 고집의 찌꺼기들이

새로운 지식의 물살에

서서히 씻겨 나갔습니다.


어느 여름밤,

계곡에서 반딧불이 하나가 발코니로 날아들었습니다.

홀린 듯 잡아 유리병에 가뒀다가

잠시 그 신비한 빛을 바라본 후 다시 날려 보냈습니다.


곧장 아래 계곡으로 날아갈 줄 알았건만,

반딧불이는 밤하늘에

아름다운 나선형의 빛을 그리며

날아올랐습니다.


그 빛.

그 자유.

나는 작은 존재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길을 잃었을지도 모를 그 반딧불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영롱한 빛을 내며

스스로의 길을 끝내 찾아갔습니다.


혼자서도 꿋꿋이 제 빛을 밝히는

그 존재에게서

나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아마도 그리 살라고

미리 보여준 것이겠지요.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의 청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나는 지금, 다시 쓰여가고 있다고.

청춘의 이름으로.


흐르기로 선택한 그 순간부터,

청춘은 내 안에서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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