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숯이 되어 다시 빛나는 마음
“엄마, 하늘에 바나나똥이 걸렸어.”
예전 큰 아이가 네 살 무렵, 추석을 쇠러 시골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차창에 바싹 다가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던 아이가 갑자기 그렇게 말하며 까르륵 웃었지요.
까만 밤하늘에 노랗게 빛나는 초승달을 보고 한 말이었습니다.
마침 배변 훈련 중이던 때라, 바나나똥을 만날 때마다 즐겁게 “안녕”하고 “잘 가”라며 인사하던 시절이었지요. 응가 모양과 달을 연결한 순수한 눈길이었습니다.
아이의 세상에서 응가도 밝은 달도 모두가 호기심과 애정의 대상이었습니다.
외가에 갔을 때에도 아이의 눈길은 가족을 웃게 했습니다.
“할머니가 포도를 먹었더니 할머니 머리색이 포도색깔이 됐어.”
염색 실수로 보라색이 된 할머니 머리카락을 유심히 보던 아이의 말이었죠.
어릴 적 아이는, 하나를 보면, 그 하나에 온전히 빠져드는 순수 그 자체였습니다.
그 순수는 이어 시가 되어 꽃과 자연을 노래하며 아름답게 표현되곤 했습니다.
자연과 하나였던 그 시절까지는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 눈길은 점차 다른 것들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 이르자 아이는 세상의 모순을 더 또렷이 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지인의 집에 초대받아 다녀온 날이었습니다.
그 집 거실 한쪽 벽에 손바닥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이유인즉슨 중학생 아들이 어머니와의 기싸움 중에 분을 이기지 못해 가벽에 주먹을 내리쳤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그날 밤, 아들은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말했습니다.
“엄마, 나도 나중에 괴물이 되면 어떡해?”
아이의 영혼은 그때 직감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도 언젠가 사춘기란 괴물에 먹힐지 모른다는 것을.
성장은 때로 온갖 세상의 모순을 흡수하며 순수를 잃어가는 과정이 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러한 모순의 때도 성숙한 숯이 될 수 있는 장양분이 됨을 이제는 압니다.
문득 참나무의 일생이 떠올랐습니다.
씨앗이 발아해 새순을 틔울 땐 연약하고 곱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곧 줄기가 생기고 조금씩 뿌리를 내릴 즈음이면, 햇볕을 차지하려는 치열한 경쟁에 들어갑니다.
시간이 흐르며 몸집을 키우는 동안 껍질은 벗겨지고 벌레들이 스며들며,
부패가 일어나 구멍이 생기기도 하지요.
그 속에 작은 동물과 새들이 깃들고, 나무는 그렇게 혹독한 계절과 폭풍을 견뎌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해마다 도토리를 매달며 성장의 소임을 다합니다.
그러다 마침내 제 몫을 다한 나무는 잘려나가 숯으로 구워집니다.
그 뜨거운 연단의 과정은 다시금 숯이란 이름으로 새 생명을 얻습니다.
숯은 자신을 태워 찬 공기를 데우고, 음식을 익히며, 물과 공기를 정화합니다.
나무일 땐 자기 성장에만 몰두했지만, 숯이 되어서는 오롯이 남을 위해 쓰임을 다합니다.
자신을 태우고도 다시 불꽃을 일으켜, 그 온기로 남을 이롭게 하려는 그 깊은 마음은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아이의 순수는 세월 속에서 상처받고, 때로는 괴물처럼 보일 만큼 거칠어지지만,
그 과정을 견뎌낸 사람은 마침내 ‘숯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자신의 불씨로 누군가의 추위를 덥히고, 허기를 채우며, 세상의 탁함을 정화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나눔과 사랑의 마음은 먼저 인생을 살아본 이들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알기에, 나눌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요즘의 세상을 보면 숯이 되려는 사람보다 끝없이 하늘로만 솟으려는 이들이 더 많은 듯합니다.
열매 맺을 힘도 떨어지고, 새들을 지켜 줄 만큼 가지도 튼튼하지 않은데 계속 가지를 키우려 하지요.
너무 오래되어 썩거나 구멍이 많아지면 숯으로도 쓸 수 없는데 말입니다.
그늘이 지나치게 짙은 곳에선 새 싹이 자라기조차 어렵습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에겐 숯이 되려는 결단, 그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신을 태워 남을 이롭게 하는 그 깊은 마음은 새로 태어난 순수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욕심대신 나눔이,
무관심 대신 사랑이,
분열 대신 연대가 이뤄지는 세상.
그 길을 먼저 살아온 어른들이 숯이 되어 진한 사랑을 실천할 때,
젊은 세대의 순수는 괴물로 굳어지지 않고 영롱한 빛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반복되는 아픔의 고리, 이제 우리가 끊어야 할 때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은 큰 말이나 거창한 계획이 아닙니다.
잠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귀,
온기를 나누어주는 손,
욕심 없이 마주하는 눈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숯이 된 자들의 순수한 삶입니다.