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

우리는 아직 탈피 중이다

by 지은담
멈춘 현실, 흩어진 시선이 같은 상처를 말했다

모처럼 선선한 바람이 불지만, 마음은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일주일 내내 이어지는 공사 소음은 오늘도 어김없이 머릿속을 두드립니다.


박제가 된 듯한 심장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큰 물가를 찾았습니다.

낯선 동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호숫가에 내려 느릿하게 걸었지요.

한낮의 햇살이 따가워 양산을 펼쳤지만,

녹음이 짙은 곳은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 더위를 잊게 했습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푸른 호수물이 가득해, 절로 숨이 트였습니다.


한참을 걷다 다리에 올라서니, 물 위에 내려앉은 가마우지 두 마리와 오리가 보였습니다.

멋진 장면이라 사진을 찍으며 한참을 바라보았지만, 새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제각각 다른 곳을 응시한 채, 마치 박제를 당한 듯 멈춰 있었지요.

그 멈춤 속에서 문득, 우리 안에 굳어버린 마음 하나를 보았습니다.


며칠 전, 잠시 편의점을 들르려 집을 나섰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웃의 고깃집은 철거 중이었고, 조금 아래 올 초 오픈한 골프 살롱은 이미 문을 닫은 채였습니다.

동네 소문난 빵집마저 주차장이 텅 비어 있었고, 빵 매대의 진열도 절반 이하로 줄어 있었습니다.

브런치 시간임에도 손님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영업이 무너지는 모습은 너무도 적나라했고,

그때 들리던 공사 소음은 마치 “살려달라”는 절규처럼 들렸습니다.

뉴스는 연일 암울함을 전합니다.

나도 이 거리도, 이 나라와 시대도 박제된 듯 얼어붙어 있는 듯합니다.


돌아오는 길, 호숫가 덤불숲에서 매미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습니다.

매미는 땅 속에서 애벌레로 7년, 아니 10년 이상도 산다지요.

성충이 되어 땅 위로 나와 탈피를 하고선, 날개를 갖춘 매미로 여름 한 철, 단 몇 주간 제 목소리를 한껏 내며 살아갑니다.

긴 어둠을 견딘 뒤, 찰나의 열정을 불사르는 매미의 일생.


대한민국도 그와 닮아 있는 듯합니다.

긴 시간 역사의 그늘에서 숨죽여 살다가,

이제 겨우 세상 밖으로 나와 제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고된 탈피 과정을 겪고 있는...

찢어지는 시간을 지나야만 날개가 드러나듯, 지금의 아픔도 반드시 지나가리라 믿습니다.


이 암흑기 너머에 화려한 여름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압니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그렇게라도 위안을 삼습니다.

멈춰 선 듯 보여도 분명히 우리 안엔 아직 굳지 않은, 살아 숨쉬는 마음이 있습니다.


낯선 곳을 걷다 낯선 호수에서 그 희망 하나를 길어 올렸습니다.

혈관마다 피가 돌고 새 힘이 솟구칩니다.

심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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